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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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애매한 재능은 없다. 그러나 





근래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강의를 듣고 있다. 그렇다보니, 오랫동안 미루어두었던 『GV빌런 고태경』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얼마 전에 읽은 『아코디언』의 천명관 작가는 오랫동안 영화 감독을 꿈꿔왔으나 소설가로 먼저 세상에 알려지고, 영화 감독이 되었다. 정대건 감독은 그 반대인데, <투 올드 힙합 키드>로 먼저 감독을 데뷔한 후 소설가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 케이스다. 나는 <투 올드 힙합 키드>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당시에는 힙합에 경도되어 있었고, 실제 래퍼들의 삶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야 『급류』의 작가 정대건이 그 감독이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고 반가웠었다. 정확히 찾아서 따져본 것은 아니지만, 정대건 작가 이후로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 일하던 작가나 감독들이 소설을 출판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괴물, 용혜』나 『무덤까지 비밀이야』 같은 작품의 작가들도 비슷한 출신을 가지고 있다.





* * *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작가가 쓴 화제작인 『급류』를 일 년 전쯤에 읽었다. 나는 대체로 읽었던 모든 책에 대해서 짧게라도 감상평을 남기려고 하는 편인데, 『급류』는 실패했다. 서평을 쓸 때, 장점만을 언급하는 주례사 비평은 나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가능하면 내가 느낀 장점과 단점 모두를 적으려고 한다. 다만, 『급류』에선 어느 장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책의 서평에 쓸 수 있는 말은 온통 부정적인 것밖에 없었다. 아주 가끔 그런 책들을 만나게 되고, 나는 그럴 때마다 서평 적기를 생략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이 각고의 노력을 들여서 만든 작품에 대해 쉽게 험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GV빌런 고태경』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식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이 환기된 것은 영화 리뷰 쓰기 강의도 있지만, 올해 재밌게 보았던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동안 영화 감독 입봉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점차 진상이 되어간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모자무싸>의 결말보다는 『GV빌런 고태경』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모자무싸>는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동만의 성공을 보여주지만, 『GV빌런 고태경』에선 고태경이 작중 스스로 지향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도전하고 있다.'라는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GV빌런 고태경』이 『급류』보다 좋았다. 내가 느낀 『급류』의 유일한 덕목은 잘 읽힌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연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결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천명관도 그렇고, 앞의 두 작품 작가들도 그렇고, 영화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글은 쉽고 이미지화가 잘된다는 장점을 공유한다. 『GV빌런 고태경』 역시 그런 장점이 잘 묻어난 데다가, 작가가 오래 몸담았던 업계의 일이다 보니 자전적이어서 좀 더 솔직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래와 같은 문장은 쉬워보이고 당연해보이는 문장이지만, 업계에서 살펴보지 않는 한 쓸 수 없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통제다. 위대한 영화 감독들은 대부분 통제광들이다.


『GV빌런 고태경』, 50쪽


아무리 세상에 동기부여되는 말이 많이 있다지만 '나도 하겠는데?'만큼 효과적인 동력은 없다. 그래, 쟤도 했는데 내가 왜 못해. 나는 남은 맥주를 원샷으로 비웠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나 감독이지.


『GV빌런 고태경』, 55쪽


말하다보니 어쩐지 그것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요약하는 것만 같았다. 노 굿(NG)을 오케이하면서 살아온 인생, 변명 같은 인생. 관객들은 그런 사정에 관심이 없다. 영화는 영화로 말하는 것이다.


『GV빌런 고태경』, 77쪽



유머 역시 재밌었다. 관심의 공산주의나, 잃어버린 자아가 인도가 아닌 아이슬란드에 있다는 점 등이 그러했다.



관심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 관심의 재분배, 최소 생계 유지처럼 최소 관심 유지가 되는 사회.


『GV빌런 고태경』, 66쪽



예전에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인도에 갔는데 요즘에는 잃어버린 자아가 아이슬란드에 가 있잖아.


『GV빌런 고태경』, 124-125쪽




감독은 선택의 프로




감독이 똑바로 잘해야 하는 한 가지라면 역시 선택이겠지.

『GV빌런 고태경』, 151쪽


작중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사안은, 감독은 선택을 하는 직업이란 사실이다. 여러 컷들 중에서 최고의 컷을 골라내고 이어붙이고. 감독이 편집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의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들었다. 영화는 이처럼 편집의 예술인데, 한국이 유독 특이한 환경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영화 감독은 편집과 촬영에 모두 전적인 권한을 갖는데, 미국의 할리우드에서는 촬영은 감독이 하되, 편집권은 스튜디오가 갖는다고 한다. 수백 억이 투자된 영화의 흥행을 결정짓는 것이 편집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주는 듯하다. (재밌는 점은 예고편만 전문적으로 편집하는 감독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고편과 본편의 내용이 전혀 다른 '예고편 사기', '터저 사기' 같은 헤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GV빌런 고태경』의 주인공인 조혜나는 이 선택의 문제 앞에서 번번이 좌절한다. 감독으로써 영화를 편집할 때, 늘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뇌하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선택의 문제 앞에서 고뇌하기도 한다. 예컨대, 가장 중요한 영화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결정을 끝내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조헤나는 영화에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만두어야 하는가. 아주 가끔은 재능이 아니라 일에 대한 사랑이 그 자리에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어떤 것에 대한 사랑보다는 조롱과 냉소가 더 쉬우니까.


