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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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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관한 한 타인은 결코 개입하지 못한다. 남이 볼 때 남루하든 비참하든 한심하든 몸의 당사자에게만 유일하게 감각되는 고유의 삶인 것이다.

🔖‘첫’은 ‘가장 오래된’이다. 안나와 경선의 ‘첫’은 점점 ‘가장 오래된’으로 수렴해간다. 경선의 말처럼 그 모든 게 다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은 매 순간이 ‘첫’이다. 안나와 경선에게도 첫 순간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경선이 틀렸다. ‘우리의 첫’에 대한 기억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최근’과 ‘우리의 다음’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몸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다. 몸은 기쁨과 고통과 욕망과 상실의 부화장이고 사랑의 꿈과 왜곡을 간직한 도서관, 마지막 삶이 거처할 최후의 집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재로 사라진다. 개체의 시간을 끝내고 무한에 섞여드는 여정이다.

🔖마침내 늙은 광대의 새로운 춤이 시작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그 이야기가 떠오르자 경선은 불현듯 중얼거린다. 춤춰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 그리고 다음 순간 두 팔을 벌려 길게 뻗어서 앞으로 모아본다. 고개를 한쪽 어깨 너머로 젖혀 먼 허공을 바라보는데 조금쯤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몸이 여기에 있고 낯설지 않다.



『시간의 감촉』은 같은 해에 태어난 자매 안나와 경선의 이야기다. 같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책 취향도, 남자를 바라보는 관점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특별한 용건이 없는 한 좀처럼 만나지 않은 채 무심히 지내던 자매는 경선의 투병을 계기로, 서로 다른 시간 속에 품어 온 기억과 상처를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새의 선물》이 서른 즈음 유년기를 돌아보는 이야기라면, 《빛의 과거》는 쉰 즈음 청춘을 돌아보고, 《시간의 감촉》은 예순의 문턱에서 인생을 되짚어 보는 이야기다. '시간 3부작'의 완결편답게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몸'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안나와 경선의 삶을 통해, 지나간 줄만 알았던 시간이 몸과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순간을 마주하면 다시 현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한 사람의 몸에 담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감을 부쩍 실감하는 요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인지 고민이 많았던 내게 작가의 문장은 마치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조용히 건네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좋은 도서 제공해 준 문학동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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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8
조해진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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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역사와 디아스포라를 다룬 묵직한 소설이구나” 하고 펼쳤는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내 마음도 조용히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스며들었다.

런던으로 출장을 간 연주가 ‘선생님’의 위독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서울과 일본, 그리고 기억과 상실 사이를 천천히 오간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로를 오래 기억하려 할까?
자이니치의 삶, 제주 4·3의 기억, 국가가 개인에게 남긴 흔적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소설은 끝까지 사람을 놓치지 않고 그 역사가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조용히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끝내 말하지 못하고...그 모든 삶을 이 책은 아주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더 아프고 마음에 오래 남는 소설이다.

사람을 기억한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함께 품는 일 아닐까? 나는 또 한동안 조해진 작가님의 문장에 붙들려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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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다이빙 문학동네 청소년 79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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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나서야 더 자주 손이 가는 청소년 소설. 『훌훌』로 마음을 단단히 흔들어 놓았던 문경민 작가의 신간 『스카이 다이빙』

윤아에게 장애가 있는 동생 민아는 선택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엄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부당함에 맞섰다가 일자리를 잃었다. 거기에 활동지원사까지 그만두면서 윤아의 일상은 조용히 무너져 내린다.
그런 윤아 앞에 다시 나타난 전 남친 필우.
그리고 비슷한 사정을 가진 후배 도희.
셋이 결성한 이름부터 짠한 ‘구덩이 모임’.

이름은 구덩이지만, 이 아이들이 하려는 일은 분명 상승 프로젝트다.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어른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윤아. 고구마 100개 먹이는 세상에 사이다를 날리는 그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이상하게 울컥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가보자고 말한다.

추락하는 게 무서워 발버둥 치던 아이들이 스스로 몸을 던져 ‘스카이다이빙’을 시작하는 과정이 너무 눈부시고 뭉클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기도하게 된다. 윤아와 친구들에게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주어지기를. 그리고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 아래 세상이 든든한 그물망이 되어주기를.


#도서제공
#스카이다이빙
#문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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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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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에서 '집'이라는 안전한 공간을 불신하게 만드는 법을 보여준 김진영 작가가 섬뜩한 K-오컬트 《여기서 나가》로 돌아왔다.

주인공 형용은 군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적산가옥 형태의 카페 '유메야' 지어 인생의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이 땅, 심상치 않다.
음식은 하루 만에 썩고, 아내 유화는 일본 전통 옷을 입은 하얀 얼굴의 남자를 보기 시작한다.
결국 유화는 “이 땅, 뭔가 있다”를 직감하고 청사동의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역시나 티저북은 사람 미치는 지점에서 딱 끊어 놓았다.

하얀 얼굴의 남자는 누구일까?
형 '형진'의 죽음은 사고였을까?
형용의 형수 '해령'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필석'은 왜 이 땅에 집착할까?
마지막, 이 이야기는 귀신 이야기일까, 사람 이야기 일까?

의문점과 궁금증만 가득 남은 난 또 후다닥 알라딘 달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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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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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었다.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고, 사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고 싶고, 또 한편으론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랑이라면, 그 시절 을주는 그 언니들을 사랑했다.


▪수백이든 수천이든, 익명의 사람들이 어떤 말을 떠들든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할 테지만, 단 한 사람의 무심한 시선에는 치명상을 입으리란 걸 을주는 진작 예감했다.


▪언제라도 당신이 쓰러져 올 수 있는 아늑한 쿠션이 되어주리라. 나락인 줄 알고 절벽인 줄 알고 추락하면 내가 조밀한 풀숲이 되어 그 몸을 받아주리라. 풀잎과 풀잎의 어깨를 엮고 땅의 가슴을 끌어당겨 당신이 떨어질 절망의 깊이를 줄여 주리라.


▪세월이 흘러 기억이 흐려지면 지금 이 순간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까. 반복해 떠올리고 더 자주 되뇌면서 사실보다 허구에 가까운 한 편의 영화가 될까.



단편으로만 접해 본 김멜라 작가님.
장편소설은 또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리듬 난바다』 청량하고 상큼한 표지에 달달한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차원이 다른 으른들의 찐-한 사랑 얘기에 처음엔 살짝 당황했다.
먼바다를 뜻하는 '난바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것처럼 이야기 속 세 주인공들의 감정들도 엄청나게 휘몰아친다.


촉망받던 태권도 선수였다가 서울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하지만 사회의 쓴맛을 경험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을주.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외지인 둘희를 짝사랑하게 된다.

수상한 외지인 둘희. <욕+받이>라는 굴욕 혐오 먹방 인터넷 방송의 팀장으로 과거의 연인을(영화감독 한기연) 미친 듯 사랑했고 을주를 사랑하게 된다.



리듬 난바다는 사랑과 욕망, 이상과 현실이 엇갈리면서 생기는 파동같은 이야기다. 단순히 동성애 만은 아닌 장애, 페미니즘, 언론, 정치, 혐오 등 온갖 더러운 것들을 아름다운 파도로 그려냈다.

타인의 리듬에 맞춰 살아온 시간에서 해방되는 을주.
오래 붙잡아온 신념에서 해방되어 한기연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는 둘희.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인생을 흔들었지만 서로를 가두지 않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금기나 사건이 아닌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다뤄서 좋았고 을주, 둘희가 오복이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질 것 같다.



#서평단 #북클럽문학동네
#리듬난바다 #김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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