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막연한 불안감. 긴장감. 즐거움이 공존한다. 온다리쿠의 이야기는 늘 그러했다. 마지막장을 덮었지만 여전히 아련하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잡으려고 손을 휘젓지만 손에 느껴지는건 희미한 물방울, 약간의 축축함뿐이다. 나는 지금 그러한 느낌이다.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늘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다음여정이 있을 것만 같지만, 그여정은 내가 홀로 떠나야하는 여정. 그렇다. 이세상에 끝나는 이야기 따윈 없는 것이다.

 잊혀진다.

 그게 무서운 것이다. 온다라쿠는 잊혀지는게 무서운 것이다.

 기억되는건 어떤 걸까. 잋혀지는 건 또 어떤 걸까. 기억되는 건 살아있는것이고 잊혀지는건 죽는것인가. 전자는 삶이고 후자는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가.

잊혀지는건 물론 무섭다. 하지만 기억되는 것은 더 무섭다. 어째선 사람들은 '없어지는 것' 에서만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새로이 '생기는 것' 그쪽이 더 무섭지않을까. 어떡식으로 생길지, 왜생기는지, 그런것에는 꽤 신경쓰지 않은것일까. 어떤식으로 새겨질지 나는 그것이 더 무섭다. 타인에의해 자신이 기억되는 그순간이 잊혀지는 순간보다 무서운 것이다.

 

 프롤로그는 그 보송보송한 여경과 하사와의 대화다. 일가가 몰살당하고 병원에 실려온 히사요를 상대로 여경은 계속 질문을 한다. 눈이 보이던 어린 시절, 히사요가 보았던 풍경. 그것은 둥근 창 집, 히사요 어머니가 기도 들이던 방 ㅡ 새파란 방, 정적의 공간.

 히사요 그녀가 원하던 나라 유지니아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위선적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유지니아는 영원의 정적으로 가득찬 둘만의 나라라고 했다. 정적으로 가득 찬 곳, 파란 방, 그것은 기도의 방이 아니었던가.

 기도의 방을 벗어나 기도의 방으로 간다. 트라우마, 벗어나라 수 없는 현실의 한계인가. 그렇지만 사람이 바뀐다. 처음 기도의 방에서는 히사요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유지니아에서는 히사요와 노란 비옷의 남자, 유진, 벗.

 영원의 정적. 그녀는 유진을 사랑했고 그와 함께 유지니아로 가고 싶었던 걸까. 같이 죽고 싶었던 걸까. 죽음은 영원의 정적이었던가. 아니면 타인의 삶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그들을 지우고 소음을 지우고 둘만있는 세계로 향하는 것일까. 히사요는 그정도로 유진을 사랑했는가. 그녀의 어머니는 히사요에게 기도의 방에서 무엇을 고하게 했는가. 무엇에 대해 참회하게 했는가. 네 존재 자체가 죄. 그것은 태어났기에, 그 존재만으로 악이라는 소리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어째서 평범하게 태어나지 않은거지. 가문의 수치다. 많이 바란 것도 아니다. 신체적 장애, 그것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니!

 세간의 눈으르 의식하면 할수록 마음은 좀 먹어들어간다. 겉으로는 딸에게 잘하는 상냥한 어머니, 속으로는 잔뜩 의식하면서 상냥해지려는, 상냥해져야만 하는 어머니이다. 그런 역할을,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냥한 어머니 역할을. 사람들이 보고 있다. 난 상냥한 어머니. 이 집안에 어울리는 사람.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 상. 보이는 사람.

 보이는 사람이었기에 완벽해야 했다. 완벽해야 했기에 무너져갔다. 조금씩 뒤틀려가는 일상. 나이가 들수록 히사요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물론 그녀의 역할, 보이는 자로써의 역할을 즐기기도 했지만 그와 동반한 뒤틀림, 다른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하는 뒷면에서 벌어지는 그 추함을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히사요는 그 추함으르 스스로 인정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모습은 연기이고 허상이다. 정말로 단지 보이는 자로써 충실히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괴리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보이는 자로써의 역할과 실제 속사정은 다르기에 그 차이를, 틈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가 아닌 거짓이라는 것을.

