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자이오사무

무라카미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가 다자이오사무와 레이먼트 카버 라고 들었다

1909년에 태어났고 1948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에 '성공'하여 삶을 마칠때까지 5번의 자살시도가 있었고

그 중엔 여자와의 집단자살시도도 있었는데 여자만 죽은 경우도 있었다

왜 그렇게 괴로운 인생을 보냈을까

전쟁통에 다자이 오사무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으로 졸부가 되었다고 한다

'부자'로 산다는 태생적인 원죄의식이 있었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기독교에도 빠지고 사회주의 운동도 했으나 근원적인 돌파구는 되지 못하고 유일한 돌파구였던 문학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것이 유일하지만, 유튜브에서 영화로 『여학생』을 보기도 했는데.. 인간과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와 자신의 죄의식이 담겨 있다

인간'실격'

감히 실격이라는게 있을 수 있나

실격은 심판이 주는 것인데, 누가 실격판정을 하는 것인가

그것도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실격판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에서 인간이 실격판정을 받는 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인간이란 무얼까

얼만큼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거지

주인공은 요조

그 자신이 서문, 첫번째 수기, 두번째 수기, 세번째 수기, 후기 까지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요조의 친구로 다케이치, 호리키가 등장하고 여친으로 쓰네코, 시즈코, 요시코가 등장한다.

~습니다체로 써져서 그런지, 다자이오사무의 인생을 조금 엿보고 읽어서 그런지 자전적인 느낌이 강하다

p.133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보통 '괜찮아 다 지나갈거야'..라고 할 때 나는 고통이 지나간다는 말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다' 안에는 행복과 편안함 안전 건강...이런 것들도 다 포함되는 것이었다 세상은, 삶은 실로 끔찍한 것인것이다 아...

이 책을 읽을 즈음에 나쓰메소세키의 『산시로』도 같이 읽었다. 『산시로』는 두꺼워서 집에있을때 읽고 『인간실격』은 얇고 가벼워서 어디다닐때 갖고다니며 읽었더니 두 내용이 막 겹쳐가지고 좀 헷갈리는거라. 그래서 두번읽었다. 두번읽으니 명확해진다. 슬픔과 우울이 명확해진다.

인생을, 삶을, 인간을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것이 사는 것에 편하지만

쓸데없이 생각많고 고민많은 기질로 태어난 사람이 있는 거다. 그게 나다.

쓸데없이 생각만 많고 개뿔 실존주의적 행동은 하지 않지만 그냥 마음은 고되고 슬플때가 많은데 그래도 인생은 재밌게 살려고 노력한다. 뭐냐 그게 완전 모순. 근데 그렇게 사는 사람의 인생도 있는거다 나처럼.

다자이오사무는 인간과 죄에 대한 고민이 깊어 글로 쓰고 수차례 삶을 마무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마무리에 성공하는..그런 사람인거고, 나는 인간과 죄에 대한 고민이 깊지만 굳이 글로까진 쓰지 않고 고민만 하다가 골치가 아파서 여행이나 가방을 검색하고 여행을 가거나 가방은 대부분 못사고 책을 읽으며 고민을 확대 혹은 축소해보면서... 고민의 갈래가 이렇게 저렇게 뻗어가며 때로는 재미있는 쪽으로 고민의 에너지가 뻗어나갈때면 '살아있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며 마무리대신 계속 살아있기를 결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노키즈 비혼 비출산 딩크 등 비인간적인(?) 구호를 외치지만,

그래도 살아있습시다.

행복도 건강도 편안함도 지나가는 것이지만 결국 고통도 지나간다는 것은.. 살아있어야 경험할 수 있는거니까.

살아서 좋은 것들이 있어요. 있겠지. 있을겁니다. 괜찮을거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이 쓰여진게 1907년인가 그렇다

읽으면서 정말 누구에게든 이 소설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나, 이 소설이 쓰여졌을 당시의 일본의 상황 혹은 그 시대 사람들의 전반적인 경향등을 배우고 읽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인터넷에는 다른 대표작들에 대한 얘긴 많아도 이 <산시로>에 대한 이야기는 잘 없는거같더라고.

이야기의 흐름이나 명문장이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이나 다 정말 분명하고 너무 좋은데 이 모든 것들이 더해져서 보내고 있는 그 메세지를 잘 간파하지 못하겠다. 간파해보려 두번을 읽었는데 모르겠는건 모르겠는거고..

