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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붉은 울음 - 한센병 할머니의 詩, 삶을 치유하다
김성리 지음 / 알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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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어요. 한 자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대충 읽을 수 없는 책이더라고요. 저자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정성껏 썼겠죠. 할머니의 삶처럼 한 발 한 발 지긋이 디뎌가며 썼겠죠. 저도 정성껏 읽었어요. 그게 내가 할머니께 할 수 있는 예의 같아서요. 할머니께 참으로 고맙고,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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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마운드에 서다 - 자이언츠 키드의 사회인 야구 도전기
정범준 지음 / 알렙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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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지루할 수 있는 책이다. 대단한 야구선수 얘기도 아니고, 치명적인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펼쳐지지도 않는다. 그저 사지 멀쩡하고 평범한 이 책의 저자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서 서른 아홉에 처음 야구를 시작하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고, 투수가 되어 마운드에 오르고, 이제는 홈런을 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눈이 가고 손이 간다. 먼저 저자가 글을 잘 쓴다는 게 큰 장점이다. 별 것 없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글맛 자체에 쏠려서 책을 놓지 않게 된다. 또 하나는.... 이게 가장 큰 것인데... 주인공의 모습 안에서 자꾸만 나를 찾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이처럼, 야구를 하고 싶다고... 아니, 나도, 그이처럼, 무언가 새로운 걸, 밥벌이랑은 큰 상관은 없지만,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나이 마흔에 우리는 마운드에 오른다. 마운드... 가장 고독하고 외롭고 두려운 자리다. 나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지는 자리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상상은 하지 못한 채 마운드에 매달려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거다. 저절로, 우리는 마운드에 올라 서 있는 셈이다.
저자에게 마운드는 나이 서른아홉에 처음 도전하는 무언가를 의미할 테다. 그는 다 늦은 서른아홉에 사회인 야구를 시작했고, 거기서 더 잘하고 싶어서 따로 야구 강습까지 받았다. 사사십육(네 명의 타자를 공 열여섯 개로 모두 볼넷) 사건을 시작으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어느새 안정적인 피칭을 하는 투수가 되고, 이제는 홈런을 날려 보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다. 
나는 그런 적이 있었나 싶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등 떠밀려 서게 된 마운드에서 이제나 떨어질까 저제나 밀려날까 걱정만 하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내가 선택한 마운드가 아닌 것이다. 
책을 읽은 뒤 나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날아오는 공을 내 힘껏 때려보고 싶고, 내가 선택한 마운드에서 긍정적인 책임도 지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홈런을 날려보고 싶어졌다. 그래 어차피 마운드에 섰으니 잘 던지고 잘 마무리하고, 홈런도 한 방 날려야 인생아닌다. 야구도,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지 않느냐!!

===============

책에는 중간중간 이런저런 야구 명언들이 있다. 그런데 읽어 보면 그게 단지 야구 명언이 아닌 거다. 내 삶에 팍팍 꽂히는 말들인 거다. 그래서인가 보다. 야구를 인생이라고 하는 이유가...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_크리스티 매튜슨
"소시민은 도전자를 비웃는다" - 노모 히데오
"분한 마음을 품어라. 왜 안 되는지, 왜 못하는지 억울해하고 연구를 하라" _ 김성근
"내일 경기를 위해서 투수를 아낄 필요는 없다. 내일은 비가 올지 모르니까" _ 레오 듀로처
"야구라는 종목은 경기장에서 땀 흘리는 게 아니라 경기 전에 땀을 흘리는 것이다. 야구는 힘들다.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해야 하니까." _ 니시오카 츠요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_ 요기 베라...

