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살롱 드 경성 1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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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경성'은 강력한 매혹 중 하나다. 경성이라는 단어는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갈망과 금지된 것들에 도전하는 저항의식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나는 언제나 그 중력에 무람없이 끌려다닌다.


『살롱 드 경성』을 사실 처음 접한 건 칼럼이나 이 책이 아니었다. 유튜브 <삼프로TV>의 코너에서였다. <삼프로TV>의 전원경 교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즐겨보았었는데, 그에 대한 연장 선상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이 <살롱 드 경성>이었다. 이 방송을 보다가 결국 책까지 구입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다뤄진 작가가 이중섭인데, 회화나 미술에 무지하기 짝이 없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도 이중섭 작가의 <흰 소>다. 



이 책의 매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를 비롯해 잘 알지 못했던 화가들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또한 그림이 풍성하게 삽입되어 보는 맛을 더한다. 나아가 이 책 전반을 감싸는 것은 저자의 미술과 한국 예술가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다.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


이인성의 사후 그에 대한 미술계와 학계의 평가도 지나치게 야박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나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에서 주로 활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비판의 주된 이유인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이 가난한 화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사회 시스템이 그것뿐이었는데.

(…)

억울하다. 이인성의 울분이 전이된 듯 억울하다.

『살롱 드 경성』, 252쪽




나는 금 산도 싫고 금 논도 싫다. 나는 화가가 될 것이다.

『살롱 드 경성』, 144쪽


『살롱 드 경성』을 읽으며 등장하는 화가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예술에 대한 맹렬한 애정을 불태웠다는 점이다. 예술가는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산다. 대낮에 눈 뜬 채 꿈을 꾸기도 하고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도 홀로 별세계를 본다. 유영국의 일화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이미지에 정확히 부합한다. 잘나가는 사업을 놔두고 상경해 팔리지도 않을 추상화를 그리겠다니. (유영국의 그림과 사업에 대해 적은 박준의 글이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에 실려 있어서 내심 반가웠다. 유영국 화가가 소주 사업을 할 때, 직접 소주병에 그림을 그려넣었는데, 박준 작가는 한때 이 소주병을 수중에 넣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적었다.)


생활의 무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소시민인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을 내던져 부딪치는 이들에게 압도된다. 또한 이렇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의 이면을 보아주는 이들이 있어야 우리도 그들의 덕을 보게 된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모든 예술가는 프리즘이다. 자신이 담은 세상이라는 빛을 여러 빛깔로 변환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때로는 자신이 본 것에 눈멀기도 한다. 나는 그런 예술가들을 사랑하는 것 외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이왕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일을 할 바에야 마음껏 하고 싶은 멋진 일이나 하자는 생각!

『살롱 드 경성』, 101쪽


김환기 작가의 파트에서 저자가 적어놓은 문장이지만, 실상 『살롱 드 경성』에 등장하는 모든 작가들에게 해당하는 표현인 것 같다.



도상봉과 나상윤 부부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예술가 곁에는 이를 믿고 지지하는 짝이 있었던 것 같다. 시대상 탓에 주로 여성이 헌신하는 쪽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많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도상봉과 나상윤 부부의 도자기 일화는 그야말로 '부창부수'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박고석-김순자 부부의 일화도 흥미로웠다. 고고한 예술혼을 불태우던 박고석 화가를 대신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던 김순자는 한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정 받은 한복 디자이너가 되어 자식들을 건사한다. 그러다가 말년에 '남은 생을 박고석의 아내로 살고 싶다며'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도상봉보다 도자기를 더 좋아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내 나상윤이었다. 보통은 돈이 궁한 형편에 도자기를 사오면 대부분 아내는 잔소리가 앞서기 마련인데, 나상윤은 오히려 반대였다. 어떤 도자기를 더 구해 오라고 조르기도 했을뿐더러, 도자기 평가에서부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며 철저했다.

『살롱 드 경성』, 111쪽




얼마 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500권을 돌파했다. 이 시리즈의 1권, 100권, 200권 등의 순서가 되면 우리나라의 작품을 싣는다. 이번 500권에는 이미륵 작가의 『압록강은 흐른다』의 차례였다. 『살롱 드 경성』에도 이미륵 작가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낸 김재원 작가 등이 1940년대에 유럽에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린 선구자로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를 접할 때마다 자주 오류에 빠진다. 이미 정조가 안경을 쓰고, 고종이 커피와 와플을 즐겼고, 경성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때때로 이 시대의 자료를 읽거나 보다가 현대의 흔적을 발견하면 놀란다. 내가 잘 모르던 미술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생경하다. 이를테면, 김재원을 비롯한 몇몇 한국 작가가 독일에서 체류하던 때, 무솔리니의 초청으로 로마를 여행했다는 일화는 마치 다른 두 세계가 이어지듯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책 곳곳에 BTS의 RM의 일화가 출몰한다. RM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유명한 미술 애호가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글쓰기를 비롯한 예술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지만, 유독 미술은 자기치유적 효능이 강한 예술 분야인 것 같다. 심리치료 과정 중에 미술이 자주 사용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 중에도 내면의 결핍과 상처를 견디고 치유하기 위해 그림에 몰두한 경우가 많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죽음의 충동에 시달리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만든 작품들이 다른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아니, 어쩌면 바로 그러한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이 진정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예술의 영역에서 AI가 가장 먼저 인간에게 도전장을 내민 분야가 미술/회화다. 누차 고백한대로,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AI와 인간의 작품을 구별해낼 자신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두 작품 사이에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AI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려낸 사람의 사연, 이야기다. 예술 지상주의자들은 어쩌면 대관절 그게 무슨 상관이냐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작품 뒤의 녹아든 창작자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러니 선 하나를 긋는데 하루를 고민하고, 내키지 않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조금 더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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