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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평점 :
얼간이는 미야베월드 제 2막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에도 시대물의 작품 중 하나이다. 특히 이번엔 단편도 장편도 아닌 연작 소설집으로 스미다 강 건너 바닷가 저지대를 매립하고 주로 평민들이 살게 된 '혼조 후카가와'의 뎃핀 나가야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연작 소설답게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치 끝에가서는 장편 소설을 읽은 느낌을 준다.
오토쿠 아줌마가 들려주는 '괴한' 이야기를 필두로 뎃핀 나가야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뒤이어 '노름꾼'에서는 앞으로 나올 이야기의 주된 화자인 이쓰즈 헤이시로가 등장해 노름꾼인 곤키치의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정작 활약한 사람은 뎃핀 나가야라는 공동체를 관리하는 관리인 규베가 떠나고 관리인으로 새로온 사키치로 젊지만 관리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사키치를 좋아하지 않았던 오토쿠의 마음마저도 돌려놓는다.
뒤이은 '통근하는 지배인'에서는 조스케라는 미아와 관련 된 사건을 다루게 되고 끝내 사키치가 그 아이를 돌보게 된다. '논다니'에서는 세입자가 나가기만 하는 뎃핀 나가야로 이사오는 논다니, 오쿠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건이라기보단 평소와 남다른 일상 이야기라 보면 될 듯한데, 정작 헤이시로와 오토쿠를 비롯한 본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듯 하다.
'절하는 남자'는 항아리 신이라는 것에 절을 하며 미신에 빠진 세입자들의 이야기로 끝내 3가구나 뎃핀 나가야를 떠나게 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관리인인 사키치는 낙담하게 되고 헤이시로는 처음으로 집주인 미나토야가 이 젊은 관리인 사키치를 보낸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천재 미소년이라 불리는 유미노스케가 등장하는 '긴 그림자'편이다. 유미노스케를 처음보고 헤이시로가 생각 한 것은 이렇다.
"그래. 고급 생과자 같구나. 먹으면 감칠맛이 날 듯한 생과자." p.299
그리고는 유미노스케에게 뒤이어 이렇게 묻는다.
"너 혹시 몸속에 단팥소가 들어 있을 것 같다는 소리 들어 본 적 없느냐?" p.299
단것을 좋아하는 헤이시로에게 유미노스케가 이렇게 보일 정도면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유미노스케는 재미난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고래'라고 한다. 경척(鯨尺) 같다고 하여 고래라 불린다 하는데, 경쳑은 피륙을 측정하는 자로, 고래 수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즉 유미노스케는 뭐든지 재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자신의 보폭으로도 재는 이 버릇은 무척이나 정확한데 참으로 재미있는 버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헤이시로의 양자로 들어와 도신이 되어도 괜찮겠지만 자신의 스승처럼 계측만 하고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푹 빠져 사는데다 '긴 그림자'편 끝에서는 유미노스케가 그린 뎃핀 나가야의 지도가 사건에 도움이 되기까지 하는데 그냥 썩히기엔 아깝지 않은가. 하지만 이불에 오줌을 지리는 걸 보니, 헤이시로 말대로 아직 어리다. 하하.
'긴 그림자'에서는 앞에 '괴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노름꾼'에서의 도박 사건, '절하는 남자'의 신앙 사건등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헤이시로가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유미노스케와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앞의 단서들을 토대로 추론해나가며 가설을 세우고 사실과의 관계를 따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숨 쉴틈 없이 몰아쳐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나온 '유령'은 '괴한'에서 이야기를 들려준 오토쿠 아줌마가 다시 등장한다. 뎃핀 나가야의 세입자들은 다 나가고 그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이 오토쿠 아줌마로 관리인인 사키치까지 떠난 뎃핀 나가야는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씁쓸함 속에서도 사건들을 통해 느낀 에도 시대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과 정을 떠올리면 이런 세상이라도 살아 갈 수 있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 부재하는 사람과 사람간의 정이나 인간미를 에도 시대를 통해 재현함으로써 부재하는 현실과 그것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에도 시대, 문명도 발달하지 않고 지금보다도 살기 힘들었을지도 모를 시대에도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또 서로 투닥거리며 잘 살아갔다고. 에도 시대나 현대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시간차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 살아가는 것은 한결같으니 사람 냄새 풍기지 않을리 없지 않은가.
속정 깊은, 어딘가 좀 맹한 무사 '헤이시로'와 재간둥이 '유미노스케'의 이야기는 <하루살이>를 통해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얼른 뒤이어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