뒤에 작품해설을 소설가 김연수가 썼던데.. 생각보다 길어서 다는 읽지 못했다

아무래도 김연수는 소설가이다보니 소설의 구조로서 작품을 보고 있어서 사실 이해를 완벽하게 돕고 있진 않는것 같다

정말 일본이 우리나라랑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얽혀있는게 정말 한스러울만큼 쿨하고 멋진 작가들이 엄청 많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은 그들이 쏟아내는 문장의 개성이 큰만큼 국가의 뒤에 숨거나 비겁하게 굴지 않는다.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비판적이다. 근데 나라의 대표들은 왜저러지? 우리나라도 뭐 남얘기할건 아니지만..

나쓰메소세키나 미우라아야코, 사노요코와 후지와라 신야 등을 생각하면, 일본 이미지가 저런게 이해가 안돼.

작가들 얼마나 멀쩡한데..

 

p.33~34

"아무리 러일전쟁에서 이겨 일등국가가 되었다고 해도 틀려먹은거지.........도쿄가 처음이라면 후지산을 본 적이 없겠군......그게 일본 제일의 명물이니까. 그것 외에 자랑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지. 그런데 그 후지산은 옛날부터 있던 쳔언의 자연이라 어쩔 수 없는거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니까."

(중략)

"하지만 일본도 앞으로 점점 발전해 나가겠지요."

.

.

"망하겠지."

구마모토에서는 이런 말을 입에 담으면 당장 몰매를 맞는다. 잘못하면 국적취급을 당한다. 산시로는 머릿속 어디에도 그런 사상을 집어 넣을 여유가 없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중략)

"일본보다 머릿속이 넓겠지." 사내가 말을 이었다. "얽매이면 안되네. 아무리 일본을 위한다고 해도 지나친 편애는 도리어 손해를 끼칠 뿐이니까."

이 말을 들었을 때 산시로는 정말 구마모토를 떠났다는 걸 실감했다. 동시에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자신은 굉장히 비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p.94

"자연을 번역하면 모두 인간이 되어버리니까 재미있지. 숭고하다든가 위대하다든가 웅장하다든가 말이야."

p.104

산시로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오히려 사색에 잠겨 거닐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비교적 책을 읽지 않는다. 그 대신 헤아려볼 만한 정경을 만나면 몇번이고 머릿속에서 새로이 기뻐한다.

 

p.107~108

산시로는 멀리서 이 세계를 바라보며 신기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이 세계 어딘가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세계 어딘가에 결함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신은 이 세계 어딘가의 주인공이어야 할 자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원만한 발달을 간절히 바라야 할 이 세꼐가 오히려 자신을 속박하여 자유롭게 출입해야 할 통로를 막고 있다. 산시로는 그것이 이상했다.

....요컨대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고 몸을 학문에 맡기는 것보다 나은 건 없다는 것이다.

(중략)

...아름다운 여성은 많다. 아름다운 여성을 번역하면 여러가지가 된다.....적어도 인격상의 말로 번역할 수 있는 한 그 번역에서 생기는 감화의 범위를 넓혀 자신의 개성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아름다운 여성을 가능한 한 많이 접촉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내 한 사람을 알고 만족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기꺼이 불완전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p.155

미네코는 산시로를 봤다. 산시로는 일어서려다가 다시 풀밭에 앉았다. 그 때 산시로는 어쩐지 이 여자에게는 도저히 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신의 속마음을 간파당했다는 자각에 따르는 일종의 어렴풋한 굴욕을 느꼈다.

(중략)

산시로는 이런 경우 대답을 잘 못한다. 순간의 기회가 지나가고 머리가 냉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면 좋았을걸,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한다. 나는 늘 이런다.

p.165

하지만 다음 순간 뭘 읽었는지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없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그저 실컷 그리고 열심히 읽었다는 기분만 든다. 산시로는 요지로의 솜씨에 감탄했다.

p.178

...새로운 서양의 압박은 사회상에서도 문예상에서도 우리들 신시대의 청년에게는 낡은 일본의 압박과 마찬가지로 고통이다.

(중략)

우리는 서양의 문예에 얽매이기 위해 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얽매인 마음에서 해탈하기 위해 이를 연구하는 것이다.......문예는 기술도 아니고 시무도 아니다. 인생의 근본 의의에 크게 맞닿아 있는 사회의 원동력이다.

