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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력 - 경계로부터의 자유
김익철 지음, 강성남 그림 / 세림출판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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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크게 나눠서 보면 큰그림자의 존재조차 모른 채 너다움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큰그림자와 거리를 두고 끊임없이 코치를 받으며 자기다움의 자주적 삶을 준비하며 걸어가는 삶, 그리고 큰그림자와 하나가 된 나다움의 자주적 삶을 사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금 나의 큰그림자는 어디에 서 있는지 가끔은 물어볼 필요가 있다. p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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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력>은 자기계발서이다. 그러나 다른 책들과 다른점은 우화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야생력이라는 주제와 경계로부터의 자유라는 부제를 가지고 돼지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을 읽는가운데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3부 깨달음의 숲에서 우화를 통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하므로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바우와 큰발은 산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다. 그 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밤마다 실려오는 산냄새에 바우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느날 큰그림자가 찾아오고 바우는 본래 집돼지가 아닌 산돼지였으며 아직 야생의 본능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야생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먼저 몸과 마음의근육을 단련하며 훈련할 것을 권한다. 바우는 그 훈련에 큰발도 동참할 것을 권하지만 큰발은 이내 포기해 버린다. 바깥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은 같지만 왜 나가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 바우는 그 목표를 향해 어려움을 감당해 낼 힘이 생겼지만 막연한 동경만이 가득한 큰발은 스스로 단련하지 못하고 우리를 뛰어넘어가는 바우를 그냥 바라만 볼 뿐이다. 나가고 싶긴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깥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큰발을 보면서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자기계발서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좀 더 나은 나와 나의 세계를 꿈꾼다는 것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책을 통해 지식을 채울 뿐 변화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경만 부풀릴 뿐이었다. 내가 꿈꾸는 세계를 나아가기 위한 준비운동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해 보지 않았기에 힘든 것이 당연함에도 큰발처럼 금방 포기하고 현실에 다시 안주하며 자괴감에 힘겨워 했다. 큰발처럼 동경의 눈길을 보내기는 하지만 막상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주저앉아버리는.... 이런 큰발을 향해 큰그림자는 말한다. 삶의 자유, 독립을 얻는 자란 어떤 울타리 안에 있던 신념과 원하는 바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갖춰서 그 울타리가 장애가 되지 않는 무경계의 삶을 사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어쩜 이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벗어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을 내가 만족스러운 곳으로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그냥 주어진 환경이나 삶에 안주해서 적당히 타협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공간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정세성과 삶의 목표가 확실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울타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의 취약, 자신의 역량의 한계가 자유로 가는 길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저자의 말이 크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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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은 없고 신념의 힘만 크다면 평생 자기갈등에 빠진 몽상가로 살다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신념은 없고 역량만 갖췄다면 세상의 놀잇감 내지 기회를 잡지 못하는 어리석은 재주꾼의 삶을 살다가 갈 것이다. 하물며 신념도 역량도 없다면 그 삶의 양식이 아무리 화려하다 한들 생명의 가치를 상실한 한낱 고기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네가 부디 저 너른 숲의 주인에게 요구되는 굳센 신념과 우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차별적이며 사실적인 역량을 갖추길 바란다. p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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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상황 속에서 갈등을 하고 있는 나였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절대 회사를 떠나지 마라'는 이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를 했던것 같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백프로 내가 원하는 만족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 삶에 지침이라는 것이 원론적인 것이지 한 인생을 그대로 그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아직도 바우가 되지 못하고 큰발의 상태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내 울타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는 되어 준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나다움인지, 너다움인지, 나다움을 위한 준비기간인지 파악이 됐기때문이다. 한 낱 고기 덩어리에 불과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어지는 먹이와 안전한 울타리에 만족하겠다는 큰발이나 먹이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환경과 상황과 싸워야 하는 삶을 선택한 바우도 어느 것이 옳다 그러다 판단하며 비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자신들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누구도 남의 인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가 변화하길 원한다면 점 더 나은 나를 위해 자아실현을 꿈꾼다면 두려움조차 이겨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야생력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인지하고,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알고, 장애물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경계, 울타리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변화려고 꿈꾸는 자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