'야구'를 '인생'으로 바꾸면 벽에 걸어놔도 될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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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뛰는 삶의 이력서로 다시 써라! - 인생의 롤모델을 찾아 떠난 인터뷰 세계여행
볼프강 하펜마이어 외 지음, 김요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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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살.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아이가 둘이다. 내 소유의 아파트가 있지만 앞으로 30년 동안(정확하게 28년) 갚아야 할 대출금이 산더미이고, 자동차가 있지만 30개월 동안 갚아야 할 할부금이 남아 있다.
넉넉치 않은 월급으로 매달 똑 떨어지게 생활하고 있고, 일 때문이든 육아 때문이든 자기계발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가방 안에 책 한 권을 항상 넣어 다니긴 하지만, 출퇴근길 전철과 버스에서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늘 일에 치이고 있으며, 어쩌다 남들처럼 퇴근하는 날에는 아이들에게 아빠 얼굴 구경시켜 주느라 책 한 줄 펼쳐 보지 못하고 산다.
열심히 일하는 게 인생의 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5년까지는 지금 직장에서 버티겠지만, 그 후는 막막하다. 평생 직장도 쉽지 않으며, 지금 하는 일 또한 평생 직장으로 안정감은 떨어진다. 세 살, 한 살배기 아이를 도맡아 키우고 있는 아내는 사회복지 관련 학점 인증을 받으려고 사이버 대학에 등록했지만 강의 듣기도 빠듯하고, 불안한 앞날에 틈만 나면 부업과 창업을 뒤지고 있다.
현실을 피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또 일에 파묻힌다. 그렇게 시간은 가겠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고 소문을 들을까? 열심히 일하고 인정 받고 알맞게 승진하다가 때 되면 퇴사하여(당하여) 본의 아니게 자기 사업하고, 간신히 아이들 대학 보내고 부족하면 학자금 대출 받고 얼른얼른 시집장가 보내면 되는 걸까? 그러면 잘사는 걸까? 아니, 그렇게라도 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 또한 그랬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쉽지 않다. 그때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돌아 보면 지금 그저 어영부영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항상 절벽 끝에 서 있다. 조금만 여차해도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 판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은... 글쎄 꿈속에서나 가능할까?
이 책을 보니 10년 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나는 꿈도 많았고, 제법 컸다. 대학원에 가고 싶었고, 거기서 좀 날려 보고 싶었다. 유학도 가고 싶었고, 거기서도 날려 보고 싶었다. 아예 작정하고 사회운동에 뛰어들 생각도 했고, 언론인이 되어 고생스럽긴 해도 폽 나는 삶을 꿈꿔 보기도 했다. 활짝 펼친 부채처럼 내 앞에 많은 길이 있었고 무엇이든 선택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선택만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인생 쉽지 않더라.
문제는 용기였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내가 실제로 한 것은 없었다. 결국 흘러가는 대로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산 줄 알았는데, 순간순간의 선택에 떠밀리고 말았다. 
이 책에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 사람들이 나온다. 자신들의 삶의 영역 안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던 사람들이었고, 또 일부는 그랬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은 산다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들었고, 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 극복하려 한 사람들이다. 이미 스스로 나이가 많다거나 가진 게 없다거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혹은 그저 조금 더 편하게 지냈을 뿐이다. 행복? 글쎄, 그들도 끊임없이 행복이란 무엇인지 물으며 고민했을 것이다. 신해철의 노랫말처럼 "여자, 큰 집, 빠른 차"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23명의 삶은 하루하루가 가슴 벅차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또 다른 일, 자신이 하고 싶으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일을 찾아 그것을 실행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바쁘지만 일에 치이지는 않고, 수입이 적을지 모르지만 가난하지 않다. 마음이 풍요롭기 때문이다. 더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만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용기가 있으니 새로운 도전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가난의 바다 한가운데서 일생을 돈만 좇으며 살았노라고 말하며 죽긴 싫"다는 남아공 빈민 출신의 아이작 숑웨. 그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피하지 않았고, 거기에 순응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만 꾸리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한 것이다.
아마존 정글에서 자랐으나 페루 수도 리마의 자칭 "쓰레기 여왕"이 된 알비나. 그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유학온 도시의 쓰레기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녀는 쓰레기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고, 쓰레기를 자원으로 바꾸었으며, 도시의 빈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월스트리트의 은행가 출신 크리스 아이레. 악마의 심부름꾼이 되어 자신과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돈과 일만 좇으며 산 그의 삶을 바꾼 것은 가족이었다. 일에 파묻혀 아이들과의 대화도 없이 사는 삶을 그는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프리미엄을 활용해 세상에 긍정의 임팩트를 던지고 있다. 바로 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를 연결해 주는 벤처캐피털을 설립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23명의 이야기는 모두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겁을 집어먹지만 않는다면,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또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돈도 없고, 아이들도 둘이나 있다고? 글쎄, 그게 장점이 될지 누가 아는가? 나는 더 잃을 것도 없고, 아이들을 나처럼 살게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기만 하면서 살 것인가?

 

PS: "만약 누군가가 죽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런, 사무실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크리스 아이레의 이 말이 바로 나한테 딱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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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2010-11-18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나태자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나태자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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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세 살배기 첫째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했다. 그리고 사흘 후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아이마저 같은 병으로 병실 신세를 졌다. 여섯 명이 쓰는 소아과 병실에는 폐렴인 우리 아이 둘과 신종플루(H1N1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아이 하나, 신종플루 백신 부작용으로 들어온 아이 둘, 이렇게 다섯이 있었다. 신종플루 환자와 신종플루 백신 부작용 환자, 그리고 신종플루 의심 환자가 한 방에 있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신종플루는 과연 대단했다. 매일 뉴스에서는 새로운 사망자 수를 세기 바빴고, 세계적인 권력기관인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전 세계 인구의 30%인 20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특히 평소 건강에 유난을 떨기로 유명한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WHO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은 새로 발견된 플루에 대한 기대치(?)를 주저없이 부풀렸고, 언론은 마치 판데믹이라도 다가온 양 인류의 종말을 목전에 둔 듯이 보도했다. 언론은 “타미플루 같은 약을 빨리 먹는 것만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는 식으로 보도했고, 그저 열이 나거나 기침이 심해 병원을 찾은 사람들까지 모두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묶어 가파른 그래프를 ‘보여 주기’에 이르렀다. 이성적이고 신중한 보도는 찾기 어려웠다. 텔레비전 뉴스는 매일의 사망자 수를 알리면서 시작했고, 급기야 어느 탤런트의 아들마저 사망했다는 소식에 시청자는 마치 자신의 친척이라도 겪은 일인 양 공포에 떨었다.

