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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2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젠 살기 위한 목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냥 살아진다'라는 것도 불가능해 졌거든."
"...... 목적 ..... "
"넌 목적도 없이 여행을 다닌다고 했지.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여행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더욱이 목적없이 여행을 계속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물론 가끔씩은 쉬고 싶기도 해.
그럴 땐 이렇게 목적을 만들어.
그러면 이렇게 여유도 생기거든.
단지 살기 위해 사는 척을 한다면 여유라는 건 없으니까."
p.161, 코우로와 깅코의 대화
삶은 여행의 다른 말이 아닌가 한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삶의 여정이라느니. 마치 여행처럼말이다.
'그냥 살아진다'라는 것은 어쩌면 꽤나 사치스러운 고민이 될지도 모른다. '삶의 목적'이니 '삶의 이유' 같은 것도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하니 나오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냥 살아진다'는 사람도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깅코는 말한다. 목적 없이 여행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것은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일까.
목적이 없어도 살아는 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목적이 있는데도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삶의 목적 같은 거창하고 어딘가 부담스러워보이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문제 없다, 지금까지도 괜찮았다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목적을 만들면 여유가 생긴다, 그것은 일을 마친후 오는 휴식같은 것일까 아니면 행복의 또 다른 말인가. 살아가기 위한 목적을 만들면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중간에 여유라는 휴식도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바쁜 가운데 순간 정적이 흐르면서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지고 차츰 주변이 눈에 들어오면 사람은 방금까지 자신이 열중해서 하는 것을 잊고 시간의 흐름 가운데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 가운데서 여유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단지 살기 위해 사는 척을 한다면 행복이라는 건 없다. 그런 생각이 든다.
충사는 무슨 이야기인가?
무릇 불길하고 꺼림칙한 것. 하등하고 기괴하여 흔한 동식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여겨지는 것.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형(異形)의 무리에 대해 두려움을 품어왔고 언제부턴가 이들을 한데 묶어 '벌레'라 칭하게 되었다. 생명의 근원에 가까운 것, 또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것은 인간과 공생하고 때로는, 위협한다. 벌레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충사' 깅코는 마을을 떠돌며 갖가지 신기한 현상과 조우한다.
소리를 먹는 벌레, 꿈을 현실로 만드는 벌레, 눈에 기생하며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는 벌레. 이 세계에는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살고 있다. 『충사』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현상의 배후, 원인을 생명의 근원 '벌레'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모두 나름의 원리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간다. 모든 벌레의 신비를 푸는 날, 세상의 이치에 도달할 수 있을까? 떠돌이 충사 깅코의 기이한 여행기. [대교 리브로 제공]
충사(蟲師)는 벌레 충(蟲)에 스승 사(師)를 쓴다. 의미는 '벌레잡이'로 해석이 가능하다. 벌레를 잡기도 하고 다루기도 한다. 퇴치하기도 하지만 퇴치가 주 목적이 아니다. 벌레 역시 인간처럼 생물이다. 아니 오히려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무엇이기에 퇴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지 모른다. 충사인 깅코가 하는 일은 벌레로부터 인간을 지키며 인간을 돕는다. 벌레로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그를 보면 마치 의사같기도 하다.
소개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어딘가 신비스럽고 기이한 충사 깅코의 여행기로 옴니버스로 진행된다. 그는 벌레가 나오는 곳을 방문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벌레를 본다. 어딘가 아련하면서도 몽환적인, 전설과 닮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가운데 사람의 감정이 흐르고 무언가가 뭉쳐있고 벌레와 함께 가라앉는다. 담담하게 흘러가는 이 여행담은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다. 우루시바라 유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 된 사람은 깅코의 여행담을 듣는 것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충사는 어딘가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이야기로 느껴질지라도 자세히보면 세상사와 닮아있다. 충사도 사람, 사람은 생물, 벌레는 사람에 기생하는 생물이다. 모두 생물, 살아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것의 이야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근원이 닮아있다. 아니, 같은지도 모른다.
사람도 벌레도 그 중간자인 충사도 출발점은 같았다. 단지 뻗어나오면서 본 근원에서 멀어지면서 점차 서로 이질적인 것으로 변해간다. 마치 나무가 자라 가지를 쑥쑥 뻗어나가는 것과 닮아 있다. 가지가 자라면서 점점 줄기와 멀어지고 다른 가지들과도 멀어진다.
기록된 마지막 여행담까지 이러한 분위기로 느긋하게 살아있는 것들의 몸부림과 외침을 같이 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