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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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애도하는, 봄밤의 모든 것





소설가 백수린의 『봄밤의 모든 것』을 읽었다. 작년 봄에 나오자마자 사두고는, 결국 일년이나 지나 올해 봄이 끝나기 전에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봄밤의 모든 것』은 총 7편의 단편소설들이 묶여 있다.




· 「아주 환한 날들」

· 「빛이 다가올 때」

· 「봄밤의 우리」

· 「흰 눈과 개」

· 「호우豪雨」

· 「눈이 내리네」

·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봄밤의 모든 것』을 읽으면서 앤드루 포터의 작품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실제로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한국어판에는 백수린 작가의 추천사가 적혀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백수린 작가가 앤드루 포터에게 받은 영향이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듯하다. 특히나 3인칭 서술로 진행되는 작품에서 이렇게 질문이 돌출되는 작법은 영미 문학의 냄새를 짙게 만든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가로는 손보미 작가가 있다. 손보미 작가는 줄표/대시(-)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자신에게 누군가의 완전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 일의 기쁨과 두려움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개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냈다. 아, 다들 이 부재를 어떻게 견디는 거지?

「봄밤의 우리」, 95쪽



딸에게 결혼을 아주 잘했다고 말하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흰 눈과 개」, 129쪽



누구나 다 안다고? 대체 누가 다 안다는 말인가?

「흰 눈과 개」, 133쪽




『봄밤의 모든 것』을 읽으며 느낀 것은 백수린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드러나는 문체였다. 근래에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나 작품들이 있지만, 소설은 서사 문학이다. 『봄밤의 모든 것』은 특이하게도 서사성이 강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사건 역시도 지극히 평범해서 "사건"이라 하기도 어렵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하지만 이를 상쇄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백수린 작가가 포착하는 감정의 단면과 이를 표현해내는 문장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희가 느꼈던 것은 비밀스러운 기쁨이었다. 책을 펼치면 만나게 되는 세계는 상상 속에서 실재했고, 소희는 자신이 겪는 고독과 괴로움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호우豪雨」, 150-151쪽


그 시절 소희의 마음 속에서는 무엇인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했다. 낯선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픈 욕망과 아무 데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하며 주저하는 기질이 날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전쟁을 벌였다.

「호우豪雨」, 151쪽


주변부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조차 다혜의 마음 속에는 어쩌면 사실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었다.

「눈이 내리네」, 182쪽


스물이었던 다혜에게 당시 스물일곱 살이던 준우는 까마득한 어른 같아 보였는데, 그건 그때 다혜가 이십대 후반까지의 삶만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이 내리네」, 191쪽


다혜는 그 당시 관계가 끝났음을 자신이 그토록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간을 끈 건 틀림없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끝에 대한 두려움. 사랑을 다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다혜는 아는데, 당시 이별을 계속 유예했던 건 무엇보다 젊고 예뻤던 시절의 자신을 그가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눈이 내리네」, 198쪽


어둠 속에서 친구의 숨소리가 전에 없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가깝게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워할 날이 올거라는, 이 순간으로 되돌아오고 싶지만 절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239쪽



이처럼 삶의 여정 속에서 문득 느끼고 지나가는 감정들에 주목한 문장들을 읽어나가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런 경험들은 이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비밀스러운 기쁨"을 주었다.


소설집 후반에 실린 세 편의 단편 소설,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연작 소설이다. 대학교 동기들인 "소희", "다혜", "상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연작 작품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 어떻게 서로 다른 작품과 연계되는지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각 작품의 화자가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사실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점들은 작품의 혈연 관계를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


「눈이 내리네」의 화자 다혜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에서 술에 취해 울먹인다. 그리고 자신의 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이는 「눈이 내리네」에서 만났던 애인이 자신에게 남겼던 강렬한 기억 중 하나가 은연중에 영향을 끼친 듯하다.


차가운 발을 두손으로 감싸 쥐며 "작은 새 두 마리 같아"라고 말한다는 사실은.