 

 

미디어는 이야깃거리와 볼거리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그것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만큼 충격적이라면 금상첨화다. 전문가 그룹이 이야기했으니 따로 검증을 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 그룹의 발표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증폭시킬 것인지만을 고려한다. “가파른 상승 곡선”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 단골메뉴다. 자칫 방심하면 그들의 보도는 진실이 되어 버리고, 그들의 보도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우리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삶의 질을 포기하고 만다.

 

 

여기 두 권의 책이 있다. 2005년 여름 황우석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찬물’을 끼얹은 이충웅의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와 2009년 초에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책 《문명의 관객》이다. 전자는 과학 뉴스를 전하는 문자 매체에 집중한 책이라면, 후자는 과학 뉴스를 전하는 영상 매체에 집중했다. 문자 매체의 힘은 그것이 상당한 신뢰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영상 매체의 힘은 주장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상은 조금 다르지만 이 두 권의 책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 과학과 관련된 미디어의 보도에는 일정한 “열광”과 “공포”의 패턴이 존재하고, 뉴스를 읽고 듣고 보는 수용자는 그 패턴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들은 미디어에 비친 기술문명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책이고, 그 주인공은 과학 뉴스를 접하는 우리 수용자들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기술문명과 미디어의 수용자인 우리에게, 과학기술과 미디어가 벌이는 연극 속에 끼어들어 환호하고 열광하는 조연이 아니라 조망하고 성찰하는 관객이 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 시대 “문명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주장한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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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탄생 - 캄브리아기 폭발의 수수께끼를 풀다 오파비니아 2
앤드루 파커 지음, 오숙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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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깊은 밤 잠결에 깬 아이가 물을 떠달라고 했다. 눈꺼풀이 무겁기도 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내 몸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눈을 감고 더듬더듬 거실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고, 컵을 찾았다. 물이 얼마나 찼는지 몰라 컵 안에 손가락을 넣고 물을 따랐다. 그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그전까지의 시각정보를 통해 얻은 기억력에만 의존해 깊은 밤 아이에게 물을 떠먹였다.


 


이게 모두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은 탓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시력을 잃게 된다면,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 또한 전혀 없다면, 35km 떨어진 집까지 나는 온전히 내 힘으로 갈 수 있을까? 시각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나는 나머지 감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해 생활할 수 있을까? 나뿐 아니라 모두 시력을 잃게 된다면, 사회의 꼴은 어떻게 될 것이며, 인간은 어떤 생활을 할 것인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올린 문명과 정교해진 인간성은 어떤 미래를 맞게 될 것인가? 도대체 “눈”이란 무엇인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억 4300만 년 전, 지질학에서 캄브리아기라고 부르는 시기 이전까지 지구상 동물계에는 단 3개의 동물문門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00만 년 사이, 즉 5억 3800만 년까지 동물문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38개로 늘어났다. 이것이 바로 “캄브리아기 폭발”이고, 이 사건을 중심으로 지질연대표는 양분된다. 지구의 탄생부터 캄브리아기 폭발 이전까지의 40억 년 이상의 시간은 모두 선캄브리아기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볼 때 찰나에 불과한 그 시기에 어떻게 그토록 폭발적인 생명의 진화가 가능했을까?


영국의 젊은 과학자 엔드루 파커는 책 <눈의 탄생>에서 이 ‘캄브리아기 폭발’에 숨겨진 비밀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폭발’의 비밀은 바로 ‘눈’이다. 캄브리아기 초기 빛의 방향만을 감지하던 감광기에 지나지 않던 신경세포의 한 가닥이 한 순간 외부세계의 빛 정보를 받아들여 시각 이미지를 형성하는 ‘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을 얻은 생명체들은 단시간에 폭발적인 진화를 일으키며 지금과 같은 다양한 동물문으로 분기했다.


지구상 최초로 시각을 가진 생물(저자는 삽엽충으로 추정한다)은 사냥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포식자가 되고, 피식자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체색을 띄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포식자 역시 들키지 않고 피식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체색을 활용했다. 강력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딱딱한 껍질이나 체내의 골격을 가진 생물이 등장했다.


책에는 ‘눈’이 동물계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눈이 없는 동물의 진화 속도가 더딘 근거와 이유가 자세히 제시되었다. 또한 빛의 물리학적 성질과 눈의 형태에 따른 시각 정보의 수용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를 바탕으로 캄브리아기 눈을 가진 생명체들의 화석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시각정보를 활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삶이라는 투쟁에 활용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눈의 탄생은 단지 빛에 대한 감각, 시각정보의 처리 능력이 생긴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빛과 시각이라는 선택압력에 따라서 동물은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어기제들을 극적으로 진화시켰다.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동물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눈을 감는다. 시각정보에 의존하지 않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만큼의 적응기간이 필요할까? 모두가 눈을 감은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인간은 지금처럼 진화할 수 있었을까? 시각을 대체한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과연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 다시 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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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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