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4
아오기리 나츠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아, 정말이지 읽고 있을 때면 한 박자 느리게 느껴져서, 시간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평화롭다는 기분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읽는 내내 아키와 헤이스케를 둘러싼 사건들은 끊이질 않으니까. 사건이라 하니 거창해보이지만, 아니 아키에겐 거창하겠지만, 이 느긋한 분위기, 잔잔한 일상은 정말 마음에 든다.  

 이번 플랫 4권에 첫 에피소드는 사토의 남동생인 코타로와 아키가 다투는 내용과 화해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취향과 의견을 무시하는 코타로에게 끝내 화가 난 아키. 화가 난 모습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희귀하다! 여튼, 아이들의 세계라 해서 어른들과 차이점이 크게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무언가를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과는 같이 있고 싶지 않고 어울리고 싶지 않은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도 둘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니 훈훈했다. 코타로도 아키도 이번 다툼에서 뭔가를 배웠겠지. 

 뒤이어서 나오는 에피소드는 헤이스케를 좋아하는 4차원 1학년 여학생인 하세와 그의 친구, 그리고 헤이스케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카이도의 이야기이다. 어째서 헤이스케 주변에는 늘 좋은 친구가 있고 아키도 잘 따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소리치고는 울면서 달려가버린 카이도를(3권의 이야기이다) 하세와 그의 친구가 발견해 휴지를 빌려주면서 인연은 시작되었다. 사실 카이도는 헤이스케를 질투하고 있었던 것. 흐리멍텅하고 느긋하고 성실하지 못하고 배려도 하지 않는 헤이스케(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이지 헤이스케는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구나. 그렇지만 난 마음에 드는걸. 무엇보다 아키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걸 보면 정말 속까지 썩어있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하세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데 왜 자신은 없는 건지 화가 나는 것이다. 헤이스케를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한 하세와 엄청나게 곧고 솔직한 카이도의 모습이 잘 드러났다. 그런데 카이도 말하는 건 솔직하다 못해 잘못 들으면 오해의 소지도 있다. 이런 말하게 될 줄 몰랐지만, 헤이스케가 아키에게 주로 하는 말처럼 '적당히'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뭐, 헤이스케도 카이도도 원래 자기 성격이 있으니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하긴 힘들겠지만, 앞으로 조금씩 변해가지 않을까.  

 세번째 에피소드는 아키가 아버지를 위해(헤이스케의 이모부) 케이크 만드는 것을 헤이스케가 도와주는 편이다. 이틀동안 케이크 만들면서 힘들었다고 말하는 헤이스케지만, 다른 때 아키랑 있을 때 보단 긴장하지 않았다며 말한다. 두꺼비 집이 내려가 정전이 되었을 때,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던 아키는 무섭다며 헤이스케 옷의 소매를 잡아당겼는데, 그걸보고 아키의 인간적인 면을 본 것 같다며 헤이스케는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이번 책에서는 아키의 의외의 면(왜 화내고 무서워하는게 의외의 면이 되어버리는 거지? 너무나 당연하게 의외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놀랐다.)이 잔뜩 등장하는 듯.   

 네번째로는 헤이스케의 친구인 사토와 스즈키의 공포 영화 관람편과 저주 비디오 에피소드가 나온다. 헤이스케의 방에서 저주의 비디오라며 공포 영화를 보게 된다. 이번 만큼은 같이 볼 수 없어서 소외된 아키는 시무룩해한다. 그런 아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낀 스즈키는 확실히 이런 긴장되는 분위기는 답답할거라며 헤이스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헤이스케에게 자신과 사토를 대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니 긴장하는 것도 고생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말에, 헤이스케는 아키의 문제로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것도, 평소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키의 일은 마지막에가서 사토가 잘 달래는데, 과연 코타로라는 동생이 있는 사토는 다르구나! 그나저나 공포 영화보며 사토와 스즈키는 놀라서 사색이 변하는대도 헤이스케는 꿈쩍도 안하는데 언젠가 놀라는 얼굴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카이도가 나이든 야노 선생님을 위해 사유리라는 들고양이를 잡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 사유리라는 특이한 고양이는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하는데, 카이도만 보면 도망치면서 헤이스케에겐 찰싹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카이도는 자신이 뭐가 헤이스케보다 못 났는지 모르겠다며 고양이 따위 사람보는 눈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만약 헤이스케가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헤이스케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도, 고양이가 따르는 것도 인정 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한다. 이에 화가 난 스즈키는 네가 인정 할 수 없다면 뭐든지 안 되는 거냐며, 너만 올바른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 말한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은 안 되는데 헤이스케는 되냐고 이해할 수 없다고 대꾸하는 카이도에게 스즈키는 그건 네가 더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냐고 묻는다. 답을 할 수 없는 카이도. 자신이 옳고 성실한데, 헤이스케 따위보다 내가 훨씬 나은데 왜 난 친구도 안 생기고 고양이도 안 따르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옳고 성실하다는게 분명 좋은 거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런 걸로 내가 더 났다 못 났다를 가를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누가 더 잘났냐 못났냐를 나누어 잘난 사람이 더 많이 가져야 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이 그 사람을 잘난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좀 부족해도 주변 사람들로 인해 메워져가고 또 변화해 가는 게 삶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헤이스케와 카이도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변화중이다. 그런 과정을 그린 것이 이 플랫이라는 만화이다.  

