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미로 필립 K. 딕 걸작선 2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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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미로>. 처음 제목을 보고 연상한 것은 사람들이 미로와 같은 복잡한 상황에 갇혀 한 명씩 죽어나가는데도 그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계속 그 미로를 헤매며 살아나아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미스터리 계열. 하지만 알고 보니, 필립.K.딕은 SF작가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 작품 만큼은 확실히 미스터리스럽다. 그 긴장감과 속도감은 단연 미스터리의 단골코스다. 굳이 따지면 SF형 미스터리인데, 미스터리에 SF적인 요소들을 가미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띈 14명의 남녀가 델맥-O라는 행성에 전근을 가게 된다. 각이 다른 행성에서 온 이들은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하고 기계 고장으로 인해 고립된다. 성격도 취향도 서로 다른 남녀들은 대립하기 시작하고 그런 와중에 동료 한명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면서 이 지구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외계인의 짓인가 아니면 인간의 짓인가.불신감과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차례로 한명씩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원인을 밝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끌어오는 것이 바로 '신'이다. '조유신', '중재신', '지상을 걷는 자'인 3신과 엔트로피를 체화한 '형상 파괴자'가 등장한다. 독특한 신학적 세계관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신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신은 해결해주지 못한다. 굳이 말하자면 이야기 속에 신을 끌어와 그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신'자체가 이야기의 주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작품의 세계관에서 '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일상의 대화와 같은 것이었다. 사건의 내막은 불신과 불안, 공포에 의한 광기가 원인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까지 행동 할 수 있으며 적대감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앞서 미스터리 느낌이 강하다고 말하였으나 결말을 보면 썩 미스터리로써도 엄청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야기 시작되는 제일 첫장을 보면 이미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보고 나는 처음 모 철학자 이름을 떠올렸고 뒤이어 모 영화를 떠올렸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살인 사건과 범인 추적, 복잡해져만 가는 사건의 전말에 정신을 못 차렸던 나는 점점 결말부로 치닫을수록 자신이 예상한 것이 결말로 나올까 조마조마 했다. 처음에는 설마했으나, 이것이 결말로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 이런 결말이 나왔는가. 현실에서 도피 해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었다.

 60년대 작품들은 어떠했는지도 잘 모르고 필립.K.딕의 작품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독자의 혼을 쏘옥 빼놓는 사건들의 연속에 책장은 잘 넘어갔다. 하지만 '신'의 등장 그 자체가 낯설어 이 작품의 세계관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신'을 체화화하기도 하며 기도를 전기적 신호로 바꿔서 전송하기도 한다. 이런점을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특히 거의 주인공급인 세스 몰리가 지상을 걷는 자를 만났을 때, 그리고 그 이후 지상을 걷는 자에 대해 동료들이 이야기 할때가 인상 깊었다. 결국 지상을 걷는 자는 신이 아닌 인간의 착각에 의해 명명된 또 다른 인간의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건물'이라 불리는 상자처럼 생긴 거대한 건물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현실 속에 탈출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욕망을 '건물'이 보여준 것이다. 현실 속에서 탈출 할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중의적인데, 하나는 이 델맥-O라는 행성 그 자체에서 탈출 할 수 없다는 의미와 실제로 죽을 때까지 우주를 부유하며 우주선에 갇힌 채 살아야 하는 그들이 인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죽음의 미로란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와도 같으며 그들의 현실속의 세계와도 같은 것이다.

  가상계를 통해 펼쳐지는 이야기는 현실의 도피 장소로 현실과는 달라야 했다. 도피라는 것이 현실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하는 행동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현실 속의 상황이 일부 변형된 기이한 세계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있다면 어떠할까. 자유가 무엇인지도 정의내릴 수 없는 현재의 나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갈망은 다뇌 융합을 통해 현실 도피 차원에서의 새로운 세계를 찾아 또 떠나게 만들것이다.

 SF는 현실 세계를 돌아보게 하고 미래 세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자신들이 걸어갈 길이 옳은지, 그 길 앞에 놓여진 문제들을 생각해보게 해준다. 이야기 큰 틀 자체는 고전적일지 모르겠으나 소재 자체는 내게 있어서 신선했다. 이 작품은 필립.K.딕의 작품 중 이례적인 작품에 속할 만큼 속도감 있고 미스터리 성향이 강하다고 하니, 다른 작품은 또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이상하게 읽을 때 열광하며 엄청나게 재밌게 읽은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 다른 작품들도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끝맛이 씁쓸해서 그런것일까. 13권이나 앞으로 출간될 계획이라고 하니, 재미가 붙으면 즐거운 시리즈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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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처 못 적었는데, 쓸데없이 한자어가 너무 많다. 굳이 번역 할때 그리 많은 한자어를 썼어야 했는가? 풀어 쓰면 더 보기 좋은 단어들도 많아 보이던데 굳이 어려운 한자어들 써서 지면 낭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인가? 근데 그건 지면 낭비가 아니란 말이지. 2자로 줄여쓴 한자어가 눈에 거슬린 점만 빼면 괜찮았는데.

스즈야 2011-05-2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K. 딕은 예전에 유빅보고 반해서 다른 책도 읽어야지 했는데... 이렇게 새로 책이 나와서 넘 좋아요... 낸중에 다 지를겁니다.

2011-05-27 01:30   좋아요 0 | URL
유빅이라는 작품도 있군요. 저는 이번에 딕씨 작품을 처음 만나봤는데요.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집니다.
무엇보다 전집이라고 할까, 시리즈에 묘한 구매욕을 보이는 저라서.. 하하하하.
표지도 예쁘고 편집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독특한 세계관에 조금씩 빠져가는 느낌입니다.
다음책으로는 뭘 읽을지 생각중이예요. 개인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작품을 보고 싶은데 2013년 출간이라 그전에 나와 있는 책들부터 섭렵을.. :)
저는 지금이라도 다 지르고 싶지만, 저도 낸중으로 미뤄야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