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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탄생 - 캄브리아기 폭발의 수수께끼를 풀다 ㅣ 오파비니아 2
앤드루 파커 지음, 오숙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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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깊은 밤 잠결에 깬 아이가 물을 떠달라고 했다. 눈꺼풀이 무겁기도 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내 몸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눈을 감고 더듬더듬 거실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고, 컵을 찾았다. 물이 얼마나 찼는지 몰라 컵 안에 손가락을 넣고 물을 따랐다. 그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그전까지의 시각정보를 통해 얻은 기억력에만 의존해 깊은 밤 아이에게 물을 떠먹였다.
이게 모두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은 탓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시력을 잃게 된다면,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 또한 전혀 없다면, 35km 떨어진 집까지 나는 온전히 내 힘으로 갈 수 있을까? 시각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나는 나머지 감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해 생활할 수 있을까? 나뿐 아니라 모두 시력을 잃게 된다면, 사회의 꼴은 어떻게 될 것이며, 인간은 어떤 생활을 할 것인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올린 문명과 정교해진 인간성은 어떤 미래를 맞게 될 것인가? 도대체 “눈”이란 무엇인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억 4300만 년 전, 지질학에서 캄브리아기라고 부르는 시기 이전까지 지구상 동물계에는 단 3개의 동물문門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00만 년 사이, 즉 5억 3800만 년까지 동물문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38개로 늘어났다. 이것이 바로 “캄브리아기 폭발”이고, 이 사건을 중심으로 지질연대표는 양분된다. 지구의 탄생부터 캄브리아기 폭발 이전까지의 40억 년 이상의 시간은 모두 선캄브리아기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볼 때 찰나에 불과한 그 시기에 어떻게 그토록 폭발적인 생명의 진화가 가능했을까?
영국의 젊은 과학자 엔드루 파커는 책 <눈의 탄생>에서 이 ‘캄브리아기 폭발’에 숨겨진 비밀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폭발’의 비밀은 바로 ‘눈’이다. 캄브리아기 초기 빛의 방향만을 감지하던 감광기에 지나지 않던 신경세포의 한 가닥이 한 순간 외부세계의 빛 정보를 받아들여 시각 이미지를 형성하는 ‘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을 얻은 생명체들은 단시간에 폭발적인 진화를 일으키며 지금과 같은 다양한 동물문으로 분기했다.
지구상 최초로 시각을 가진 생물(저자는 삽엽충으로 추정한다)은 사냥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포식자가 되고, 피식자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체색을 띄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포식자 역시 들키지 않고 피식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체색을 활용했다. 강력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딱딱한 껍질이나 체내의 골격을 가진 생물이 등장했다.
책에는 ‘눈’이 동물계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눈이 없는 동물의 진화 속도가 더딘 근거와 이유가 자세히 제시되었다. 또한 빛의 물리학적 성질과 눈의 형태에 따른 시각 정보의 수용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를 바탕으로 캄브리아기 눈을 가진 생명체들의 화석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시각정보를 활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삶이라는 투쟁에 활용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눈의 탄생은 단지 빛에 대한 감각, 시각정보의 처리 능력이 생긴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빛과 시각이라는 선택압력에 따라서 동물은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어기제들을 극적으로 진화시켰다.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동물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눈을 감는다. 시각정보에 의존하지 않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만큼의 적응기간이 필요할까? 모두가 눈을 감은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인간은 지금처럼 진화할 수 있었을까? 시각을 대체한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과연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 다시 눈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