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인물부터 읽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주제까지, 예비 소설가가 피해야 할 모든 것
샌드라 뉴먼.하워드 미텔마크 지음, 정아영 옮김 / 날(도서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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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퇴짜 맞을 원고 한 단락


"그녀는 슬펐다. 너무나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펐다."


민지가 한숨을 내쉬며 절규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슬픈 비였다. 그때 세준이 방으로 들어왔다. 세준은 민지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민지는 세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참고로 이 도시는 1897년에 세워졌고, 인구는 약 34만 명이다.



이 단락은 제가 일부러 망쳐서 쓴 것입니다. 몇 개의 실수가 보이시나요? 감정을 직접 말해 버린 첫 문장, 한숨과 절규를 동시에 시키는 과장된 대사 태그, 날씨로 마음을 대신하는 익숙한 비유, 한 문단 안에서 민지와 세준 사이를 오가는 시점, 그리고 뜬금없이 끼어든 도시 정보까지. 최소 다섯 개입니다.


샌드라 뉴먼과 하워드 미텔마크의 『소설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는 바로 이런 단락을 수백 개 모아 놓은 책입니다. 잘 쓴 문장을 보여 주는 대신, 못 쓴 문장을 보여 주고 "이러면 편집자가 원고를 덮는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서평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그리고 책을 덮자마자 내 원고에서 가장 먼저 찾아볼 실수 다섯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두 저자는 소설을 가르치고, 편집하고, 쓰고, 리뷰한 경력을 합쳐 30년의 경험을 이 책에 모았다고 소개됩니다.


한국어판을 옮긴 정아영 번역가는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을 옮긴 분이기도 해서, 작법서 번역 경력이 있는 역자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책이 다른 작법서와 다른 점: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망하는가'




혹시 제목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느껴지지 않는지?


"~아닌데, ~아닌데"


『소설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라는 제목부터 어쩐지,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시니컬한 조언은 각 챕터 도입부에 주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조의 겉모습을 설명하는 건 비교적 간단한 일이지만, 작품이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는 작가들에겐 이마저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단어는 빽빽한데 놀라울 정도로 건질 만한 묘사가 없다. 아래의 방법들을 잘 활용하면 여러분도 말은 잔뜩 하면서도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 경지에 손쉽게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82쪽

미출간 소설가는 출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 먹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뛰어난 미출간 소설가는 단 한 번의 과감한 결정으로 자신의 아마추어라는 위상을 더욱 확고히 다진다.


『소설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206쪽



그렇습니다. 

이 책은 사실상 이렇게 하면 어떻게 투고한 작품들이 편집자 손에서 모조리 컷 당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의도는 그러니까 제발 이렇게 쓰지 말라! 입니다.) 어쩌면 저자들은 소설 쓰기를 희망하지만,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는 수많은 지망생들이 제발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재밌게 써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유머는 한국판을 넘어올 때 편집자나 번역가 둘 중 한 명에게서도 엿보입니다. 이를 테면 소제목 챕터 구성에서 한국에서 유행한 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챕터들의 제목을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읽어나갈 때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입니다.


주인공님 축지법 쓰신다

우리집 고양이 츄르를 좋아해

외모 체크!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사탄: 이건 내가 봐도 아닌데


다만, 123쪽의 "나의 복수를 독자에게 전부 알려라" 같은 항목은 되풀이해 읽어도 어떤 점을 지적한 건지, 소제목과 예시로 제시된 구문이 무슨 호응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습니다.


서점의 작법서 코너는 대부분 "이렇게 하라"는 책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여태 서평을 썼던 작법서들은 어김없이 그런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플롯은 3막으로, 인물은 욕망과 결핍으로, 문장은 짧게. 문제는 이런 조언을 다 알아도 막상 내 원고를 보면 어디가 틀렸는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방향을 거꾸로 잡습니다. 저자들은 스스로 규칙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관찰을 제공한다고 말합니다. 비유가 재미있는데, "로터리에서는 좌회전"이 규칙이라면 "로터리에서 우회전을 하는 차는 어떻게 되는가"를 직접 보여주는 식입니다. 금지 조항을 외우게 하는 대신, 박살이 난 차들을 줄줄이 보여 주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전달할 때도 가벼운 어조를 유지하는 건 아닙니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들에선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조언해줍니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라 해도 실제로 벌어진 이상 그럴 리 없다고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책의 독자들은 더 이상 믿어 주기 어려워지면, 그 세계에 계속 몰입하려 애쓰기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난다. 따라서 신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우연도, 도저히 믿기 어려운 플롯 장치도, 정도를 벗어난 극적 아이러니도 서슴없이 동원한다. 자신의 독자가 믿어 줄지 말지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에겐 그런 사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소설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49쪽


악당은 얼마든지 신보수주의자여도,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십 대여도, 열성적인 시온주의자여도 된다. 단, 바로 그 점이 그가 악당인 이유여서는 안 된다.

『소설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129쪽


그리고 129쪽에서 133쪽에 나오는 "내 소설의 인물은 얼마나 예측가능한가?" 같은 쪽지시험은 흥미롭습니다.


대학에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더니, 어머니는


A. 그를 위해 방금 막 구운 초콜릿칩 쿠키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B. 그의 방을 그가 떠날 때 모습 그대로 간직해 두고 있었다.

C. 말도 없이 이사를 가고 없었다.

D. 식충 식물로 변해 있었다.


당신의 선택은?


저는 다행히도 총점 17점으로 아슬아슬하게 안정권에 있었습니다.





