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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개정합본판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5월
평점 :
롤랑 바르트를 빌려와 볼까.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서로를 사랑하고 기다리는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흔하디 흔한 주제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소재를 가진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독특한 점은 두 가지다. 우선 이 소설이 김보영 작가의 팬이었던 커플이 있는데, 그 중 남자 팬이 여자 팬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한 '낭독용 소설'을 써달라는 '사적인 청탁'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런 소설 밖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소설 내에서 어떻게 달성되었는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충분한 조건이 된다. (다만, 나는 프로포즈용으로 쓰여졌다는 첫번째 소설이자 표제작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다 읽고 나서는, '이게 정말 프로포즈에 써도 되는 소설인가?'하는 일말의 의문을 품었다. 재밌게도, 이 소설들 뒤에는 그 청탁의 당사자들의 소감 같은 것도 적혀있는데, 결론적으로 내 의문과 기우와는 다르게, 부부는 결혼을 했으며,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흥미롭게 만드는 두 번째 조건은 다음과 같다. '서로를 기다리는 연인'이 시간 여행 속에서 엇갈린 거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부터 본격화된 '광속'과 '시간 여행'의 이론은 <인터스텔라>를 비롯한 영화나 소설을 거쳐 이제는 상식의 반열에 올라 있다.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무한에 가까운 시간 속을 서로 엇갈리고 있는 거라면, 우리는 상대방을 끝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가 SF이면서 동시에 로맨스 소설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질문에 있다.
소설 내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말에도 한계 효용이 있는 법이어서, 너무 잦은 빈도로 사용되는 말은 그 효용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이 처한 극한의 상황 때문인지 수없이 반복되는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그 효용을 잃지 않으며 내내 서글픈 감정을 전달하는 데 번번이 성공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왜 슬픈 것일까. 누군가를 기다리려면, 우선 내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어야 함을 함의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화자는 계속 이동한다. 그게 타의든, 자의든 '당신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이동해야만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이 기다림이 결코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누군가를 "계속" 기다릴 수 있으려면, 바로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주인공이 가진 단단한 믿음이 소설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면, 이 단단한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흔들리기 시작하는 게 소설의 중후반을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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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릴로지 중 두번째로 등장하는 소설인 「당신에게 가고 있어」는 앞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남자 주인공이 기다리던 '상대방/누군가'가 주인공이다. 앞선 소설이 남자 주인공이 고독에 처해 한없이 자기 자신으로 침잠해 들어가면서도 여자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이 소설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지 못해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신에게 가고 있어」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향기가 한껏 느껴졌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에게 우호적인 '항해사'는 아이들을 가르쳐 재래식 항해법을 존속시킨다. 광속에 도달해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인간의 배에게 그 무슨 소리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는 현재 지구의 멸망으로 인해 돌아갈 곳을 잃은 상태다. 지금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AI와 컴퓨터가 다 해주지만, 이것들이 고장난다면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위대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파인만은 자신의 저서(『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면, 살아남을 아이들에게 전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 하나를 밝힌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들은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작은 입자들로, 서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는 끌어당기고, 너무 밀착되면 서로 밀쳐낸다."
이는 곧 모든 물질의 상태의 변화 (기체·액체·고체)를 담고 있으며, 압력과 밀도에 관한 직관, 화학 반응과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알려주는 문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명이자 흔적이 바로 나니까. 내가 당신의 유적이니까.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151쪽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생사에 대해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스스로 다짐하는 장면은 이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당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해도,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 깨달음은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의 "나는 단수가 아니다."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결국 내가 곧잘 세트처럼 떠올리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분인의 죽음'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앞에서만 가능했던 나의 분인의 삶도 끝난다.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고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 수 없다."
히라노 게이치로
또한 이 단편의 흥미로운 지점은, SF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인식의 전환에 있다.
그 애들은 배가 정박하면 당황해서 어른들에게 왜 시간이 말라붙어 있느냐고 물어.
그 아이들은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변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있었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고, 어제 보았던 하늘이 그 자리에 있으면 어리둥절해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152쪽
이는 소설 밖의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들과 소설 속 인물들의 커다란 인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끊임없이 광속 여행을 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시공간이 변해 있는 것이 '당연하고도 평범한 현상'이다. 소설 밖의 우리는 외부 풍경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그것이 하룻밤 사이의 변화라고 한다면, 사실상 하룻밤 사이에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게 평범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소설 속의 규칙을 통해서, 소석 밖의 독자의 상식과 인식을 뒤집어버리는 장면이 '좋은 SF 소설'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믿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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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소설에서 나를 가장 강력하게 충격했던 대목을 이야기해야 할 차례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 이 두 소설을 하나로 정리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물론, 앞서 언급한 롤랑 바르트의 말도 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를 떠도는 두 연인의 이야기니 우주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사람의 말을 빌려와 볼까.
"In the vastness of space and the immensity of time, it is my joy to share a planet and an epoch with Annie."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 속에서, 앤과 한 행성, 한 시대를 함께 공유할 수 있음은 나의 기쁨이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고백처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속 두 연인은 끊임없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태어나 같은 "시절"을 공유한다는 게 얼마나 가없는 축복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인연을 더 잘 표현한 것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사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에 밀씨를 또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니들이 지금 이곳,
지구상의 그 하고많은 나라 중에서도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서울, 서울 안에서도 세현 고등학교,
그중에서도 2학년,
그거로도 모자라서 5반에서 만난 거다.
지금 니들 앞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 거고
또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다.
인연이란 게, 좀 징글징글하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거기서 나와. 과거에 붙들려 있지 마. 당신은 나와 함께 있잖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야지. 같이 시간을 흘러가야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158쪽.
여자 주인공의 환상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건네는 말은 이 모든 말들을 압축하고 있다. 억겁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걸 함께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 사진 예술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우리나라에서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로 유명하다. 브레송은 스쳐 지나가는 1/125초의 아주 짧은 '찰나'를 포착하여, 그 안에 사물의 본질과 조형적 완벽함을 담아냄으로써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브레송은 사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
나는 이 말을 사랑하는데,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을 그의 말을 빌려 요약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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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작품인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우주 항법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듄>을 떠올리게도 하고, 여러 장소를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도 한다. 또한 웹소설이나 서브컬처의 유구한 떡밥인 '현대인이 지금의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가면 어떻게 될까?'를 정면에서 다룬 흥미로운 소설이기도 하다. 나아가 마지막 결말은 SF 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후의 질문』에 대한 작가 나름의 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가 흥미로웠다면, '인류 최대 스케일의 쌍방삽질'을 다루는 이하진 작가의 『마지막 증명』도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