(중략)

사회는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회의 산물인 문예 역시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기세를 타고 우리의 이상대로 문예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영세한 개인을 단결시켜 자신의 운명을 충실히 하고 발전하게 하고 팽창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중간부터 많이 언급되는 문장이 데 테 파불라 de te fabula "너에 대한 이야기(남의 일이 아니다)" 라는 라틴어이다. 남일이 아니야, 니 일이야. 라는 뜻의 이 말이 마음에 꽂혀서 '이건 남의 일이 아니야 내 일이야' 싶을 때마다 저 말을 되뇌이곤 했다. 데 테 파불라 데 테 파불라...

p.192

학문을 하는 사람이 번잡한 속세를 피해 되도록 단순한 생활을 견디는 것은 모두 연구를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노노미야처럼 외국에까지 알려질 정도의 일을 하는 사람이 평범한 학생과 마찬가지로 하숙집에 들어간 것도 필경 그가 훌륭해서이니 하숙집이 누추할수록 존경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노미야에 대한 미네코의 찬사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p.199

" 어머님의 말씀은 되도록 들어드리는 게 좋네. 요즘 청년들은 우리의 시대의 청년과 달리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탈이야. 우리가 학생일 때는 무슨 일을 하든 남을 떠난 적이 없었네. 모든 것이 천황이라든가 부모라든가 국가라든가 사회라든가 다 타인 본위였지. 그걸 한마디로 말하면 교육을 받은 자가 모두 위선자였다는 거야. 사회가 변화하면서 결국 그 위선을 끝까지 부리지 못하게 된 결과 차차 사상이나 행위에 자기 본위를 수입하게 되니까 이번에는 자의식이 너무 발달해버린 거지. 옛날의 위선자 대신 지금은 노악가(露惡家)만 있는 상태가 되었네."

p.200

산시로는 내심 감탄했지만 이야기가 빗나가 엉뚱한 곳으로 구부러지고, 구부러지는대로 굵어져갔으므로 살짝 놀라고 있었다. 그러자 히로타 선생도 겨우 알아챈 모양이다.

p.201

"자네, 설날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듣고 실제로 그런 기분이 들던가?"

..

"들지 않을거네. 그것과 마찬가지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느니 뒤집어질정도로 웃었다느니 하는 놈들 중에 실제로 웃엇던 놈은 하나도 없어. 친절도 그런거네. ...."

 

근데 새해 복 많이 받으란 말 말고 마땅한 인사가 없잖아요?

(우에노의 세이요켄이라는 장소가 나오는데 이 곳은 도쿄 우에노 공원 내에 있는 서양요릿집으로 1876년에 생겨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다고..한다. 이런거 좀 부럽다. 우리는 대한제국망하고 전쟁까지 치르면서 100년이상 이어온 식당도 없거니와 건물들이 대부분 새로 생긴것들이라.. 몇백년동안 부가 흘러온 일본인의 이야기를 접하면 좀 신기하다. 놀랍고)

p.251

"...나한테 여윳돈이 있다고 하세. 그렇다면 그 돈을 자네한테 돌려받는것보다 그냥 빌려준 채 있는 것이 기분 좋겠지. 사람은 말이네, 자신이 곤란하지 않은 선에서 되도록 남한테 친절을 베풀고 싶은 법이거든."

 

*피에르 로티(Pierre Loti, 1850~1923). 프랑스의 소설가. 1885년 일본에 들른 견문을 바탕으로『국화부인』,『 가을의 일본』을 씀

p.283

산시로가 미네코를 알고 난 이래 그녀는 일찍이 긴 말을 한 적이 없다. 대개의 경우 한두마디로 끝냈다. 게다가 아주 간단한 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산시로의 귀에는 일종의 깊은 울림을 준다.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거의 들을 수 없는 빛깔이 나온다. 산시로는 그것에 탄복했다. 그것이 신기했다.

p.284

"당신을 만나러 온 겁니다."

p.285

"그냥 당신을 만나러 온 겁니다."

요 부분들 연애소설 같고요.

 

 

연애소설같은 장치들이 있긴 하지만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좀 웅장(?)하고,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좀 웅장한 느낌이 없지 않고, 이런거 시대소설이라 해야할까 시절소설이라 해야할까. 1900년대가 일본에겐 어떤 시즌이었을까 궁금했다. 대외적으로는 계속 전쟁을 하고 있거나 전쟁을 준비했을텐데 막상 대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본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

어떤 모습이었다고 해도 지금 일본의 국제적인 위치는 참부러운 수준이긴 하지만.

일본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 그 나라의 이미지가 떠오르는건 어쩔 수 없는거임

기욤뮈소 작품을 읽으면서 프랑스를 떠올린다던지, 알랭 드 보통을 읽으며 스위스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그들의 작품을 읽는거지.

