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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시대가 흘러도 여전한 문장론의 고전
글을 쓰다보면, 필연적으로 문장에 대한 고민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 표현이 맞을까, 더 좋은 표현이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고민해서 뺀 쉼표를, 다시 읽어본 후에 넣었을 때에야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느낀다는 레이먼드 카버만큼의 고민은 아니겠지만, 글을 쓸 때 어느 정도 고민은 필연적이다.
이번에 문장론에 대해서 공부하다보면 한 번쯤은 마주치게 되는 이태준, 『문장강화』를 읽었다. 여기서 강화는 수준을 높인다는 강화(強化)가 아니라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는 뜻의 강화(講話)입니다.'강화(講話)'의 의미다.
1939년에 처음 나온 글쓰기 교본을 팔십몇 년이 지난 지금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몇 장 넘기지 않아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오히려 요즘 나오는 글쓰기 책들보다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대목이 여럿이었다.
이태준은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서는 문장가로서의 면모가 훨씬 두드러진다.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단순했다. 좋은 문장을 쓰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것. 그런데 그 방법이 요즘 흔히 보는 작문 지침서와는 결이 다르다. 문법책처럼 규칙을 나열하지 않고, 실제 문인들의 글을 붙잡고 하나하나 왜 좋은지, 왜 고쳐야 하는지를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바로 다음과 같다. 이는 직접적인 문장 작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근본 철학에 가깝다.
"생활이 있어야 말이 있고, 말이 있어야 글이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당연한 소리처럼 들렸다. 삶이 먼저고 언어가 그다음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고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오면 무게가 달라진다. 이태준은 이 순서를 뒤집어서 쓰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글을 먼저 예쁘게 꾸미려 하고, 그 글에 맞춰 생각을 짜맞추는 태도 말이다. 그는 글이란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 삶과 무관하게 조립되는 물건이 아니라고 본다. 지금 시대에 이 말을 곱씹어보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요즘 우리는 문장을 다듬는 기술만 배우고 그 문장이 나온 자리, 즉 생활을 돌아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일물일어주의다. 하나의 사물에는 그것을 정확히 가리키는 말이 하나뿐이라는 생각. 이태준은 비슷비슷한 단어를 되는대로 골라 쓰는 습관을 경계한다. '아름답다'와 '곱다'와 '예쁘다'가 사전에서는 얼추 비슷해 보여도 실제 문장 안에서는 전혀 다른 자리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작가가 할 일은 그 정확한 한 단어를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충 비슷한 말로 때우면 문장은 흐릿해지고, 흐릿한 문장은 독자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솔직히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좀 돌아보게 됐다. 글을 쓸 때 정확한 단어를 찾기보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어디서 본 듯한 표현을 가져다 쓰는 일이 얼마나 잦았던가. 이태준은 이런 습관을 게으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게으름을 고치는 유일한 방법은 관찰이라고 말한다.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것과 가장 가까운 말을 찾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태도. 요즘 식으로 말하면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이다.
책의 구성도 흥미롭다. 문장의 기초, 문체, 각종 글의 종류, 퇴고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다루기 때문에 처음 글을 쓰는 사람도 접근하기 쉽다. (물론 시대상의 옛스러운 말투는 감안해야 한다.) 또한 당시에 발표된 다양한 글들을 실제 예문으로 쓰며,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함께 짚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을 지금 읽어도 재미있게 만드는 이유다. 이론만 늘어놓지 않고 손으로 잡아 보여준다.
문체에 대한 장에서는 개성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태준은 좋은 글이란 규칙을 다 지킨 글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글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개성이라는 게 규칙을 무시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규칙을 충분히 익힌 다음에야 비로소 드러난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튀는 문장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이 대목은 뜨끔할 것 같다. 기본기 없이 특이함만 좇으면 그건 개성이 아니라 미숙함일 뿐이라는 게 이태준의 진단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글쓰기를 기술로만 접근하는 사람과 태도로 접근하는 사람의 차이다. 요즘 많은 글쓰기 책들이 문장을 짧게 써라, 접속사를 줄여라, 수동태를 피해라 같은 규칙을 나열한다. 물론 이런 규칙도 쓸모가 있다. 하지만 이태준은 규칙 이전에 삶을 보는 눈, 사물을 정직하게 관찰하는 태도를 먼저 요구한다. 규칙은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식이다. 이 순서가 이 책을 다른 작문 교재들과 구분 짓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읽으면 낡은 부분도 있다. 예로 든 글들이 대부분 1930년대 문인들의 작품이라 요즘 독자에게는 낯설 수 있고, 문장 자체도 옛투가 많이 섞여 있어 처음에는 리듬을 잡기가 쉽지 않다. 한자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쓰였고, 일부 표현은 요즘 맞춤법과 다르다. 하지만 이런 낯섦이 오히려 이 책을 천천히 읽게 만든다. 빨리 훑고 지나가는 대신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게 되는데, 이게 이태준이 원했던 독서법과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남는 건 결국 처음 인용했던 그 문장이다. 생활이 있어야 말이 있고, 말이 있어야 글이 있다는 말. 요즘처럼 글쓰기 기술이나 문장 스킬을 검색 몇 번으로 배울 수 있는 시대에, 이태준의 이 순서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는 종종 이 순서를 건너뛰고 곧바로 좋은 문장을 흉내 내려 한다. 근사한 표현, 있어 보이는 어휘를 먼저 모으고 거기에 내용을 끼워 맞춘다. 이태준이 봤다면 이런 글쓰기를 순서가 뒤집힌 글쓰기라고 불렀을 것 같다.
일물일어주의도 결국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정확한 단어를 찾는다는 건 단순히 어휘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물과 그 순간을 얼마나 진지하게 마주했느냐의 문제다. 대충 비슷한 말로 넘어가는 건 사물을 대충 본 것이고, 정확한 말을 찾아낸다는 건 그만큼 오래 들여다봤다는 뜻이다. 이태준에게 글쓰기란 결국 얼마나 정직하게, 얼마나 오래 보았는가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혹은 글쓰기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책을 붙잡고 밑줄을 그어볼 만하다. 당장 써먹을 문장 팁을 찾는 사람에게는 조금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장 이전에 무엇을 봐야 하는지, 무엇을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들여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열어보고 싶어졌다. 거기 쓰인 단어들이 정말 내가 찾아낸 단어였는지, 아니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둔 말이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