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관한 한 타인은 결코 개입하지 못한다. 남이 볼 때 남루하든 비참하든 한심하든 몸의 당사자에게만 유일하게 감각되는 고유의 삶인 것이다.🔖‘첫’은 ‘가장 오래된’이다. 안나와 경선의 ‘첫’은 점점 ‘가장 오래된’으로 수렴해간다. 경선의 말처럼 그 모든 게 다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은 매 순간이 ‘첫’이다. 안나와 경선에게도 첫 순간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경선이 틀렸다. ‘우리의 첫’에 대한 기억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최근’과 ‘우리의 다음’이 되기도 한다.🔖한 사람의 몸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다. 몸은 기쁨과 고통과 욕망과 상실의 부화장이고 사랑의 꿈과 왜곡을 간직한 도서관, 마지막 삶이 거처할 최후의 집인 것이다.그리고 마침내는 재로 사라진다. 개체의 시간을 끝내고 무한에 섞여드는 여정이다.🔖마침내 늙은 광대의 새로운 춤이 시작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그 이야기가 떠오르자 경선은 불현듯 중얼거린다. 춤춰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 그리고 다음 순간 두 팔을 벌려 길게 뻗어서 앞으로 모아본다. 고개를 한쪽 어깨 너머로 젖혀 먼 허공을 바라보는데 조금쯤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몸이 여기에 있고 낯설지 않다.『시간의 감촉』은 같은 해에 태어난 자매 안나와 경선의 이야기다. 같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책 취향도, 남자를 바라보는 관점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특별한 용건이 없는 한 좀처럼 만나지 않은 채 무심히 지내던 자매는 경선의 투병을 계기로, 서로 다른 시간 속에 품어 온 기억과 상처를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새의 선물》이 서른 즈음 유년기를 돌아보는 이야기라면, 《빛의 과거》는 쉰 즈음 청춘을 돌아보고, 《시간의 감촉》은 예순의 문턱에서 인생을 되짚어 보는 이야기다. '시간 3부작'의 완결편답게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었다.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몸'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안나와 경선의 삶을 통해, 지나간 줄만 알았던 시간이 몸과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순간을 마주하면 다시 현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작가는 한 사람의 몸에 담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감을 부쩍 실감하는 요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인지 고민이 많았던 내게 작가의 문장은 마치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조용히 건네는 위로처럼 느껴진다.좋은 도서 제공해 준 문학동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