근데 일본작가의 작품들은 유독 나라와 연관짓게 된다

산시로..

다 읽고 나서 몇분정도 멍하게 있었다

연애소설을 읽은것 같기도 하고

산시로라는 인물의 성장사 같기도 하고

단순히 그렇게 읽고 아 그랬구나 하기엔 이 책의 분량이 350페이지가 넘는다.

이 여운과 함께 제목을 기억하며

일본의 근현대 문학을 배울 기회를 기다리고 찾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 차 사는 날 김영진 그림책 10
김영진 지음 / 길벗어린이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ㅎㅔ헤

그새 또 그림책들을 몇권 샀더라고요 허허

재미있고 좋아서 독후감삼아 추천삼아 올려봅니다

사실 이 책들은 순전히 '직관'으로 산 책들이어요

누구의 책리뷰나 추천..이런게 아니고 그냥 지나다가 그냥 산거

아 <엄마아빠결혼이야기>는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작가분 책 중에서 산 것이고..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는 "성찬"씨가 그린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

그 사실을 모르고 샀는데.. 알게되고 깜짝 놀랐어요

눈오는 겨울과 그런 곳에서 사는 펭귄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에 나라인 "남극"

그 남극으로 가는 지하철!

좋아하는 지하철을 타고 좋아하는 남극에 다녀오는 이야기

그림과 이야기가 친숙하고 정겨워서 재미있어요

그림책 플롯(구성?)의 핵심은

가상의 세계로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남극에 갔다가

이렇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게 중요해요

아이들이 놀이를 하다가도 놀이라는 가상의 상황에서 현실로 돌아오는게 중요하죠

현실과 가상을 구분해야해요

가상을 가정할 수도 있어야 하고

정리하고 현실로 돌아올 수도 있어야해요

어떤 가상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아이의 정서인지수준을 반영하는 것인데

(그래서 여보당신놀이도 중요하고, 여러가지 롤플레이 정말 추천합니다)

이렇게 그림책을 읽고 느끼고 보고 가상의 상황에 빠졌다가 돌아오는 모든 경험이

아이의(어른에게도 더더욱) 정서와 감정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마찬가지로, 모리스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요

이렇게 가상의 상황이 시작됩니다

여러가지 스토리들이 있었지만 결국 제방으로 돌아왔고, 평소와 같은 저녁밥이 있어요.

가상에서 현실로 돌아와야해요

게임에서도 현실로 돌아와야하고요!!^^

남편에게 선물해주려고 산 책이에요

(남편이 새 차를 사고 헌 차를 보낼때의 그 감정이 비슷하게 그려진 것 같아서)

정작 남편은 안좋아하고 애들이ㅋㅋㅋ

"지원이와 병관이"시리즈를 너무 좋아했던 때문인지 그린이보고 자꾸 병관이라고..

지원이 언니(누나) 어디갔냐고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편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읽는다고 해야할까

일단 이 분의 글 자체는 어렵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주는 능력이 있는 분이니 믿고 읽는다고나 할까.

그 와중에 유럽도시를 기행하고 책을 썼는데 파리도 포함되어 있어서 거의 출간과 동시에 샀다

그러나 읽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글이 어려워서 오래걸린건 아니고, 자꾸 맥이 끊긴다고 해야하나..

그러니까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쓴 글인데

이 도시들에 대해 책으로 쓰면서까지 말하고 싶은 것이 역사인지, 정치사인지, 지금과 다른 과거인지, 과거와 다른 지금인지..잘 모르겠더라고. 이런 것들을 다 말하고 싶었으니 다 아우르는 책을 쓴거겠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처럼 사유가 중심이된 글이거나

태원준의 글들처럼 에피소드(어머니랑 다녔으니) 혹은 지역소개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췌문들은 겁나 많았지만..

생각보다 유서깊은 도시들에 대해 읽으려고 드니 내가 버거워서 산만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테네-

p.22

20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사피엔스는 7만년 전쯤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났다는데, 우리의 조상들은 몇만 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유라시아대륙을 걸어서 횡단했거나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의 후손인 한국인에게는 '역마살 유전자'가 있는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야 이토록 미친 듯이 지구 표면의 모든 이름난 도시를 쏘다니겠는가.

p.32

그들은 폴리스의 영광과 번영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파르테논을 지었다. 그러나 이 신전은 사회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와 능력'임을 다툴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증명해보였다.

p.36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는 믿는 자에게는 진리이고 믿지 않는자에게는 헛소리이며 권력자에게는 쓸모가 있다.

