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암흑 동화. 동화라 하면 순수하고 밝다는 이미지다. 그런데 암흑이라니?

 사실 동화란 알고보면 굉장히 잔인하고 어둡고 무섭다. 그렇지만 그러한 어두운 면을 순수함으로 포장하고 끝에 가서는 무시무시한 결말로 교훈을 주는 데, 동화라는 그 장르 특성 때문인지 그 잔혹함에 대해서 인지하기 힘들다. 예로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등과 같은 안데르센의 동화들이 있는데, 그 동화들을 그저 동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추악함, 잔혹함 등을 볼 수 있다. 그런 잔혹함과 추악함이 로맨틱하게 바뀌고 순수함으로 포장되어서 바로 눈치채긴 힘들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은연중에 알아차리게 되어서 동화가 재밌게 느껴지고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아이들은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에 동화를 더욱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츠이치의 암흑 동화는 그런 점에서 동화스럽다. 잔혹한데 어딘가 순수한 면이 있다. 하지만 순수함으로 인간의 기괴한 면과 잔혹함을 굳이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본 책에서는 눈이 먼 소녀를 위해 다른 인간의 눈을 뽑아 선물해주는 까마귀에 대한 동화와 사고로 눈을 잃게 된 고등학생 나미가 다른 이의 눈을 이식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람의 말을 하는 까마귀는 눈 먼 소녀에게 다가가 사람인 척 말을 건내며 대화를 통해 소녀와 친해지게 된다. 이후 그녀가 좋아진 까마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에게 눈을 선물하기로 한다. 까마귀는 다른 사람의 눈알을 하나씩 뽑아와 그녀에게 선물하게 되고 소녀는 까마귀가 선물 해 준 눈을 통해 눈의 주인이 보아온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타인의 시선을 통해 색으로 가득 찬 세상을 소녀는 체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눈 수술을 하러 가기 전 까마귀가 준 마지막 선물에 소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세상이란 언제나 아름다운 것으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었다. 늘 평화롭고 활기차며 즐거운 일상으로만 가득 찬 세상이 어디있겠는가. 삶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각 개인의 삶은 하나같이 다르다. 모두 행복한 꿈을 꿀 수는 없는 것이다.

  사고로 한쪽 눈을 다친 나미는 눈 이식 후 기억을 잃게 된다. 가족과 친구들은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을 거부하며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의 상을 강요하였고 그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기억이 없는 나미는 주변에서 말하는 자신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고 현재 '나미'라는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말하는 '나미' 자신을 별개의 사람으로 밖에 느낄 수 없었다. 주변의 반응에 나미는 갈수록 자존감이 낮아졌고 불안은 심해졌다. 하지만 이식 받은 눈에 축적 된 눈 주인의 과거 시선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미는 그 시선에 매료 되어 간다. 기억이 없는 자신에게 그 시선은 마치 자신의 것과 같았으며 자신의 기억처럼 느껴져만 갔다. 하지만 과거의 시선 속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발견된다. 연쇄살인범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이에 나미는 눈의 주인이 살았던 마을로 향해 연쇄살인범을 쫓기 시작한다.

 서로 상이해보이는 이 두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까마귀가 가져다 준 타인의 눈알이 소녀에게 있어서 선물이었으며, 나미에게 있어서 이식받은 눈 역시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눈 먼 소녀에게 있어서 까마귀가 가져다 준 눈을 통해 본 세상은 암흑이 아닌 색색으로 칠해진 멋진 세상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아온 암흑 속의 세상과는 달랐으며 소녀가 염원했던 빛의 세계였으며 소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구원과도 같았다. 까마귀로 인해 암흑 속의 나날은 색으로 채워져 갔던 것이다. 나미에게 있어서 이식받은 눈은 기억을 잃고 자신마저 잃을 위기에 놓인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였다. 나미는 그 시선에 깃든 애정과 마음에 동화되어 가고 기억이 없어진 자신의 삶 역시 동화되어 갔다. 기억이 없는 불완전한 자신, 그렇지만 눈이 보여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기억이었던 것이다. 흰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듯이 채워져가는 타인의 기억. 남의 것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어진 나미. 그녀에게 있어서 그 기억만이 그녀를 몰아붙이는 환경 속에서 버티게 해주었으며 기억을 잃은 채 불안에 떨며 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었으며 가족에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고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선물과도 같았던 것이다.