 그녀도 사람이다. 사람이니까 어딘가 불완전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점을 절대 드러내 보일 수도, 보여서도 안 된다. 헛점이 드러나는 순간, 보이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니까. 동경과 질투는 종이 한 장 차이랬던가. 히사요는 늘 그 종이 한 장 차이가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히사요 뿐만이 아니라 그 이가는 전부 그러했던 것이다.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대를 거듭 할수록 부풀려져, 저 집안 모든 사람들은 그러하다는 환상을 낳는다. 그 환상은 동경을 불러 일으키지만 인간 내부의 어딘가를 자극하는 완벽한 그 환상은 동경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불편한 마음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과 동경의 차이가 종이 한 장인 것이다.

 

 '1. 바다에서 온 것'에서는 한 사람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누굴까. 비 이야기다. 이야기 내내 비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비, 더위, 땀, 태풍.... 여름이다. 한 여름. 그리고 초가을.

 막연하게 퍼져있는 도시. 경계선상이 불분명하다. 어디까지가 시내이고 농지인걸까. 주택가는 어디서부터인가. 오래 된 도시. 옛 시간이 흐르는 고대의 도시. 이런 도시라서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그 도시에서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 여기서만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그러니까 유지될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

 <잊혀진 축제>, 사건, 유일한 방법. 작가다. 화자는 작가. 주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작품. 제국은행사건과 닮은 이야기. 사건의 줄거리. 후텁지근하고 바람이 없는, 오늘과 같았던 여름. 노란 비옷, 검은 야구 모자의 남자. 정원. 새파랗게 칠해진 방. 아오사와 히사코. 그녀의 인상. 그녀에 대한 이야기. 신비스러운 사람. 총명함. 눈이 안보임. 유니지아. 편지. 하얀 백일홍. 다시 파란 방 이야기.

 "충격이었어요. 아니 내.가. 말이에요. 히사가 사건 직후에 군청의 방과 하얀 백일홍 이야기를 했다는 게 큰 충격이었어요."

 놀랍다. 다 읽고 보니 모든 핵심 단서는 첫부분에 다 나와 있었고 직소퍼즐을 맞춰가든 천천히, 하나하나 이야기가 맞춰져 간다.

 챕터마다 화자는 등장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터뷰 형식이다가도 3인칭이 되기도 한다.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처음엔 답답했다. 하지만 한 챕터가 끝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면서 나는 '다음번엔 또 누가 이야기를 들려줄까?'라는 기대감에, 읽으면서 누군지 추측하기도 했다. 자신의 추측이 맞으면 씨익 웃고 틀리면 '이 사람이었어?'라고 놀라기도 하며 나는 잔뜩 쏟아놓은 어지러운 퍼즐을 하나하나 조금은 긴장하면서도 설레며 즐겁게 맞춰가기 시작했다.

 손에 든 퍼즐조각은 더 이상 없다. 그런데 퍼즐 곳곳에 구멍이 나있다. 이건 내가 메꿔 놓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퍼즐 자체를 어디선가 잘못 맞추기 시작해 완성되지 못한 것일까. 혹시 이 미완성의 퍼즐이 사실은 완성인지도 모를일이다.

 너무나 즐거운 이야기. 읽으면서 뇌가 즐거워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추리이면서도 추리가 아닌, 어딘가 아련하면서도 아득한 이야기. 온다리쿠 그 자체였다. 밑줄을 긋고 싶었지만 책 자체가 밑줄 그 자체였기에 어디다 그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다음번엔 그으면서 읽을 여유가 있기를! (너무 재미있어 푹 빠져 읽느라 밑줄 긋기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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