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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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었다.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고, 사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고 싶고, 또 한편으론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랑이라면, 그 시절 을주는 그 언니들을 사랑했다.


▪수백이든 수천이든, 익명의 사람들이 어떤 말을 떠들든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할 테지만, 단 한 사람의 무심한 시선에는 치명상을 입으리란 걸 을주는 진작 예감했다.


▪언제라도 당신이 쓰러져 올 수 있는 아늑한 쿠션이 되어주리라. 나락인 줄 알고 절벽인 줄 알고 추락하면 내가 조밀한 풀숲이 되어 그 몸을 받아주리라. 풀잎과 풀잎의 어깨를 엮고 땅의 가슴을 끌어당겨 당신이 떨어질 절망의 깊이를 줄여 주리라.


▪세월이 흘러 기억이 흐려지면 지금 이 순간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까. 반복해 떠올리고 더 자주 되뇌면서 사실보다 허구에 가까운 한 편의 영화가 될까.



단편으로만 접해 본 김멜라 작가님.
장편소설은 또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리듬 난바다』 청량하고 상큼한 표지에 달달한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차원이 다른 으른들의 찐-한 사랑 얘기에 처음엔 살짝 당황했다.
먼바다를 뜻하는 '난바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것처럼 이야기 속 세 주인공들의 감정들도 엄청나게 휘몰아친다.


촉망받던 태권도 선수였다가 서울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하지만 사회의 쓴맛을 경험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을주.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외지인 둘희를 짝사랑하게 된다.

수상한 외지인 둘희. <욕+받이>라는 굴욕 혐오 먹방 인터넷 방송의 팀장으로 과거의 연인을(영화감독 한기연) 미친 듯 사랑했고 을주를 사랑하게 된다.



리듬 난바다는 사랑과 욕망, 이상과 현실이 엇갈리면서 생기는 파동같은 이야기다. 단순히 동성애 만은 아닌 장애, 페미니즘, 언론, 정치, 혐오 등 온갖 더러운 것들을 아름다운 파도로 그려냈다.

타인의 리듬에 맞춰 살아온 시간에서 해방되는 을주.
오래 붙잡아온 신념에서 해방되어 한기연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는 둘희.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인생을 흔들었지만 서로를 가두지 않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금기나 사건이 아닌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다뤄서 좋았고 을주, 둘희가 오복이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질 것 같다.



#서평단 #북클럽문학동네
#리듬난바다 #김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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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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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허위 통역을 부탁드립니다.”
여름의 잎사귀들이 더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가 도화의 머릿속을 채웠다. 도화는 미동 없이 대꾸했다.
“법정 허위 통역이 발각되면, 최하 징역 5년입니다. 교사한 자도 마찬가지고요.”
············
대략 스무 마디만 허위 통역 해주시면 됩니다.”
“한 마디에 500만 원 정도 쳐드릴게요.”
도화의 의지와는 다르게 엉덩이가 의자에 다시 붙어버렸다. 스무 마디면,1억이다.


🔖“왜 하필 나비가 보라색이죠?”
“멍들면 보랏빛이 되잖아요. 잠시 멍든 거지, 망가진 건 아니라는 의미예요.”


🔖어쩌면 자신의 불행에 집착하는 동안 옆을 볼 힘을 잃었는지 모른다.


🔖보라색 나비를 쫓다 만난 건, 그 무엇보다 마주하기 싫었던 자기 자신이었다.



《통역사》는 다수의 시나리오를(옥수역 귀신, 로봇. 소리, 여고괴담 등) 써오신 이소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수십 번 칼에 찔린 채 무참히 살해돼 발견된 남녀 시신.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네팔의 여신으로 추앙되는 차미바트. 그녀는 "파란 남자가 칼을 들고 찔렀다", "보라나비를 쫓아가라"는 둥 네팔어로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다.

낮에는 마트 아르바이트, 밤에는 법정 통역사를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도화. 파산과 암 수술의 후유증이라는 위기에 직면한다. 그런 도화에게 변호사 재만은 1억원을 대가로 법정 허위 통역을줄 것을 제안한다.

도화는 차미바트와의 통역이 계속될수록 사건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래 뒤에 감춰진 거대한 진실에 서서히 다가가게 되는데......



소설 통역사는 네팔의 신비스러운 여신인 쿠마라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단서(파란 남자, 보라나비, 주사위, 검은 눈물) 들로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신의 등장으로 오컬트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조합이 너무 좋고, 거기다 가볍지 않은 사회 고발을 다루는 메시지까지 왜 책 출간 전 영상화가 되었는지 알 거 같았다.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윤리와 책임을 다루는 이야기였다. 언어의 무력감과 인간의 이기심이 부딪히는 장면을 보면서 도화가 옮기려는 건 문장이 아니라, 세상에 버려진 목소리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얼마나 정확히 듣고 있는가’.



덧,
고군분투하며 사건을 파헤치는 도화의 모습에 김태리 배우가 떠올랐고 영상으로 만들어질 통역사도 너무너무 기대된다☺️



#통역사 #이소영
#래빗홀 #래빗홀미스터리앰배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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