p.54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역사서를 집필했고, 극작가들은 빼어난 작품을 썼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그들은 아테네에서 피레우스까지 성벽을 쌓았다. 성벽은 두려움의 건축적 표현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이룬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 오늘의 화려한 성공이 내일의 몰락을 가져올 비극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런 방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탈리아-

p.94

로마에 가서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착각이다. 이탈리아는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나라여서 어떤 도시도 혼자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지 못한다. 그렇구나, 나는 로마에 가보고 이태리 가봤어! 라고 말했는데...

p.98

왕국수립 이후 100년 동안 무려 2천5백만명의 이탈리아 국민이 나라를 떠났다. 처음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남미, 호주 등 소위 '신대륙'으로 건너갔고, 신대륙의 이민규제가 심해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를 비롯한 인접 국가로 퍼져나갔다. 세계 어느 도시에나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식당이 있고 할리우드 영화에 이탈리아계 갱단이 흔히 출몰한 데는 그런 사정이 있다.

p.111

4세기 초 여러 공동 황제와 부황제의 대립과 다툼으로 정치적 혼돈에 빠져있던 로마를 힘으로 평정하고 단독으로 제국을 통치했던 그는(콘스탄티누스 황제) 로마제국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였다.

그는 그냥 예수를 믿기만 한게 아니었다. 전임자들이 몰수했던 교회의 재산을 돌려주었고 지금의 가톨릭 교황에 해당하는 로마 주교에게 궁전을 기부했으며, 새 수도로 정한 콘스탄티노플 황궁 바로 앞에 '하기아 소피아'라는 소박한 교회도 지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수많은 소수 종교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종교도 어쩔 수 없이 정치의 은혜를 받아야 부흥한다.. 종교란 무얼까. 게다가 개신교란 무얼까.

p.118

귀족과 부자들이 토지를 독점한 가운데 제대군인과 빈민층이 늘어나자 원로원과 민회는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민회는 토지독점을 완화하는 개혁과 식량배급의 확충, 부채 탕감 조처, 제대군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원로원의 귀족들은 사유재산불가침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모든 요구를 거부했다. 평민회의 호민관으로서 토지개혁을 추진했던 그라쿠스 형제가 살해당하는 등 갈등은 정점을 향해 치달았지만, 기득권 집단인 원로원이 개혁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기존 공화정 체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제정으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심리적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있는것들이 더하고, 심하고, 너무하고..그렇다.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렇고 특히 옛날부터 그랬다니 위로가 되기도 하면서 인간이란 그때부터 지금까지 윤리도덕적인 부분에서 1도 발전이 없었나 싶어 씁쓸하다. 나도 당시의 귀족이거나 부자였다면 당연히 사유재산불가침을 내세웠을 것이고, 지금도 내가 교수나 고위공직자의 자리에 있다면 내 새끼들 군대빼고 명문대 보내는 것에 모든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p.121

그(카이사르)는 귀적이었지만 평민파에 가담했다. 어떤 술수도 마다하지 않고 권력 투쟁을 벌였지만 이긴 후에는 정적을 너그럽게 포용했다. 카이사르가 강남좌파인가 싶더라ㅋㅋ

-이스탄불-

p.170

역사라 무려 2천700년이나 되는 이스탄불의 최초 이름은 비잔티움(Byzantium)이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영어로는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뀐 4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수도였으며, 그 다음 500년은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었다.

오랜 세월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누렸던 이 도시는 20세기에 터키공화국의 영토가 된 후 국제도시의 면모를 거의 다 잃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의 역사와 문화는 실종되었고, 그때 만든 몇몇 건축물만 박제당한 공룡처럼 덩그러니 남아있다.

p.175

도시의 성격은 더 크게 바뀌었다. 예전의 이스탄불이 지녔던 문화적 종교적 민족적 다양성은 거의 다 사라졌다. 터키공화국이라는 그릇은 1천5백년 이어진 국제도시 이스탄불의 문화 자산을 담아낼 만큼 크지 않았던 듯하다. 이스탄불의 흠을 잡으려고 하는게 아니다. 이 도시의 오래된 건축물과 공간을 독해하려면 이런 변화를 고려해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

p.184

이스탄불에는 오스만제국 500년동안 지은 자미만 3천개가 넘는다.......대한민국은 기독교가 들어온 지 2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수도 서울에만 교회가 5천 개나 된다. 가톨릭 성당과 불교 사찰, 다른 종교시설가지 합하면 이스탄불 자미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다.

