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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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세 살배기 첫째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했다. 그리고 사흘 후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아이마저 같은 병으로 병실 신세를 졌다. 여섯 명이 쓰는 소아과 병실에는 폐렴인 우리 아이 둘과 신종플루(H1N1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아이 하나, 신종플루 백신 부작용으로 들어온 아이 둘, 이렇게 다섯이 있었다. 신종플루 환자와 신종플루 백신 부작용 환자, 그리고 신종플루 의심 환자가 한 방에 있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신종플루는 과연 대단했다. 매일 뉴스에서는 새로운 사망자 수를 세기 바빴고, 세계적인 권력기관인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전 세계 인구의 30%인 20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특히 평소 건강에 유난을 떨기로 유명한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WHO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은 새로 발견된 플루에 대한 기대치(?)를 주저없이 부풀렸고, 언론은 마치 판데믹이라도 다가온 양 인류의 종말을 목전에 둔 듯이 보도했다. 언론은 “타미플루 같은 약을 빨리 먹는 것만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는 식으로 보도했고, 그저 열이 나거나 기침이 심해 병원을 찾은 사람들까지 모두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묶어 가파른 그래프를 ‘보여 주기’에 이르렀다. 이성적이고 신중한 보도는 찾기 어려웠다. 텔레비전 뉴스는 매일의 사망자 수를 알리면서 시작했고, 급기야 어느 탤런트의 아들마저 사망했다는 소식에 시청자는 마치 자신의 친척이라도 겪은 일인 양 공포에 떨었다.

 

 

미디어는 이야깃거리와 볼거리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그것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만큼 충격적이라면 금상첨화다. 전문가 그룹이 이야기했으니 따로 검증을 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 그룹의 발표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증폭시킬 것인지만을 고려한다. “가파른 상승 곡선”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 단골메뉴다. 자칫 방심하면 그들의 보도는 진실이 되어 버리고, 그들의 보도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우리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삶의 질을 포기하고 만다.

 

 

여기 두 권의 책이 있다. 2005년 여름 황우석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찬물’을 끼얹은 이충웅의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와 2009년 초에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책 《문명의 관객》이다. 전자는 과학 뉴스를 전하는 문자 매체에 집중한 책이라면, 후자는 과학 뉴스를 전하는 영상 매체에 집중했다. 문자 매체의 힘은 그것이 상당한 신뢰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영상 매체의 힘은 주장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상은 조금 다르지만 이 두 권의 책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 과학과 관련된 미디어의 보도에는 일정한 “열광”과 “공포”의 패턴이 존재하고, 뉴스를 읽고 듣고 보는 수용자는 그 패턴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들은 미디어에 비친 기술문명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책이고, 그 주인공은 과학 뉴스를 접하는 우리 수용자들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기술문명과 미디어의 수용자인 우리에게, 과학기술과 미디어가 벌이는 연극 속에 끼어들어 환호하고 열광하는 조연이 아니라 조망하고 성찰하는 관객이 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 시대 “문명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주장한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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