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의도하고 고른 책은 아니었건만 <어둠 속의 기다림>도 치유계 소설이었다. 하지만 오츠이치는 역시 치유계도 잘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어둠 속의 기다림>은 눈이 먼 혼다 미치루라는 여성과 역에서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상사를 밀어 범행을 의심받는 오이시 아키히로의 이야기다. 전개는 두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데도, 서로 생각하는 것과 대하는 태도나 행동이 다르게 묘사된다. 무엇보다 아키히로는 미치루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고 몰래 미치루의 집에 숨어들어와 생활하는데,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아키히로의 심정과 어둠으로 가득찬 집이 술렁임을 느끼는 미치루의 심정들이 교차하면서 한 공간 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같이 생활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긴장감과 함께 전혀 타인 같지 않은, 묘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아마 미치루와 아키히로가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점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는 집에서만 생활하며 밖의 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다. 아키히로는 회사에서 동료들과도 상사들과도 교류 없이, 혼자 있는게 더 편하다며 그저 묵묵히 일만 해왔다. 이 둘의 공통점은 타인과의 관계를 전부 부정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한 점이었다. 눈 먼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 카즈에는 늘 집에만 있는 미치루가 걱정되어 밖으로 나가보라지만, 눈 먼 자신에겐 너무나 무서운 밖의 세계에 미치루는 거절한다. 그녀에게 있어선 어둠에 휩싸인 이 집은 아늑하고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편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끝내 카즈에와 틀어진 미치루는 그녀와의 관계마저도 끊어내려 마음 먹지만, 이내 아키히로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살아갈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아키히로 역시 미치루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교복을 입고 학교 있었던 학생 시절에도,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회사에서도 아키히로는 늘 불편했다. 소속감을 느낄 수도 없었고 동료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상사든 부하든 자기의 험담을 하는 건 화가 났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자신이 동료나 상사들과 친하게 지내고 살갑게 굴었더라면 험담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섞여들 수 없는 아키히로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갈수록 염증을 느낀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그는 정말로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장소는 있을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필요했던 건 학교나 회사와 같은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집에 숨어들어 몰래 생활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허용해준 미치루의 마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다름아닌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주는 '허용'과 같은 것이었다. 오치이치는 이렇게 미치루와 아키히로 두 사람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와 삶 그리고 고독과 함께 하는 행복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멋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미스터리와 반전은 그칠 줄 모른다. 그게 바로 오츠이치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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