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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츠츠이 야스타카라 하면 역시 SF계 작가다. <인구조절구역> 역시 SF소설로, 고령화로 인해 증가하는 노인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노인상호처형제도'라는 이름 하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을 암묵적으로 정부가 허용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허용한다지만 사실은 압력이자 권력남용이고 말이 '상호처형제도'지 사실은 '실버 배틀'이나 다름 없다. 이야기의 주된 초점은 이 '상호처형제도'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묵묵히 받아들이며 배틀에 참가하는 노인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과정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장소에 따라 짧막하게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이 '노인상호처형제도'라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제도에 따라 배틀을 벌이지 않으면 '구' 단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설사 배틀을 한다 하여도 30일 이내에 1명 이상 살아남을 경우, 모두 처형을 당하게 된다. 즉 최후의 1인만이 한 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혹시라도 이 배틀에서 자신이 살아남아 최후의 1인이 되면 처형당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생존 본능과 결합 해, 제도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자 후기에서도 말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황혼의 반란'에서도 심각한 고령화 문제를 놓고 정부가 노인을 안락사 시킨다는 그러한 내용인데, 여기서는 그러한 정부의 불합리한 제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인구조절구역>은 이와 달리 끝에 가서 정부에 저항하지만 이도 흐지부지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이 제도를 받아들이며 배틀에 임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풍자와 블랙유머다. 정말 이 책을 읽으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블랙유머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불편하고 황당한 소설이지만 그 속에 드러나는 드라마와 재미는 츠츠이 야스타카만이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흡인력 있고 재미있다. 장대한 서사 드라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리나 미스터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째서 이렇게나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70년 먹은 노장의 스토리텔링이란 이러한 것인가. 작가의 출생년도를 보면 1934년이다. 지금은 70대인 츠츠이 야스타카는 <인구조절구역>에 나오는 노인들과 연령대가 같다.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70대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한다. 그래서 이렇게나 인물들이 생생한걸까.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 역시 고령화 추세에 한몫 거들고 있는 입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70대의 노인인 츠츠이 야스타카는 노인의 편을 들고 얘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책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하고 당연했으며 살인은 게임과 같이 가벼웠다. 대사를 보면 웃으려다가도 멈칫하게 된다. 그저 미래에 농후한 가능성만을 보여준 것일까. 그렇게만 봐도 엄청나다. 도대체 이 제도는 책장을 덮은 지금 생각해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그래서 그런지 역시 읽는 내내 불편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나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불편함이 존재했다.
원래 본 책의 제목은 <은령의말로(銀齡の果て)>라고 한다. 역자 후기 뿐만 아니라 책 본문 내에서도 '은령'이라는 단어가 나온 적이 있는데, 이는 '눈에 덮여 은빛으로 빛나는 산꼭대기'라는 뜻으로 '하얗게 센 머리털'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즉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 노인의 끝 또는 최후를 의미하는 제목이다. 그야말로 살벌하다. 한국어판 제목인 <인구조절구역>보다 저쪽이 더 무섭다. 직접적이고 감상에 빠질 겨를을 주지 않는다. 서로를 죽이고 죽여야만 하는, 그렇게 해서라고 살아남아야 하는 고령화 사회가 노인의 끝이라면 정말이지 끔찍하다. 죽고 싶지 않은데 제도에 의해 살해당하는 약한 노인들과 그런 약한 노인들을 밟고 살아남는 강한 노인들. 왜 노인들의 사회에서마저 강자와 약자로 나누어져서 목숨을 놓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가. 물론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긴 하다. 성인 한명당 5명의 노인을 먹여 살려야한다고 친구로부터 들었는데, 5명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수치가 아니다. 앞으로 부양해야 할 노인들의 수는 더 증가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정말 이런 제도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것. 물론 이런 제도는 많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틀림없이 사회풍토는 지금과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변해 갈 것이다. 우스운건 누구나 늙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고 자신도 노인이 된다는 것이다. 내게도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이 단어도 순식간에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 '늙음'과 '노인'이라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처형당해야 마땅할 존재로 자리잡는다. 억울하다. 분통이 터진다. 하지만 한편으론 노인들은 자신이 '짐'이고 '폐'가 된다는 점을 알고 받아들이며 이를 죄스러워하기에 이런 제도 하에서 배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길러주고 사회의 토대를 닦아 놓은 노인들을 공경하고 부양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노인상호처형제도'의 윤리적인 문제도 묻어두고 이런 일을 겉으론 거부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책에 등장하는 성인남녀들의 행동도 그러했다. 생존을 위협하는 배틀 자체의 공포도 있었지만, 다른 집의 노인이 자기 집에 들어와 태연하게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정말이지 충격의 연속이다. 이 책은 변화해가는 현대 사회에 발맞춰 충격적인 미래의 시나리오의 한 일면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심각하거나 진지하게 메세지를 전달하고자함 없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일을 풍자와 유머 그리고 상상력으로 풀어낸 츠츠이 야스타카의 <인구조절구역>은 '노인상호처형제도'라는 이 기이한 제도 하나만으로도 읽어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