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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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윤이 소설가는 「되돌아오는 곰」을 통해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25년에는 단편소설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를 통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같은 해 장편소설 『정전』으로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수정 작가와 더불어 근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함윤이 소설가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는 총 7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특이하게도 신춘문예 등단작인 「되돌아오는 곰」은 실려 있지 않다.



「자개장의 용도」


「구유로舊遊路」


「강가/Ganga」


「수호자」


「규칙의 세계」


「나쁜 물」


「천사들(가제)」






「자개장의 용도」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자개장이 이 소설의 주요 장치로 등장한다. 증조모때부터 물려받은 자개장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늘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제약은 "떠남"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보게끔 한다. 돌아오는 방법을 염두에 둔 채 떠나는 것은 정말로 떠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다녀옴"의 일부일 뿐.


진정으로 떠난다는 것은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과 현실성을 버린 순간에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개장의 용도」의 말미에 이러한 의미가 엄마의 입으로 드러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엄마가 그랬듯이 아주 멀리, 쉽사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다녀오지 않고" "떠난다."



엄마는 말했다. 예전에 너더러 자개장을 쓸 때는 돌아올 거리를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누구한테도 이 말은 하지 않았어. 그게 나를 떠날 방법으로 쓰일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야.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너희가 떠날까 봐.


「자개장의 용도」, 41쪽.



「구유로舊遊路」



두 번째 소설인 「구유로」에도 "걷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는 함께 무대를 꾸미던 동료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 무작정 걷는다. 걸어서 그들에게 도착하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도대체가 걷는다는 행위가 소원 성취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오랜 시간 걷는 행위는 통증을 동반한다. 통증은 죽어감이나 문제적인 징후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살아 있음을 증거하기도 한다. 국토종주, 삼보일배 등 몸을 혹사시키는 단순한 방법들은 수행의 한 방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의 신체에 고통을 가해 마음을 닦고, 그리하면 초월적인 존재가 소원을 들어줄 거라는 단순한 바람의 발로 아닐까.


「자개장의 용도」에도 걷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나'가 그렇다. 왜 이 여자들은 걸어야만 했을까?


걷는다는 건 이족 보행이 가능하게 진화했음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로워져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인류는 다른 짐승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라고 퉁쳐서 말해도 될까?

괜찮다면, 이는 곧 '진보(進步)'를 의미한다. 진보의 한자가 '나아가는 걸음'이라는 점과 함께 곱씹어볼 만하다.


걷는 행위는 결국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절박하게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끔 기능하는 듯하다.


나는 구유로를 생각한다. 그 집을 떠나온 날 이후로 매일 그래왔듯이, 그 마당과 복도 그리고 방 들을 떠올린다. 푸른 빛으로 일렁이던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몸을 그린다. 어깨와 배 등 가슴 그리고 무릎과 허벅지 사이까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사라의 몸은 항성과 위성이 겹치는 순간처럼 아주 잠시 드러나며, 다시는 잊히지 않는다.


「구유로」, 83쪽.



「강가/Ganga」



"강가"에는 크게 3가지 뜻이 있다.


강가, Ganga

/강가/

명사

힌두교의 하천(河川)의 신(神). 갠지스 강(Ganges 江)을 신격화(神格化)한 것임.


강-가, 江-

/강가,-까/

명사

강줄기가 육지와 잇닿은 곳. 또는, 그 부근. 강변(江邊). 하반(河畔).


강ː가, 降嫁

/강가/

명사

왕족의 딸이 신하의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



「강가/Ganga」는 이 소설집 안에서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남자를 사러 낯선 도시에 온 여자의 이야기다.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여성을 내세워 독립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낸다. 소설 속의 '나', 또는 '강가'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얼핏 남성 의존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내 남성을 "사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강가'의 3번째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태도다.


이러한 독립 영화적인 특성과 더불어 고전 영화 같은 분위기도 동시에 갖고 있다. 여성과 그가 만나는 남성들의 다소 연극적인 상호작용을 보고 있노라면 70~80년대 흑백 영화의 향수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에 출간된 함윤이 작가의 『정전』이 여공들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이 여공의 이야기가 이 소설이 씨앗이 되었을지 살펴보는 점도 재밌는 독법이 될 것 같다.




「수호자」


「수호자」는 작중 화자가 뉴질랜드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떠나가던 함윤이의 인물들은 이제 돌아온다. 다만, 돌아온 화자는 혼자가 아니다. 귀신과 함께다. 표제작인 「자개장의 용도」와 비슷하게 환상성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며, 언뜻 퀴어적인 요소가 엿보인다.


귀신과 사람은 죽음과 삶이라는 명백한 경계로 갈려진 존재들이기도 하다. 「수호자」를 기점으로 앞의 세 작품에서는 강가, 늪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던 "경계"가 추상적인 단위로 확장되기 시작된다.


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름이 척추를 따라 번졌다. 여자가 말했다. 이걸 귀신이라고 부르는 건 네 자유지만, 떼어내려고는 하지 마. 무조와 똑 닮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면요? 바닥에 주먹질하는 기분으로 매일 버터기는 싫어요. 귀신이든 뭐든, 붙잡고 사는 게 너무 어려우면 어떻게 해요?


「수호자」, 152쪽.




「규칙의 세계」


「규칙의 세계」는 쉐어하우스처럼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산다는 설정에서 「구유로」와 묶어볼 수 있으며, 미신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개장의 용도」, 「수호자」의 냄새도 난다.


또한 "거울"과 "산"은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계"의 이미지가 짙게 작용한다.



「나쁜 물」


「나쁜 물」은 「천사들(가제)」와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선과 악은 얼핏 절대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가치판단은 대체로 주관적이다. 선악의 문제가 명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는 지점들은 언제나 선악이 흐릿해지는 경계에 놓여져 있을 때다. 윤리의 경계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나쁜 물」에서 '너'가 '범죄자'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었던 순간처럼. 이렇게 선의가 죄책감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천사들(가제)」


「천사들(가제)」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꾸는 꿈이 주를 이룬다. 꿈에서 친구와 내가 같이, 또 따로 알던 사람들이 두 사람이 만드는 영화 배역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등장한다. '나'는 자꾸만 꿈에서 깼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가 하는데, 이처럼 이 소설에서 "경계"는 현실과 꿈의 사이로 옮겨지고 자꾸만 흐릿해진다. 마침내, 3개의 배역에 지원한 9명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의 경계마저 지워버리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목 이모님은 자신이 옛 영화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좋은 영화들이 오래 남아 옛것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도 그런 거 만들어. 이모님은 종종 덕담처럼 말했다. 오래가는 거 말이야.너희가 죽은 후에도 길이길이 남는 거.


「천사들(가제)」, 264-265쪽.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 - 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Ganga」, 92쪽.


이처럼 함윤이의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서 "경계"는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경계가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 무언가를 가르는 기준이라기보다는 그 경계를 사이에 둔 두 공간, 두 가치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과정과 그 의미에 집중하는 듯하다.


앞의 세 작품에선 강을 건너고(강을 건너도 여전히 강 건너임에도), 늪에 빠지고, 마침내 강물에 빠진다. 중후반에 배치된 작품에 이르게 되면, 경계는 서로 다른 세계, 선과 악의 윤리, 꿈과 현실, 생과 사처럼 추상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를 위해 환상적인 요소를 마음껏 끌어들이며 적재적소에 표현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경계를 넘는다는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함윤이가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경계선 위에서 태어났다고." 나는 이 작가가 그려놓은 다음 경계선을 쫓아서 『정전』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개장의 용도』를 덮는다.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 - 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Ganga」,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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