『GV빌런 고태경』, 126쪽


나는 극장을 정말 사랑해. 나는 영화를 정말 사랑해.


『GV빌런 고태경』, 133쪽



고태경이란 문제적 인물





"선생님, 한때 영화인이기도 하셨잖아요. 과거에 영화인이셨던 분들이 현장을 떠나서도 어떻게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며 지내는지 담고 싶-"

"나 아직 영화인이요."


『GV빌런 고태경』, 64쪽


『GV빌런 고태경』은 고전적인 소설의 형태를 차용한다. 이를테면, 근대 소설이 발화하던 시기에 많은 작품들은 소설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쓴다. 『마담 보바리』, 『안나 카레리나』처럼. 『GV빌런 고태경』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플롯도 전통을 잘 따른다. 주인공이 문제적 인물을 만나게 되고, 그 인물과 가까워지다가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를 통해 마침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 구조다. 전형적이고, 전형적인 만큼 보편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플롯이다.


어떤 의미에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같기도 하다. 현대에 영화를 찍는 감독이 고전 영화의 기법들을 모두 교과서적으로 차용해 적용해 만든 영화 같이 『GV빌런 고태경』은 근대소설의 교과서적 문법을 착실하게 따른다.



어김없이 극장 맨 뒤에 앉아 대학노트를 펼친 고태경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영화를 뒤에 앉아서 보세요?"

"나는 내용에 몰입해서 보려는 게 아니라,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전체를 보려는 거야."

그는 두 시간 동안의 영화 관람이 유희가 아니라 공부 시간인 것처럼 말했다.


『GV빌런 고태경』, 109쪽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고태경이 정말 흥미로운 인간인가. 필경사 바틀비처럼 관심을 가질만 한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저 이 GV 빌런이 어떤 사고를 또 벌일까, 이게 궁금했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고태경 역시 조혜나와 마찬가지로 감독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지망생이었음이 밝혀지며 한단계 더 나아가며 전환된다. "도대체 저 빌런은 왜 저렇게 무례할까?"에서 시작된 질문은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아직도 영화를 떠나지 못할까?"라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그는 여러 역경을 거쳐서 결국 극장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극장이 곧 그의 영화학교였다.


『GV빌런 고태경』, 120쪽


고태경은 늘 베레모를 쓰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을 대학노트를 무릎에 올리고, 이 베레모를 벗는다. 노트까지야 그럴 수 있다쳐도, 베레모는 굳이 왜 벗는가. 실내라서? 그렇다기에 고태경은 식당 같은 곳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는다. 우리가 쓴 모자를 구태여 벗을 때에는 예의를 차릴 때이다. 프로야구에서 데드볼을 맞춘 투수가 타자에게 모자를 벗어 정중히 사과하듯이.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것이, 타인의 노력이 담긴 영화를 보는 것이 고태경에겐 일종의 의식인 것이다. 다음 대사에서 그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그 사람 싱정 알아. 누구보다 잘 알아. 그 사람 인생은 영화야. 종교 영화야. 십 년 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손에 잡힐 듯하다. 멀어지고 반복하다 보면 결국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GV빌런 고태경』, 88-89쪽.



그의 영화인적 태도는 후배였던 민현석 대표에게 면박을 당했을 때 단적으로 드러난다.




고태경은 눈치보는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지금 뭐하는 거야?"

"네?"

고태경의 무표정한 얼굴에 잠시 화가 스쳤다.

"조 감독. 감독 일 똑바로 해. 카메라를 들이대야지."


『GV빌런 고태경』, 171쪽


그는 면박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조혜나보다도 더 냉정하게 영화를 생각한다. 조혜나가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밀지 못하자, 오히려 "찍으라며", "너의 일을 하라고" 다그친다. 그가 얼마나 영화에 진지한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디를 갈 거냐는 물음에, 극장으로 간다! 이런 점에선 영화를 꿈꾸다 끝내 영화가 된 남자 같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인생에 환유하는 건 시시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선 "life goes on"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역경과 좌절이 찾아와도 인생은 흘러간다. 아무리 멈추고 싶고, 아무리 별로인 장면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저 흘러가는 영화처럼.