 결국 나미는 기억을 찾고 기억을 잃은 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각각 다른 하나의 개체로 본다. 기억을 잃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써, 한 명의 사람으로써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녀 자신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기억을 잃은 뒤 보여준 그녀의 용기를 잊지 않겠다고 한다. 분명히 나 자신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었던 그녀. 인간이란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하나의 개체로써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없다면 자신이 기억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기억해준 사람들까지 잊게 된다. 그렇게 되면 타인에 의해 스스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과정이 사라지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 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래서 기억이란 곧 한 사람의 삶이자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오츠이치는 기억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생명이란 무엇인지 말한다. 연쇄살인범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곤충과 동물, 그리고 사람에게 실험을 한다. 그 실험 대상 중에 남자와 여자의 하반신을 서로 이은 것이 있었다. 인간은 태초에 몸은 하나인 채 머리가 두 개인 원과 같은 형상이었다고 한다. 즉 두 사람이지만 하나였던 것이다. 하나는 완전함을 의미하는데, 신에 의해 둘로 나눠진 사람은 하나가 되어 불완전함에서 벗어나 완전함으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짝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이는 성별과는 관련이 없으며, 오로지 완전함을 추구하기 위해 나아갈 뿐인 것이다. 나는 처음 서로 붙어 있는 이 두 사람을 보고 연쇄살인범이 마치 자신이 신과 닮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원래 떨어뜨려놓았던 두 쌍의 인간을 다시 붙여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하여 완전함이 갖는 행복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두 사람이 사랑을 해도 완전한 하나는 될 수 없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 불완전하고 그래서 고독하며 끊임없이 완전함을 위해 자신의 짝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런 고독한 개체인 인간이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 완전함에 도달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즉 사람은 진정한 행복에 도달 할 수 있는가의 가능성이었다.

 오츠이치는 육체적 결합을 통해 정신적인 결합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둘은 서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하나로 연결 되어 있다는 그 충족감이 완전함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그 둘은 숲으로 떠났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는 완전함 속에서 행복을 느낄까?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그들은 그저 기형에 가까운 산물일 뿐이다. 행동에 제한이 많으며 보통 인간들이 떠올리는 이상적인 인간 상과는 다른 것이다. 소위 괴물과 같은 형태다. 하지만 지금의 형태로 사람이 진화되어오기 이전에 우리는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만화 캣독에서처럼 한쪽은 고양이, 다른 한쪽은 개이지만 몸은 서로 공유하고 있는 그런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캣독에서는 이들과 달리 육체적 결합을 하고 있음에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육체적 결합이 정신적 결합으로까지 나아가 하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츠이치는 연쇄살인범을 통해 비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며 직접적으로 생명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삶과 기억으로 이어진다. 직접적인 인간의 분해, 즉 살인이 아니라 위와 같은 실험을 통해 생명이 무엇이며, 생명과 같은 삶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삶은 기억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오츠이치는 눈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눈에 축적된 기억을 동화와 닮은 신비로운 현실 속 이야기로 풀어낸다. 처음엔 꽤나 여러가지 것들에 면역되어 있다고 자부했던 나는 이상하게도 이번 책에서는 잔인하다 못해 끔찍하고 징그러운 묘사에 마음 한켠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잔인한 미스터리 소설로 보기엔, 읽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오츠이치 책의 최대 장점은 가독성에 있다. 잘 읽히고 재미있다.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가볍지는 않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잔혹한 상황에서도 그 말도 안 되는 순수함이 기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래서 내가 오츠이치 책을 그만 읽을 수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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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야 2011-05-2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츠이치는 다크계를 정말 잘 쓴다는... 이것도 찜해두고 있는 책이라 서평은 나중에 볼게요... ^^

2011-05-27 01:2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오츠이치는 다크계를 참 잘 써요. 퓨어계(총과 초콜릿이 맞다면)도 재밌게 봤는데, 앞으로는 퓨어계 쪽도 하나씩 읽어가야 겠어요. 거의 다크계만 읽어온듯.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