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아베 고보의 <상자 인간>은 제목 그대로 '상자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자 인간이란 상자를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상자는 세계와 나를 매개하는 중간자이자 격리하는 존재다. 하지만 이 '격리'라는 것도 세계 즉 세상이나 사회로부터 나를 격리 하는지, 나로부터 세계를 격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읽다보면 노숙자와는 또 다른 존재인 상자 인간은 상자를 중간자로 세워 마치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집의 출입구와 창문 그리고 틈 등을 막아 상자처럼 만들어 세계를 나로부터 격리하는 인상을 받는다. 전자와 같이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는 상자 인간은 사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으며 자신 역시 가급적이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생활한다. 이런 그들의 특성은 '피살 전문 업자'라 표현되는데, 이는 상자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죽인다 해도 죽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히 상대방은 '살해 전문 업자' 역할을 맡게 되는데, 상자 인간과 외부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 것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사회는 상자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상자를 통해 그들에게 사회적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것은 꽤나 수동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세계로부터 자신을 격리 시킨 것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자신감과 어떤 변화가 내부에서 일었던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끝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보이는 것은 좁은 골목과 막다른 곳에 위치한 콘크리트 사이에 끼여 중간에 뚝 끊어진 테라스 뿐이다. 선로로부터 7,8미터 공중에서 받는 호기심. 그렇게 한발짝 더 내딛으면서 끝이 난다.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선로 위의 공중에서 뚝 끊어진 테라스다. 이것을 발견 했을 때의 나는 상자 인간으로써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상자를 벗고 보통 인간이 된다는 것도, 세계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도 불가능함을 깨달았고 더불어 자신은 평생 상자 인간이라는 것에서 벗어 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좌절하는 한편, 안도하면서 이제 이 끊임없는 싸움을 끝내자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상자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보는 사람'의 입장에 서게된다. 상자는 사회와 자신의 사이에 쳐진 막 같은 것으로 상자에 낸 엿보기 창을 통해 그는 세상을 '엿보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러면 상자 밖의 세상 사람들은 자연히 '보이는 입장'에 서게된다. 하지만 이 관계는 유동적이라 언제든지 보는 사람이 보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상자 인간은 단연 엿보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세계를 바라본다.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라는 작품에서도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야기의 바탕을 이루는데, 거기서는 대게 '보이는 자'에 초점이 맞춰져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지만 본 작품에서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베 고보는 이러한 관계를 애로티시즘적인 광기와 집착, 그리고 괴기함을 통해 보여준다. '엿보는 자'의 심리에 관한 소재는 종종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심리를 이렇게 풀어나갈 수도 있다는 점이 아베 고보만의 독자적인 세계와 작품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엿본다'는 행위자체가 은밀하다는 점에 있어서 사람들의 기존 관념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 했음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엿본다'는 행위는 은밀함과 동시에 또한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하는데, 상자 인간을 내세워 이런 죄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엿보는 행위를 정당화하여 상자 인간의 '엿보는 행위' 자체를 당연시하고 그것이 어딘가에 예속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일어남을 보여주었다.

 아베 고보의 <상자 인간>은 읽는 중에도, 읽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상자 인간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말함은 물론이고 사회에서 한 개체로써의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도 보여준다. 거기다가 종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미스터리한 부분 역시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묘한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 새로운 감상이 또 잔뜩 나올 것 같은 책이라, 무척이나 즐겁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통해 무척이나 아베 고보의 세계가 마음에 들어,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점이다. 국내에 많이 번역되어 나온 줄 알았으나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래의 여자>와 <타인의 얼굴> 두 권뿐이라 아쉽지만, 일단 그러한 안타까움은 이 두 작품 마저 읽은 후로 미뤄야겠다. 정말 간만에 마음에 쏙 드는 작가를 만나서 무척이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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