또한 『GV빌런 고태경』의 결말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나 『급류』보다도 좋았던 점은 바로 그런 그의 태도와 열정이 남긴 채로 끝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혜나 이 영화, <GV빌런 고태경>으로 대박을 쳤다거나, 고태경이 마침내 모든 역경을 딛고 감독에 데뷔했다면 나는 이 소설이 그저 그렇게 기억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태경은 아직도 그 태도를 유지하며 도전하는 중이고 (작중에서 본인이 조혜나가 만드는 다큐가 그런 방향에서 끝나면 어떨까 했던 것처럼.) 조혜나도 도전 중이다. 그리고 결말은 마치 영화의 엔딩처럼 그가 다시 돌아와 GV에서 질문을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엔딩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려진다.


또한 그는 <GV빌런 고태경>의 GV와 결말에서 자신의 태도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지점이 아닐까, 하면서도 깊이 공감되는 장면이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GV빌런 고태경』, 278쪽



조 감독, 영화를 만들자!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상영하자. 우리는 빛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빛을 보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지.


『GV빌런 고태경』, 291쪽




세상에 애매한 재능은 없다, 그러나 우리만의 바르샤바 영화제는 있다.



"재능이니 뭐니 하는 건 이십대에나 하는 말 아냐? (…) 꾸준히 계속하는 의지야말로 진짜 재능이지."

"어쭙잖은 재능은 저주라던데요."


『GV빌런 고태경』, 117쪽


어른이 되다는 건 수많았던 꿈의 목록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꿈을 포기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아이 같다는 말을 칭찬으로도, 비난으로도 사용한다. 『GV빌런 고태경』은 1차적으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소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고태경이란 인물로 하여금,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너도 한 번쯤 이런 애정을 품은 대상이 있지 않았느냐고. 이 "영화"의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걸 넣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GV빌런 고태경』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문학을 겹쳐 생각했다.



또한 애매한 재능의 문제는 많은 사람을 심란하게 한다. 꿈이냐, 현실이냐. 이 문제에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아마도 재능일텐데, 재능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메시의 재능을 가진 이가 농구에 꽂혀서 농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마이클 조던이 골프나 야구를 했던 것처럼.


근래 오래 곱씹는 말이 있다. "세상에 애매한 재능은 결코 없다." 재능이란 건 단연 눈에 띄어서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지 못하다면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에 재능을 가지고 있을 순 없다. 그렇다면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좋아하는 일에 꾸준히 도전하고 사랑하는 게 재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저궤도인간>의 동재처럼 말이다.



저 이제 알겠어요. 내가 뭘 하려는 건지요.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꼭 성공으로 결론나지 않아도 돼요. 돈 좀 못 벌면 뭐 어때. 그냥 … 내가 좋아하는 일을 … 계속 좋아하는 거. 그게 제가 이번 생에 하기로 한 일이에요.

<제궤도인간> 6화


그러한 엉덩이 재능은 제법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은 "바르샤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장면이다. 조혜나는 수상에 대한 희망도, 사전 예고도 없어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 자신이 없을 때 뜻밖의 수상을 한다. "내가 없는 시상식에서 수상하게 된 것, 내 노력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호명해준 것." 구태여 고흐를 끌여들이지 않더라도 우리 생은 언제나 작은 일이더라도 뒤늦은 반응을 얻기도 하고, 아예 그런 반응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모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선, 우리의 노력을, 우리의 꿈에 대한 정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우리에게 재능은 없어도, 세상에서 B급으로 치든, C급으로 치든 상관없는 우리만의 바르샤바영화제가 있는 게 아닐까?



* * *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학교 조 교수는 끝까지 1차원적인 악인으로만 묘사된다. 바르샤바영화제도 뜬금없기는 했다. 그런데 고태경과 대비하려면 필요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바르샤바에서 종현의 태도였다. 갑작스런 변화는 너무 납작하다. 이전까지 다정하고 착하게만 그려졌던 종현이 갑자기 너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군다. (차라리 이전 연애에서 결별의 원인이 혜나가 아니라 종현에게 있었다는 식으로 묘사가 된다면 좀 더 이해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혜나는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밝힌다.) 바르샤바에서의 종현은 화가 나서 화난게 아니라, 주인공인 혜나에게 고난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마치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말이다.


모든 시네필이 감독이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감독은 시네필이다. 이를 본격적인 기류로 만들어낸 "새로운 물결"이라는 사조가 프랑스의 누벨바그다. 작중에서 누벨바그의 기수인 트뤼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트뤼포의 명언으로 알려진 '영화를 사랑하는 세가지 방법'이 언급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만들어낸 오해다. 『GV빌런 고태경』에도 등장하는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정성일이 추천사를 썼는데, 여기서 자신이 어느 일본 잡지에 실린 트뤼포에 관한 글을 읽다가 오해해 한국에 이를 트뤼포의 말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는 말이 한국에는 폴 발레리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소설가 김영하 작가가 『빛의 제국』에서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작가 스스로 오류를 바로잡으며, 이는 폴 발레리가 아니라 폴 부르제의 말이라고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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