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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미루어 왔다. 온다 리쿠의 가장 유명한 작이기도 한 밤의 피크닉. 혹시나하는 마음에 계속 미루었다.
그리고 그 미룸 역시도 좋았다고 생각하게 만들정도로 흡인력 있는 작품.
늘 새벽에 온다리쿠 작품 읽지 말자면서 책을 집어드는 건 역시 밤에 잠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째서 걷기만 하는데 이렇게나 즐겁고 긴장되는 걸까.
어째서 보고 있으면 이렇게나 지금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걷고 싶게 만드는 걸까.
그게 온다 리쿠의 능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흙과 다의 환상을 읽을 때도 금방이라도 야쿠시마(?) 섬에 날아갈 것처럼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있었다.
나도 누군가와 걷고 싶다. 무슨 얘기든 좋아. 그냥 걸으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고 생각되는 일이 좋겠어. 걸을 땐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때 역시 좋았지,라면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을.
단체 생활 싫다, 모임도 싫다, 사람들 많이 있는 자리에 있는 건 친구들이라도 싫다라고 늘 말한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누구러들었지만 그런 자리에 대한 적대감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조금 남아 있다.
과거에 내가 내비친 그 모든 적대감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친구들과 걷는다.
육체적으로도 힘든 상황에 아마 정신적으로도 힘들면 나는 아주 지쳐버릴 것이다. 둘 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걷고 싶다, 이야기 하고 싶다,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걸 보면 온다리쿠라는 작가는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더불어 나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
변화라는 건 양날의 검과 같아서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늘 좋은 점만 보려고 한다. 그건 어디서든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지이기도 하다.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트러블을 만들지 않고 완벽의 상태로 있고 싶다는 것.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계속 변해가니까 그 변화를 무시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면 뒤처지게 된다. 뒤처지는 순간에는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뭔가 이상하다고.
모든 건 그렇게 뒤틀리는 거겠지.
이 순간도, 지금 내가 하는 생각도 오직 지금뿐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 그래서 소중한 것들.
나는 청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고 방금 독서 노트에 썼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내 기준에서 청춘을 즐겁게 보낸 것이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보면 굉장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가 존재하고 있을지 없을 지도 모르는 미래의 일따위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갑자기 지붕이 무너져내려 죽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약간 자포자기한 자신도 싫지만은 않다.
그래서 현재가,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몇 시간이 그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무모하고 충동적이고 급하다. 이런 상황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이건 오늘만 허락 된 일이니까. 내일 나는 하고 싶어도 못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앞뒤일 생각 안하고 해버린다. 그게 타인에게는 철없이 비칠지도 모른다.
지금 걷고 있는 길, 내가 보고 있는 풍경, 떠올리는 생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다시 걸을 수 없고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을 다시는 똑같이 볼 수 없다.
지금 내가 떠올리는 생각도 차차 희미해져 다시는 똑같은 형태로 떠올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계절처럼 그렇게 소중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슬퍼진 것이다. 자신이 지나쳐와버린 길이, 풍경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떠올릴게 없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앞으로는 잘 담아두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이 애수에 젖어있고 싶다.
후회같은 건 하지 않는다라고 늘 말하지만 사실 나는 그저 후회하는 게 두려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런 두려움의 애수에 젖어 있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마주보고 직시하는 일은 좀처럼 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고 하고 싶지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