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범우 사르비아 총서 301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륵(1899~1950)은 이 글을 독일어로 썼고 전혜린이 번역했다. 전혜린이 이미륵을 알게된건 이미륵의 작고 이후이다.

이미 독일에 출판된 책을 보고 알게 되었을텐데, 이 책이 독일에서 출판되고 난 뒤에 독일사람들에게 상당히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아시아, 동양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열어주는 책이 되어서이다. 철학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답게 무언가 다른 세계, 다른 생각..이런 것들이 큰 호기심을 자극했던것 같고, 전혜린에 대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특별한 때문인지 번역한 글 안에서도 애정이 읽혀지는 느낌이었다

독일에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독일의 메이저급 출판사를 통해서라는데, 그 출판사 사장이 작고하기 전에 내가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이미륵의 책을 출판한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독일생활에 대한 글도 남아있으면 좋으련만..2편에 해당할만한 글은 3쪽분량정도밖에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에서의 행보가 참으로 궁금하다. 다른이의 연구가 없는지 알아봐야겠다.

p.12

해는 언제나 우리들이 노는 뒤뜰을 아주 잘 비춰주었다.

p.76

이 책은 아버지가 서울에서 받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유럽의 훌륭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이 책 저 책을 더듬어보시더니 다시 책장에 꽂게 하였다

"넌 학교에서 더 주의 깊게 들어야겠다."

p.80

나는...... 조금이라도 유럽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가져왔다. 유럽 글자가 적힌 종잇조각이며 고층건물, 철교나 탑의 사진까지도... 아버지는 그것을 오랫동안 세밀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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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손님, 유럽에서는 아무도 땅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줍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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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가 말했다.

"내가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유럽에서는 미국에서와 같이 상전도 없고 종도 없습니다."

사대주의적인 느낌도 난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귀족사회였던걸로 알고 있는데.. 상전도 없고 종도 없다니..

귀족사회였어도 귀족들이 자신의 신분이 '귀족'으로 밝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는데..아마도 이때는 문호개방전이기도 하니 서방세계에 대한 사대주의스런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p.83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나쁜 시대가 왔다고들 말한다. 그러면 너는 분명히 말해줘라. 그건 조금도 나쁜 시대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이고, 그것은 갓 시작된 것이라고. 예를 들자면, 눈이 많은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진달래가 피고 뻐꾸기가 우는 것과 같이 온다고 말이야. 나는 '현대'를 그렇게 생각한다."

(미륵의 친구 용마의 말)

p.88

"유럽이란 나라가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머니?"

"그것은 아직 배우지 않았어. 아마 수만 리는 될거야."

"한번은 소군 공주가 꽃 없는 나라에 시집 갔었대. 아마 그곳인지....."

"아니야, 그건 다만 오랑캐나라였어."

"유럽에도 백합이며 진달래, 개나리꽃이 핀다고 생각하니?

"난 몰라"

"너는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지을 수 있게 거기에도 남풍이 불어준다고 믿니?"

"나도 확실한 것은 말할 수 없어"

"너는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잖니?"

누나는 실망해서 딱 잘라 말했다.

p.95

중국인이 참으로 고루하다면 그건 정말로 유감이었다. 나에게는 중국이 아름답고 부드럽고 훌륭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양자강'이나 '동정호', '서주' 또는 '황주'란 말의 음을 듣거나 또는 '소동파'나 '도연명'의 시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내 앞에는 황홀한 세계가 전개되었다.

20대 중반에 중국에 처음 가봤을 때의 느꼈던 놀라움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비아냥거리듯 놀리듯 부르던 짱깨, 때놈..이런 말이 어울리는 나라가 전혀 아니었다 웅장하고 멋졌으며 세련되기도 했고, 왕푸징은 명동만큼 더럽거나 깨끗했다 최근들어 중국에 대한 마음이 옛날같진 않지만 마음의 기저엔 대국은 대국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p.97

저 크나큰 중국은 일찍이 우리의 선조가 그렇게도 현명하였기 때문에 '소화(小華)'라고 불렀던 것이다. 일본에 글이며 철학, 종교, 건축기술 기타 무엇이든지 보내준 것이 우리가 아니고 그 누구였던가! 새로운 문화에는 우리가 일본에 약간 뒤떨어졌으나 그건 상관할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목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현명하다. 그것은 나에게 상당히 엄숙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p.100

어머니는 성숙한 어진과 가장 어린 나를 안전한 곳에 보내야겠다고 제안했다. 가택수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아버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날 아무런 동기도 없으며, 병정들도 무고한 사람들에게는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을 뿐더러, 우리가 반항해서는 안되며, 무엇을 가져가든지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어떠한 까닭이 있어 우리의 임금이 스스로 보냈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하였다.

