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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사의 세계 - 미래를 보는 눈
요한 갈퉁.소하일 이나야툴라 편저, 노영숙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더러는 쌩뚱맞을 수도 있겠다.
이 마당에 거시사라니.
1989년에 하와이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주최한 거시사에 관한 사회이론 세미나를 바탕으로 나온 책이고, 한국어 번역본은 2005년 봄에 나왔다. "편집자 서문"에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한국의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식으로 출간의의를 밝혀 놓았다.(불필요한 얘기 같다.)
사마천에서부터 아이슬러까지 20명의 거시사가들과 그들의 이론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들의 생각을 비교하고 종합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상 편집이 산만하고 각 장의 시도가 무리였다는 생각도 든다. 세미나를 정리한 책이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한 것 같은데, 세미나의 흐름을 따라서 편집하기보다는 아예 전체적으로 새로 구성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거시사란 사회 체제의 궤적을 따라가며 패턴을 발견하고자 하는 역사 연구 방식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과 사물에 대한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니라, 탐색할 수 있는 가장 먼 과거부터 내가 살고 있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좇는 것이며, 그 안에서 하나의 공통된 맥을 짚는 것이다.
따라서 거시사에서는 무엇보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관점이 중요하다. 역사를 어떤 기제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지, 인간은 어떤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지에 대한 시각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사관史觀이라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20인의 거시사가들은 각자 나름의 사관에 따라 자신의(자신이 접한) 역사를 정리한다. 그것이 음양오행설에 따른 순환형 역사이든, 신의 뜻에 따라 정해진 "종말"을 향해 치닫는 선형 역사이든, 각각의 거시사가들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만든 체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때 쇠퇴하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때 흥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관을 통해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어떤 것을 피하고 어떤 것을 취해야 할지도 알 수 있다.
비슷비슷한 미시사 소품들을 통해 잡학지식을 늘릴 수 있었다면(비아냥이 아니다), 이 책을 보면서 역사에 대한 큰 틀의 고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거시사가는 담론의 흐름을 사소한 것에서 거대한 단계 층위의 사건으로 돌려놓는다. 이들의 단계들은 정책 결정을 위한 구체적 자료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미래에 대한 대안적 사고방식을 제공한다. 단계들은 또한 미래에 대한 연구에 닻을 제공하며, 토론이나 대화가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제공한다. 이들 단계가 없다면, 미래에 대한 생각은 몹시 특이하거나 지나치게 가치 중심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305쪽)
각 거시사가의 이론은 행여나 심심할 때 소개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심심할 틈이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라이엔 아이슬러의 "지배자 모델에서 동반자 모델로의 전환"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