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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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쇠의 노래





최근의 화제작인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나홍진 감독의 <HOPE(호프)>와 <스파이더맨 4: 브랜드 뉴 데이>다. 두 편에 대해 전체적인 감상을 별점으로 남기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호프>는 워낙에 많은 악평을 먼저 접하고 감상한 것이라 예상보다 별점이 높고, <스파이더맨>은 전작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감으로 인하여 예상보다는 별점이 낮았다. 두 작품의 개별적인 영화적 성취에 대하여서 나는 말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서로 정반대의 이유로 비슷한 지점에 나의 별점이 수렴하는 현상이 흥미로웠다.


김훈 작가의 『현의 노래』를 읽었다. 이 작품을 앞서 언급한 두 영화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스파이더맨>에 가깝다. 나는 김훈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쓴 『칼의 노래』는 내 문학의 만신전에 올라와 있으며 생각이 날때마다 재독하는 소설이다. 또한 『하얼빈』, 『남한산성』 같은 작품 역시 좋아한다. 그가 쓰는 역사소설은 그의 불가지론, 생의 허무함과, 그가 구사하는 건조한 문체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정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의 노래』는 의외로 아쉬웠다.


우선, 『현의 노래』은 다분히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칼의 노래』의 후속편 같다. 정신적인 후계라 해도 좋을 것이다. 김훈의 역사 소설을 거대한 사건(대문자 정치 혹은 역사적 풍랑) 속에서 한 인간이 허무한 저항을 계속하는 것이라 감히 정리해볼 수 있을까. 『현의 노래』 역시 이전의 『칼의 노래』와 그 후에 쓰여진 『하얼빈』처럼 이러한 계보 속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의 노래』의 서사는 한줌 같다. 가야의 멸망과 우륵의 귀순, 그로 인한 가야금의 탄생 등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굵직한 서사이겠으나, 어쩐지 이 서사가 잘 잡히지 않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내달렸던 안중근 의사나 일본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충무공의 일대기 같은 면모가 보이지 않았다. 우륵, 안중근, 충무공의 죽음으로 소설이 귀결된다는 점만 같다.


또한 『현의 노래』는 『칼의 노래』의 문체와 표현을 다수 답습하고 있다. 김훈이 다른 작품에서 흔히 '김훈체'라고 불리는 호흡이나 표현, 리듬을 구사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다. 생의 허무함, 인간의 불가해함을 다룰 때 특히 『현의 노래』에는 『칼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이 다수 등장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칼의 노래』에서는 충무공의 고뇌와 굵직한 서사로 인하여 이 문장들이 강렬하게 파고든다. 두 작품 모두 전쟁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다루기는 한다. 그러나 궁에서 기악을 하는 악사와는 다르게, 전선에서 복무하는 장군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우선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전쟁이라는 생과 사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무대, 시대의 격랑 속에 선 인간의 불가항력, 부조리와 이해불가능한 일들이 난무하고, 그 속에서 매번 옳고 그름을 따지며 고뇌하는 것이 『칼의 노래』의 매력이다. 반대로 『현의 노래』에서는 마치 작중 내내 반복되는 '소리'처럼 흩어지고 사라지는 서사 때문에 『칼의 노래』에서 빌려온 듯한 문장들이 개별적으로만 다가온다. 그로 인하여 하나의 총체적인 인상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일종의 '감각'만 만들어내는데 그치는 듯하다.


또한 『현의 노래』는 인물이 여럿 나뉘어 등장한다. 우륵과 우륵의 안티 태제같은 야로, 이사부, 아라, 비화 등. 이렇게 파편화된 인물들은 당대의 시간 속에서 제각각의 방법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려내지만, 이로 인하여 어느 인물 하나에 집중해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현의 노래』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은 대소변과 같은 '살아있는 몸'의 일이다. 야로로 대변되는 '불/쇠의 일', 우륵으로 대변되는 '소리/현의 일' 역시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작품은 내내 설파한다. 육체와 정신 중 무엇이 앞서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육체 없이는 정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육체의 일들에 작가가 천착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91~192쪽에 등장한다. 신라의 장수 이사부가 가야 고을 다로를 점령한 장면이다. 다로의 왕은 늙은 자신을 죽이고 어린 아들을 살려 햇볕을 쪼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이사부는 늙은 왕을 살려 햇볕을 쪼이게 하고, 어린 아들을 죽인다. 물론, 아들의 맹랑한 대답이 그 결정을 비트는 데 한 몫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원숭이손' 괴담처럼 다가온다. 소원을 이루었으나 그 소원은 기이하게 뒤틀려 있다. 이러한 기이한 뒤틀림은 부조리 같이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이 장면이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작품에서 등장했던 '부조리'는 전쟁과 같은 거대한 시류의 몫이었다면, 이 장면에서 빚어진 부조리는 전적으로 이사부라는 개인이 자행한 부조리였기 때문이다.