사람이 지식이 있어도 현실부정.... 정보의 속도가 지금같지 않았을테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이 통치하는 나라였다니, 새삼스럽다

p.103

그것은 진짜 임금님의 글이었다. 그건 내 일생을 두고 최초로, 그리고 최후로 읽은 임금님의 글이었다. 그것은 내게는 장엄하면서도 슬펐다. 5백여 년동안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던 왕조의 작별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p.120

새 왕조가 이룩되기만 하면 다시 좋은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모든 농군들은 믿고 있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 민족보다 더 화려한 앞날을 상상할 수가 없었지만 굳이 반대는 안했다. 더욱이 내가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그분들에게 반대한다는 것은 불손하게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p.155

"우리가 유럽 인에 뒤떨어진 현대 학문은....."

어느 날 저녁 익원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철학적 사고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자연에 관한 실질적인 지식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학에 잇어서도 그렇고 의학에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인체를 낡은 철학의 면에서 이해하려고 하는데 반하여, 서양 연구가들은 그것을 해부하여 내부 기관을 자기 눈으로 관찰하는 대담한 용기를 가졌다. 그들은 생각하거나 숙고하는 대신에, 어디에 심장이 있고 어디에 위가 있으며 어디로 혈관과 신경선이 가고 있는지 보았다. 이 대담한 용기 때문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옛날 것보다 몇백 배 더 위대한 모든 의학지식을 얻게 된 것이다."

p.166

그동안 민족 봉기는 바람과 같이, 대도시와 소도시에서 시장과 마을에 이르기 까지 전파되었다............대학생과 중학생 다음에는 상인들이 일어나기 시작......노동자와 농부들이, 마지막으로 한국인 관리까지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총독부는 곤경에 빠져 계속 일본 군대의 파견을 요청....군대는 10년 전 우리나라가 합병될 때와 같이 낮이나 밤이나 행군하였다.....전 주민이 기독교인이었던 어느 마을에서는 전 주민이 교회에 갇힌 채 그냥 불타고 말았다. 낡은 감옥과 유치장이 확장되고 새로 건축되었으며, 경관들은 종일토록 고문을 하였다. 서울 학생들은 네 번째 시위 후에 지하로 잠복하여 비밀 운동을 시작하였다. 나는 삐라 제작하는 일을 맡기로 하였다.

동경정부는.......사실적인 유화정책을 실시........민중의 공포의 대상이던 헌병은 해체되고 경관들의 고문도 금지되었다. 한국인의 봉급은 일본인의 것과 같아졌고, 언론의 자유가 선포......한국인 학교는 일본인 학교와 평등하게 되었으며 서울에 제국대학을 창설.....

이상하게도 이 유화정책과는 반대로 삼일운동에 가담했던 자에게는 중형이 가해졌다. 경찰은 운동의 모든 참가자를 적발하고 체포......추격당하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도망가야했다. 나는 학생복을 벗어버리고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뭐랄까..꿈같다고 할까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같은 나라이긴 하지만 세대와 시대가 다르다는게, 독립운동이나 전쟁때 얘길 듣거나 읽으면 현실이라곤 믿을 수가 없는 거짓말같은 일인데 뻔히 역사속에 존재한다는 것이...신기하고 낯설다

이 시대엔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이런 진영을 나누는 기준도 애매했을 것 같다

p.169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잠자코 걷다가 말하였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비록 우리가 다시 못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역시 어머니..

p.191

우리들의 이야기는 파도 소리에 섞였다..........한국어, 중국어, 인도어가 하나의 독특한 소리의 혼돈으로 짜여졌다. 때때로 일제히 조용해졌다가는 또 벌집처럼 와글거리곤 했다.

p.200

"너는 너무 말이 없고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침묵은 오래된 동방에서는 아직도 미덕으로 인정되나, 서방에서는 그렇지가 않아. 여기선 그게 비사교성의 표시로 심지어는 거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언제나 이야기하는 데에 섞여 같이 대화를 나누어라. ........땅에서 살고 있는 이상엔 언제나 철학적인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단다. 유럽사람들도 땅위에서 살고 있으며 즐겨 세상 이야기를 한다."

조사한 바로는 한국에서 조혼한 여자가 있다고 하고 그를 통해 1남1녀가 있다고 하는데 책에는 전혀 언급된 것이 없다 독일생활에 적응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독일에 간 이후로는 한국에 들어온 일이 없다고 한다.

어떤 삶이었을까

독일도 전쟁으로 난리통이었을텐데..

그 속에서 변방 중 변방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그 곳에서의 삶의 자취도 궁금하고, 대상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겠는 그리움도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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