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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기담집
성해나의 신작 소설집 『인비인』을 읽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기담집'이라는 타이틀이 달렸다. 기담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으나 이번에 명확한 의미를 찾아보았다. 당연히 괴담과 비슷한 결을 지닌 무섭고 기이한 이야기일 줄 알았으나 의외로 이상야릇하고 재밌는 이야기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기담1 奇談/奇譚
명사
1.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표준국어대사전
어제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9)
인비인(人非人) (27)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 (53)
오늘
매일(買日) (95)
프랭크 오자와 (121)
윤회 (당한) 자들 (139)
내일
아미고 (207)
#유령 (235)
고(蠱) (251)
그래서인지 총 9편의 작품이 실린 『인비인』도 괴담집은 아니다. 앞에 실린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인비인」은 괴담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내용들은 괴담이라기보다 신기한 이야기 정도의 느낌이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옛날 우리 설화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설화의 구조가 현대의 시점에서, 한국과 미국 등의 공간으로 펼쳐져 있는 것 같다.
9편의 기담은 3개의 분류로 나뉘어져 있다. 어제, 오늘, 내일이다. 어제에 실린 3편은 모두 일제강점기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까지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일들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오는지에 대해 담고 있다.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우선 근래 시끄러운 여배우 때문이다. 친일파 조상의 행적에 대해서 무지했던 여배우가 그들이 누렸던 것들에 대해서 자랑하다가 결국 그들이 친일파였음이 낱낱히 밝혀진 사건이다.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현실의 여배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문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가 이를 부정하다가 죽기 직전에는 부끄러워한다. 이 모습이 겹치면서 지금 여배우는 어떤 심정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은 성해나 작가의 첫 소설집인 『빛을 걷으면 빛』에 수록된 단편소설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의 초안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선 친일 행적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하나의 소설이 어떤 형식으로 변해가는지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어제"에 실린 3편의 소설이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성해나 작가가 다루는 일본(식민지 시절)의 이야기가 내 취향에 맞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빛을 걷으면 빛』에 실린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작 「오즈」에도 일제 강점기 시절의 피해자 할머니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성해나 작가는 이런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다.
오늘 섹션에 실린 글들은 기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았다. 누군가의 인생을 경매로 사고 파는 이야기나 윤회를 믿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일 섹션에 실린 글들은 현재도 무섭게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를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윤회 (당한) 자들」, 「고(蠱)」가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특히 「고(蠱)」는 「혼모노」를 떠올리게 한다.
「혼모노」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가짜가 진짜를 이기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진짜 가짜는 누구고 가짜 진짜는 누가 되는가?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이 소설의 결말에서 흐릿해져버린다.
「고(蠱)」는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종사해야 할 고가 주인의 주인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주인에게 종사하는 이야기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치 하이데거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떠올리게 하지만, 「고(蠱)」는 한층 더 나아가 아예 우로보로스처럼 머리가 꼬리를 물어버려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이렇듯 본질의 경계를 흐려버리는 성해나의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은 성해나 작가는 확실히 순문학 작가 중에선 장르소설 쪽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강한 작가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순문학과 장르소설 사이에 어떤 우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장르소설은 소설이란 형식이 지니고 있던 본연의 서사성, 이야기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순문학은 의미나 서정성을 더 강화한 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성해나와 김기태 같은 작가가 순문학의 본령을 지키면서도 서사성과 이야기의 즐거움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으로 그 생각은 더 단단해졌다. (김초엽 작가나 천선란 작가, 정세랑 작가도 그런 편에 속하는 것 같은데, 직접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다.)
또한 『인비인』에는 작품마다 작가의 후기가 달려 있어서 좋았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해당 작품을 썼는지를 읽어보는 것은 평론가들의 해설 지면과 다른 솔직한 창작관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성해나 작가의 관심폭이 상당히 넓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양한 장르나 소재를 다루면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어휘와 지식을 담을 수 있는 재능이 부러웠다. 성해나 작가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가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