내 원고에서 먼저 찾을 실수 5가지


200개를 한 번에 다 고칠 수는 없습니다. 초고를 한 편이라도 끝낸 분이라면, 아래 다섯 가지부터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항목 이름은 원서에 소개된 표현을 제가 풀어 옮긴 것이라 한국어판 표기와 다를 수 있습니다.


① 의미심장해 보이는데 아무 일도 없는 전개


주인공이 수상한 편지를 발견합니다. 독자는 긴장합니다. 그런데 그 편지는 끝까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전개를 '양성 종양'에 빗댑니다. 무언가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닌 덩어리라는 뜻이죠. 체크 방법은 간단합니다. 원고에서 복선처럼 보이는 장면을 모두 표시한 뒤, 각각이 뒤에서 회수되는지 확인하세요. 회수되지 않는다면 삭제하거나 회수할 장면을 새로 써야 합니다.


② 작가의 신념을 액세서리처럼 걸친 인물


바이킹 전사가 갑자기 현대적인 채식주의 논리를 펼친다면 어떨까요. 인물이 그 시대, 그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대변인이 되어 버린 경우입니다. 좋은 가치관을 인물에게 입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인물이 살아온 세계에서 그 생각이 자라날 수 없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내 주인공이 하는 말 중 "이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 대목을 찾아보세요.


③ 공처럼 튕기는 시점


앞의 엉터리 단락에서 민지와 세준의 속마음이 번갈아 나왔던 것, 기억하시나요. 한 장면 안에서 시점이 테니스공처럼 왔다 갔다 하면 독자는 누구에게 몰입해야 할지 모릅니다. 장면 하나에는 시점 인물 하나, 라는 원칙만 지켜도 원고가 훨씬 단단해집니다.


④ 대사보다 시끄러운 대사 태그


원서 소개글부터가 이 실수를 패러디합니다. 인물이 그냥 "말했다"로 끝나지 않고 협박하듯, 훈계하듯, 의견을 피력하듯 말하고, 거기에 부사까지 붙습니다. 한국어로 치면 "절규했다", "일갈했다", "속삭이듯 외쳤다" 같은 표현입니다. 감정은 대사 안에 담아야지, 태그에 떠넘기면 안 됩니다. 원고에서 '말했다'가 아닌 대사 태그를 전부 찾아 절반 이상 '말했다'로 바꿔 보세요. 생각보다 원고가 조용하고 선명해집니다.


⑤ 조사한 걸 다 보여 주고 싶은 욕심


이 책은 자료 조사도 따로 다룹니다. 열심히 조사한 내용일수록 버리기 아깝고, 그래서 이야기와 상관없는 정보가 문단 사이에 끼어듭니다. 앞의 단락 마지막 문장, "이 도시는 1897년에 세워졌고"가 바로 그 예입니다. 조사는 빙산의 아랫부분이어야 합니다. 독자에게 보이는 건 장면에 필요한 한두 조각이면 충분합니다.





이 책으로 퇴고하는 3단계 루틴



1단계는 초고를 끝까지 쓰는 것입니다. 쓰는 도중에 이 책을 펴면 모든 문장이 실수처럼 보여 한 줄도 못 나갑니다. 실수 목록은 완성된 원고 앞에서만 약이 됩니다.


2단계는 한 번에 한 가지 실수만 찾는 것입니다. 오늘은 시점만, 내일은 대사 태그만, 모레는 회수되지 않은 복선만. 원고를 여러 번 읽는 게 번거로워 보여도, 한꺼번에 다 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3단계는 고친 이유를 한 줄씩 적어 두는 것입니다. "시점 흔들림, 세준 속마음 삭제"처럼요. 이 메모가 쌓이면 나만의 실수 목록이 생기고, 다음 원고에서는 같은 실수를 쓰는 순간 손이 멈춥니다.




읽으면서 감안할 점


첫째, 이 책은 통독용이라기보다 사전에 가깝습니다. 짧은 항목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으면 실수 목록에 질릴 수 있습니다. 초고를 하나 끝낸 뒤 퇴고할 때 옆에 펴 두고 찾아보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둘째, 미국 출판 시장이 배경입니다. 원서는 투고 원고 더미에서 빠져나와 서점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에이전트나 투고 문화를 전제로 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한국의 공모전이나 웹소설 플랫폼과는 결이 다른 부분이 있으니 그 점은 걸러서 읽으면 됩니다.


셋째, 엉터리 예문은 원래 영어 문장의 실수를 보여 주는 것이라, 말장난이나 어감에 기대는 예시는 번역에서 맛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건 번역의 잘잘못이 아니라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진 숙명에 가깝습니다. 예문 자체보다 "이 예문이 무슨 실수를 보여 주려는가"에 집중하면 충분히 얻을 게 많습니다.




초고를 한 편 이상 완성했는데 어디를 고쳐야 할지 모르는 분, 합평에서 "뭔가 어색하다"는 말만 듣고 원인을 못 찾는 분, 공모전 투고를 앞두고 마지막 점검표가 필요한 분, 그리고 작법서의 딱딱한 문체에 지친 분들은 꼭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반대로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은 분에게는 순서가 조금 이릅니다. 실수를 해 봐야 이 책이 아프게 웃깁니다. 처음이라면 쓰는 방법을 알려 주는 기본 작법서를 먼저 읽고, 초고가 생긴 뒤에 이 책을 펼치시길 권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는 같은 역자가 옮긴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을 꼽고 싶습니다. 한 권이 "이렇게 쓰라"는 교과서라면, 이 책은 "이렇게 쓰면 망한다"는 오답 노트입니다. 둘을 나란히 두면 작법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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