-「눈이 내리네」, 195쪽


"이거 봐라, 나 발 진짜 못생겼지?" (…) "내 발 진짜 아빠 발이랑 똑같거든. 근데 우리 아빠는 새끼발가락 하나가 없다? 옛날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렇다는데, 어렸을 때는 맨날 나한테 악어가 물어 가서 한 개가 없다고 그랬어. 나는 그걸 또 오랫동안 믿었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228쪽



또한 노련한 작가는 독자를 애태울 줄도 아는 것 같다. 이 작품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흰 눈과 개」에 있다. "아버지"가 카페에서 늘 보던 개의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작가는 그 "진실"이 무엇인지를 바로 말해주지 않는다. 독자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냉랭하던 딸을 불러서 같이 보려고 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지연시켜놓았던 진실을 보여준다. 이는 「호우」에서도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 곧장 말하지 않고 조금 지나 알려주는 것으로 재현된다.




* * *





사랑만큼 인류의 역사상 오래된 이야깃거리는 없을 것이다. 불멸의 고전 속에도 사랑은 등장하거니와 지금도 무수히 쏟아지는 문학과 노래, 영화에는 사랑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사랑과 상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므로 상실과 애도 역시 무수한 변주를 겪으며 예술가들의 절망스럽게 사랑스러운 뮤즈가 되어왔다.


『봄밤의 모든 것』은 상실을 애도하는 소설로 읽힌다. 소설 속 인물들에겐 모두 당면하거나 충분히 지나왔다고 여긴 상실이 있다. 그것은 처치 곤란한 동반자였던 앵무새나, 개로 표상되기도 한다. 할머니거나, 토끼거나, 이모할머니거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거나,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나눠가졌던 소중한 시절이거나. 소설 속 인물들은 제각기의 방법으로 이 상실을 껴안고 살고, 애도하면서 견딘다.


우리는 그런 소중한 봄과 같은 시간들이 곁을 스쳐지나갈 때는 미처 자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섣불리 그 봄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버린다. 그래서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몇 번의 봄을 더 함께 볼 수 있을까?"

「봄밤의 우리」, 94쪽


인생은 가혹하게도 봄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버리게 된 직후에 봄을 빼앗는다. 그리하여, 소설 속 어떤 인물들은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이리라. 내가 먼저 겪은 봄의 상실을 내 자식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숱한 봄을 잃어본 아버지와 그 봄을 만져도 보고 잃어도 보고 싶었던 딸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단절된 채로 지낸다.


"헤어지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까."

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덧붙였다.

"그렇지만 사실 전 제가 직접 겪어보고 알고 싶었어요."

「흰 눈과 개」, 128쪽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리가 한 쪽 없는 개가 뿜어내는 생명력을 보면서 이 부녀는 화해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산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랑을 주는 법에 대해 오래 생각해본 사람뿐일지도 모른다고.

「흰 눈과 개」, 140쪽



모든 상실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우리에겐 1~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조선에서도 그러했듯이 많은 문명에서 삼년에 걸친 장례가 문화가 발견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완전히 씻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이 3년 정도라는 뜻일 것이다. 그만큼 상실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각자만의 봄밤이 필요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봄, 생명이 움트는 봄의 낮을 보내고, 세상이 쓸쓸하게 젖어드는 봄밤. 다가오는 여름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그 봄밤은 우리를 상실에서 구원한다.


그리고 다음날이 찾아오면, 다시 찾아올 다른 봄을 기대하는 것. 상실의 고통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봄밤이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 * *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옥의 티는 「눈이 내리네」에 있다. 이모 할머니는 글을 모른다고 밝혀지고, 생의 마지막에 다와가서 한글을 배운다. 그런데 그런 이모할머니가 어떻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을까? 설정 구멍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선해하자면, (음성)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다.


"이모할머니한테 늦는다고 말 안 하고 나왔더니 메시지를 벌써 일곱 개나 남기셨어."

「눈이 내리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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