p.205

구시가의 시르케지 트램역 옆에 있는 기차역도 오스만제국 근대화의 흔적이다. 1883년 10월 4일, 파리에서 출발한 첫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오스만 양식과 유럽스타일이 결합한 시르케지 기차 역사는 두대륙을 품고 있는 이스탄불의 지정학적 강점을 보여준다.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없어졌고 통근열차와 단거리 노선 기차만 들어오는 이 역은 사라진 제국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기에 좋은, 달콤하지만 쓸쓸한 공간이었다.

p.207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손잡았다가 최후를 맞았다. 이집트, 이라크, 팔레스타인을 영국에 넘겨주고 모로코, 튀지니, 시리아와 터키 남동부 지역을 프랑스에 내주었으며, 에게해의 섬 대부분과 에게해 연안 도시들을 그리스에 빼앗겼다. 수도 이스탄불마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연합군이 장악했다. 1922년 12월 마지막 술탄이 제국의 해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스탄불을 떠나 망명길에 나섰을 때 오스만제국은 공식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 제국의 폐허 위에 아타튀르크가 터키공화국을 세웠다.

p.212

......아타튀르크는 터키를 '터키화'했다. .........19세기 유럽의 어떤 지식인이 100년 후 '세계의 수도'가 되리라고 예언했던 이스탄불은 변방의 가난하고 슬픈 도시로 변해갔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 누군가는 아타튀르크일 수밖에 없다.

p.234

"sokakta hayat var(길 위에 삶이 있다)

이스탄불에 대한 얘기들은 대부분 슬펐다. 그 도시를 관통하는 단어가 "비애"라는 오르한 파묵의 말이 더더 와닿았고, 저자도 중간중간 오르한 파묵을 언급하니 더 슬펐다. 슬프다. 한 20년 전에도 개신교인구는 3천명이었는데 지금도 3천명이란다. 그렇다고..

-파리-

p.246

프랑스공화국의 수도인 파리는 앞에서 만났던 세 도시와 달리 역사의 공간과 시민의 생활공간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으며, 오래된 건축물도 모두 살아 숨을 쉰다. 베르사유 궁전을 제외하면, 시민들의 일상과 떨어져 관광객의 볼거리로만 쓰이는 공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p.240

파리의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1/6정도이고 인구는 2019년기준 214만명..

p.256

대혁명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의 수도 파리, 센강의 생 미셸 다리에서 시들어버린 꽃묶음을 보며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어떤 제도의 집합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이 아닐까? 완성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개선하려고 도전하는 몸부림이 아닐까? 때로는 망가지고 부서져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는 이해관계와 생각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다투며 공존하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기에 포기하지 못하는 제도와 규칙과 관행, 민주주의란 그런게 아닐가.

생미셸 다리의 꽃묶음은 프랑스 민주주의도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고 말하는듯했다.

p.261

대혁명 이전 정치권력의 민낯은 루브르보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더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고, 대혁명 이후 프랑스 예술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다.

p.266

튈르리 정원이 끝나는 지점에 콩코르드 광장이 펼쳐졌다. 대혁명이 터진 후 이 광장에는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철거되고 단두대가 들어왔고,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단두대에 열 달 간격으로 목이 잘렸다. 그런 광장의 이름을 콩코르드(Concorde, 화합 또는 일치)라고 지었으니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p.278

무엇보다 도로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땅을 징발하고 방해가 되는 주택을 철거하면서 토지보상금이나 이주 지원금을 주지 않았다. 외곽의 성벽 자리를 따라 큰 길을 만들었고, 도심에도 남북과 동서 방향으로 축을 이루는 대로를 여럿 신설했으며....

p.305

로댕미술관.....에는 창작무용을 예술로 끌어올린 '현대무용의 창시자' 이사도라 덩컨이 산 적이 있다. 화가 앙리 마티스, 프라하에서 태어난 독일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작업실로 썼다.

이 책의 파리부분을 읽으면서도 그렇고 얼마전에 읽었던 『커플의 종말』도 그렇고 파리 혹은 유럽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압록강은 흐른다 범우 사르비아 총서 301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륵(1899~1950)은 이 글을 독일어로 썼고 전혜린이 번역했다. 전혜린이 이미륵을 알게된건 이미륵의 작고 이후이다.