쇠의 일, 현의 일.




『현의 노래』를 읽으며 내가 주인공으로 느낀 인물은 우륵이 아니다. 우륵보다는 야로가 현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신라와 가야, 그리고 백제 사이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세 개의 국가 사이를 바삐 오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군종 사이에서도 바쁘게 오간다. 보병에게 기병에 대적할 가지극을 만들어주고, 가지극에 대항해 기병의 안장을 정비하거나, 기병이 가지극을 든 신란의 보병을 상대할 반달도끼를 만들어준다. 나는 차라리 이 소설은 『현의 노래』가 아니라 『쇠의 노래』라 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했다.



쇠는 형체가 제각각이지만, 불을 빌려 가지런히 한다. 반대로 현은 소리를 만들어내되, 이윽고 제각각으로 흩어지게 한다. 또한 쇠는 현실/땅에 발닿아 있는 일이다. 농사를 짓고, 병사를 죽이고, 땅을 얻는다. 반면에 현은 이상/허공에 매여 있는 일이다. 몸과 현을 통해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져 결코 땅에 매어둘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제목은 소설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완강한 저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야로이며, 야로를 통해 현현하는 쇠의 일, 전쟁이야 말로, '살아있는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륵은 야로의 현실적이며 약은 태도를 알고 있으나 이를 애써 외면하고 침묵한다. 이는 마치 <백로가>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이상은 현실의 더러움에서 필연적으로 거리를 두려하기 때문이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샘낼세라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백로가>


그렇다면, 어째서 야로는 이사부의 손에 죽고, 우륵은 살아남았는가. 이 대답은 우륵과 이사부의 대화 속에 있는 듯하다.



- 소리는 주인이 없는 것이냐?

- 소리는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고 울리는 동안만의 소리니 아마도 그러할 것이오.

- 너희 나라 대장장이 야로를 아느냐?

- 가야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소.

- 그 늙은 대장장이가 말하기를, 병장기는 주인이 따로 없어서 쥐는 자마다 주인이라 하였다. 소리는 병장기와 같은 것이냐?

- 소리는 없는 세상을 열어내는 것인데, 그 세상은 본래 있는 세상인 것이오. 병장기가 어떠한 것인지는 병부령께서더 잘 아시리이다.


『현의 노래』, 276쪽



우륵과 야로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이사부, 아라는 모두 '운명을 개척하려는 자들'로 묶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사부는 칼을 들어 임금이 꿈꾸는 부처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고, 아라는 제 몸 하나를 건사하기 위하여 도망치나 결국 운명에 희생된다. 야로는 쇠를 통해 운명을 헤쳐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쇠는 현실에 깊이 얽매인 일이다. 우륵의 소리는 이상에 파묻힌 일이다. 다만, 두 사람은 제 손에 든 쇠와 소리가 모두 주인이 없기를 꿈꿨다. 그러나 쇠와 소리가 지니는 태생에서부터 그 꿈의 결말이 암시된다. 야로는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으나, 그의 재능(쇠를 다루는 일)이 전쟁에 쓸모 있기에 죽었다. 쇠에게는 명백한 주인이 있어야 한다. 주인이 없는 쇠는 주인의 적이 아니라 주인 그 자체를 겨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륵 역시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했으나 가야를 패망시킨 신라의 진흥왕과 군장들의 웃음거리로 삼을 만큼 전쟁에 하등 관련이 없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덮는 순간까지 우륵보다는 야로에게 더 마음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을 나 혼자만이라도 『쇠의 노래』라고 몰래 고쳤다.




- 소리는 주인이 없는 것이냐?

- 소리는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고 울리는 동안만의 소리니 아마도 그러할 것이오.

- 너희 나라 대장장이 야로를 아느냐?

- 가야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소.

- 그 늙은 대장장이가 말하기를, 병장기는 주인이 따로 없어서 쥐는 자마다 주인이라 하였다. 소리는 병장기와 같은 것이냐?

- 소리는 없는 세상을 열어내는 것인데, 그 세상은 본래 있는 세상인 것이오. 병장기가 어떠한 것인지는 병부령께서더 잘 아시리이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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