 사실 난 카이도 같은 타입,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 할 수가 없다. 성실하고 솔직한게 좋은 거라며, 최대한 완벽하게 해내려는 카이도의 모습을 보면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점이 잘못 된 건 아닌데, 내가 하는 행동이 옳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괜히 화가 나고 나만 손해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그런 사람이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당연하다. 3권에서 보여준 헤이스케의 방탕한 학교 생활은 누가봐도 호감은 아니다. 책임감도 없지, 놀기만 하지, 성실하지도 않지,(오늘따라 헤이스케 안 좋은 점을 강조하는 느낌인데. 틀린건 아니지만 그래도 묘한 기분.)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나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카이도처럼 대놓고 뭐라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서도, 나도 학창시절에 저런타입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싫어하기 이전에 대체적으로 학급일에도, 학우들에도 무관심했었다. 어딘가 나랑은 상관없다고 늘 생각했고 그렇게 느꼈다. 이런 점은 정말이지 헤이스케를 닮았다고 할까. 하지만 헤이스케다르게 난 용감하지도 그렇다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는 것도 아니어서 뭔가 주어지면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며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나서서 또 그런걸 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달까. 역시 이런 점이 헤이스케를 닮은 것이다. 그래서 카이도 편도, 헤이스케 편도 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위에서 카이도처럼 대놓고 말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사실이다. 거의 없다. 그야 대놓고 싫다고 말할 상대를 만들지도 않았는 걸. 관심이 없으면 상대에 대한 좋고 싫음의 감정도 가질 수 없다. 그래도 있긴 하다. 물리적 거리가 멀었다면 나의 수비범위 안에 들지 않았을텐데, 바로 옆자리여서 한마디 했다고 해야하나. 아니, 한마디 한 것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달까. 변명같은 거였다. 어째서 변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하면 역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결정적으론 말했든 안 했든 그다지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내 기분이 불편해서, 자기 만족을 위해서 했던 말이니까. 여튼 난 나 나름대로 상냥하게 말했다. 카이도처럼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아닌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내용만 보면 꽤 직설적일지도. 흐음. 그래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니까. 그렇지만 내가 말했던 걸 들어 볼 수도 없으니, 역시 이건 나만의 감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 옆자리에 앉았던 아이는 정말이지 내게 말을 많이 걸었다. 친해지고 싶어라는 느낌이라기 보단 나 말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너가 좀 들어줘라는 느낌인 아이였다. 아니, 듣는 안 듣는 그런 건 많이 중요하지 않았다. 말을 들어 줄 상대라기 보단 자기가 말할 상대가 필요했다는 느낌이다. 그 아인 내 기준에선 좀 하기 힘든 사적인 이야기도 하곤 해서 놀란적이 있다. 놀란 건 그런 사적인 이야기를 별로 친하지 않는 나에게 했다는 점보단 나는 그렇지 않은데 그 쪽에서 나를 친한 친구라고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점에서 놀랐다. 뭐랄까, 상대방에게 서로가 느끼는 그 미묘한 온도차가 정말이지 놀라웠다. 그 때 이후로 이 아이에게 좀 관심이 생겼는지도. 하지만 그건 나의 오해였다. 그 아이는 원래 말할 상대가 있다면 그런 이야기도 서슴치 않고 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어쩐지 그날 좀 충격받고 그 뒤론 그 아이에 대한 관심도 유리창에 묻는 손자국 닦듯이 사라졌다.

 여튼 사담이 길어졌는데, 카이도도 이렇게 조금씩 변화해나가다 보면 융통성도 있고 세상을 유연하게 보는 시선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맘이 편하니까. 그나저나 4권 마지막에 헤이스케에게 사랑이 부족하다면서 카이도가 말하고 끝이 났는데, 사랑? 애정이 부족하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헤이스케가 워낙 무관심하다보니. (그래도 아키한텐 신경쓰는데 말이지. 어쨌든 대체적으로 그런 느낌이다.) 그래도 역시 자세한건 5권을 보고 판단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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