이미 독일에 출판된 책을 보고 알게 되었을텐데, 이 책이 독일에서 출판되고 난 뒤에 독일사람들에게 상당히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아시아, 동양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열어주는 책이 되어서이다. 철학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답게 무언가 다른 세계, 다른 생각..이런 것들이 큰 호기심을 자극했던것 같고, 전혜린에 대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특별한 때문인지 번역한 글 안에서도 애정이 읽혀지는 느낌이었다

독일에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독일의 메이저급 출판사를 통해서라는데, 그 출판사 사장이 작고하기 전에 내가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이미륵의 책을 출판한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독일생활에 대한 글도 남아있으면 좋으련만..2편에 해당할만한 글은 3쪽분량정도밖에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에서의 행보가 참으로 궁금하다. 다른이의 연구가 없는지 알아봐야겠다.

p.12

해는 언제나 우리들이 노는 뒤뜰을 아주 잘 비춰주었다.

p.76

이 책은 아버지가 서울에서 받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유럽의 훌륭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이 책 저 책을 더듬어보시더니 다시 책장에 꽂게 하였다

"넌 학교에서 더 주의 깊게 들어야겠다."

p.80

나는...... 조금이라도 유럽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가져왔다. 유럽 글자가 적힌 종잇조각이며 고층건물, 철교나 탑의 사진까지도... 아버지는 그것을 오랫동안 세밀히 살펴보았다.

-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손님, 유럽에서는 아무도 땅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줍지 않습니다."

-

정원사가 말했다.

"내가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유럽에서는 미국에서와 같이 상전도 없고 종도 없습니다."

사대주의적인 느낌도 난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귀족사회였던걸로 알고 있는데.. 상전도 없고 종도 없다니..

귀족사회였어도 귀족들이 자신의 신분이 '귀족'으로 밝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는데..아마도 이때는 문호개방전이기도 하니 서방세계에 대한 사대주의스런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p.83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나쁜 시대가 왔다고들 말한다. 그러면 너는 분명히 말해줘라. 그건 조금도 나쁜 시대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이고, 그것은 갓 시작된 것이라고. 예를 들자면, 눈이 많은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진달래가 피고 뻐꾸기가 우는 것과 같이 온다고 말이야. 나는 '현대'를 그렇게 생각한다."

(미륵의 친구 용마의 말)

p.88

"유럽이란 나라가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머니?"

"그것은 아직 배우지 않았어. 아마 수만 리는 될거야."

"한번은 소군 공주가 꽃 없는 나라에 시집 갔었대. 아마 그곳인지....."

"아니야, 그건 다만 오랑캐나라였어."

"유럽에도 백합이며 진달래, 개나리꽃이 핀다고 생각하니?

"난 몰라"

"너는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지을 수 있게 거기에도 남풍이 불어준다고 믿니?"

"나도 확실한 것은 말할 수 없어"

"너는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잖니?"

누나는 실망해서 딱 잘라 말했다.

p.95

중국인이 참으로 고루하다면 그건 정말로 유감이었다. 나에게는 중국이 아름답고 부드럽고 훌륭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양자강'이나 '동정호', '서주' 또는 '황주'란 말의 음을 듣거나 또는 '소동파'나 '도연명'의 시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내 앞에는 황홀한 세계가 전개되었다.

20대 중반에 중국에 처음 가봤을 때의 느꼈던 놀라움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비아냥거리듯 놀리듯 부르던 짱깨, 때놈..이런 말이 어울리는 나라가 전혀 아니었다 웅장하고 멋졌으며 세련되기도 했고, 왕푸징은 명동만큼 더럽거나 깨끗했다 최근들어 중국에 대한 마음이 옛날같진 않지만 마음의 기저엔 대국은 대국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p.97

저 크나큰 중국은 일찍이 우리의 선조가 그렇게도 현명하였기 때문에 '소화(小華)'라고 불렀던 것이다. 일본에 글이며 철학, 종교, 건축기술 기타 무엇이든지 보내준 것이 우리가 아니고 그 누구였던가! 새로운 문화에는 우리가 일본에 약간 뒤떨어졌으나 그건 상관할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목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현명하다. 그것은 나에게 상당히 엄숙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p.100

어머니는 성숙한 어진과 가장 어린 나를 안전한 곳에 보내야겠다고 제안했다. 가택수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아버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날 아무런 동기도 없으며, 병정들도 무고한 사람들에게는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을 뿐더러, 우리가 반항해서는 안되며, 무엇을 가져가든지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어떠한 까닭이 있어 우리의 임금이 스스로 보냈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하였다.

사람이 지식이 있어도 현실부정.... 정보의 속도가 지금같지 않았을테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이 통치하는 나라였다니, 새삼스럽다

p.103

그것은 진짜 임금님의 글이었다. 그건 내 일생을 두고 최초로, 그리고 최후로 읽은 임금님의 글이었다. 그것은 내게는 장엄하면서도 슬펐다. 5백여 년동안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던 왕조의 작별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p.120

새 왕조가 이룩되기만 하면 다시 좋은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모든 농군들은 믿고 있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 민족보다 더 화려한 앞날을 상상할 수가 없었지만 굳이 반대는 안했다. 더욱이 내가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그분들에게 반대한다는 것은 불손하게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p.155

"우리가 유럽 인에 뒤떨어진 현대 학문은....."

어느 날 저녁 익원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철학적 사고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자연에 관한 실질적인 지식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학에 잇어서도 그렇고 의학에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인체를 낡은 철학의 면에서 이해하려고 하는데 반하여, 서양 연구가들은 그것을 해부하여 내부 기관을 자기 눈으로 관찰하는 대담한 용기를 가졌다. 그들은 생각하거나 숙고하는 대신에, 어디에 심장이 있고 어디에 위가 있으며 어디로 혈관과 신경선이 가고 있는지 보았다. 이 대담한 용기 때문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옛날 것보다 몇백 배 더 위대한 모든 의학지식을 얻게 된 것이다."

p.166

그동안 민족 봉기는 바람과 같이, 대도시와 소도시에서 시장과 마을에 이르기 까지 전파되었다............대학생과 중학생 다음에는 상인들이 일어나기 시작......노동자와 농부들이, 마지막으로 한국인 관리까지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총독부는 곤경에 빠져 계속 일본 군대의 파견을 요청....군대는 10년 전 우리나라가 합병될 때와 같이 낮이나 밤이나 행군하였다.....전 주민이 기독교인이었던 어느 마을에서는 전 주민이 교회에 갇힌 채 그냥 불타고 말았다. 낡은 감옥과 유치장이 확장되고 새로 건축되었으며, 경관들은 종일토록 고문을 하였다. 서울 학생들은 네 번째 시위 후에 지하로 잠복하여 비밀 운동을 시작하였다. 나는 삐라 제작하는 일을 맡기로 하였다.

동경정부는.......사실적인 유화정책을 실시........민중의 공포의 대상이던 헌병은 해체되고 경관들의 고문도 금지되었다. 한국인의 봉급은 일본인의 것과 같아졌고, 언론의 자유가 선포......한국인 학교는 일본인 학교와 평등하게 되었으며 서울에 제국대학을 창설.....

이상하게도 이 유화정책과는 반대로 삼일운동에 가담했던 자에게는 중형이 가해졌다. 경찰은 운동의 모든 참가자를 적발하고 체포......추격당하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도망가야했다. 나는 학생복을 벗어버리고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뭐랄까..꿈같다고 할까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같은 나라이긴 하지만 세대와 시대가 다르다는게, 독립운동이나 전쟁때 얘길 듣거나 읽으면 현실이라곤 믿을 수가 없는 거짓말같은 일인데 뻔히 역사속에 존재한다는 것이...신기하고 낯설다

이 시대엔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이런 진영을 나누는 기준도 애매했을 것 같다

p.169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잠자코 걷다가 말하였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비록 우리가 다시 못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역시 어머니..

p.191

우리들의 이야기는 파도 소리에 섞였다..........한국어, 중국어, 인도어가 하나의 독특한 소리의 혼돈으로 짜여졌다. 때때로 일제히 조용해졌다가는 또 벌집처럼 와글거리곤 했다.

p.200

"너는 너무 말이 없고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침묵은 오래된 동방에서는 아직도 미덕으로 인정되나, 서방에서는 그렇지가 않아. 여기선 그게 비사교성의 표시로 심지어는 거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언제나 이야기하는 데에 섞여 같이 대화를 나누어라. ........땅에서 살고 있는 이상엔 언제나 철학적인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단다. 유럽사람들도 땅위에서 살고 있으며 즐겨 세상 이야기를 한다."

조사한 바로는 한국에서 조혼한 여자가 있다고 하고 그를 통해 1남1녀가 있다고 하는데 책에는 전혀 언급된 것이 없다 독일생활에 적응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독일에 간 이후로는 한국에 들어온 일이 없다고 한다.

어떤 삶이었을까

독일도 전쟁으로 난리통이었을텐데..

그 속에서 변방 중 변방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그 곳에서의 삶의 자취도 궁금하고, 대상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겠는 그리움도 함께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