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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Sex & Sensibility
한승억 지음 / Socks Puppets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포토에세이집 『여자』<Sex & Sensibility>
글 한승억, 기획 사라 김, 디자인 송지연
여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책,
정작 남성이 읽어야 할 필독서,
내용상 직설적인 성적 묘사와 선정적인 사진,
판매와 구독을 23세 미만에겐 금지.
이런 수식어들이 이 책을 접하기 전, 내가 (이 책과 관련하여) 본 것들이다. 직설적·선정적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느낌이 어쩐지 노골적이라는 듯. 직장 내에서도 보면, 남자들의 노골적인 농담을 마냥 재미있다고 맞장구쳐줄 여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비추어보면 나 역시 '굳이 이걸 봐야 하나' 싶으면서도 일단은 책 속에 담긴(실은 내 안에서) 팔딱거리는 호기심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역시나 투명한 비닐로 곱게 싸여진 이 책... 책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어두침침하다. >.< 이게 뭔 일인가... (이상햐) 어? 여느 책들처럼 책 앞날개고 뒷날개고 그런 거 없다. 까만 바탕에 목차를 보여주고 이 책을 쓴 '한승억'이라는 분의 필모그래피가 보이는 것 같고(침침해서 잘 보이지도 않음) '들어가는 글'이라고 해두어도 좋을 두 쪽 분량의 짧은 글과 글쓴이 한승억, 기획 사라 김, 디자인 송지연 - 이 책을 엮은 분들의 소개글이. 특이하신 분들 같다. 책 자체에 대한 호기심에 묻혀서 사실 이 책을 누가 썼는지 궁금해할 틈이 없었는데 예상치 않게 선글라스 끼고 머리 너저분한(-죄송. 사진이 그렇게 보였어요) 남성분을 맞닥뜨리자 조금 놀란 것은 둘째치고 '엉뚱한 것에 열정을 쏟는' '여자의 성을 이야기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남자, Dr. Love'. 푸히히-
이 책 첫 느낌은 별로다.
칙칙한 디자인에 사진도 선정적이라기보다 뭘 상상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초반에 나오는 이야기가 가족에 대한 이상에 가까운 글,
읽기 거슬리는 어쩔 수 없이 노골적인...
음핵, 내핵(G-Spot), 치골, 요도 입구, BJ - '이 사람, 계속해서 재미없는 용어 써가면서 나불거리는 거 아니야?' ;;
그래도 읽긴 읽어야 해서 보다가 밤꽃 얘기가 나올 즈음 처음으로 웃겼다.
그 냄새에 익숙한 아낙들은 스산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방망이가 부러져라 빨래를 때렸을 법도 합니다. (52쪽)
예전에 일박을 겸한 어떤 세미나에서 여러 여자 선생님들과 밥을 먹으러, 좌우로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구름다리 위를 걷는데 (거기서 내가 거의 막내뻘이었다) 그분들이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 모를 거야. 이게 그... (으흐흐)" 이것 말고도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뭐가 마음에 안 들면 이를 앙 물고 빨랫감을 거의 던지다시피 한다든지... 그냥 말로 하면 될걸... (하긴 말로 먹히는 인간들이 거의 없는 건 사실이니...)
남자와 여자의 본성(특성), 네 부류로 나누어 본 성적 성향, 인성, 적성에 연계된 성품, 섹스, 이혼, 변태, 외도, 남자의 팬티... 중간중간 저자가 권하는, 생각하는, 웃겼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제야 이 책 앞표지에 적힌 '남녀관계에선 섹스가 가장 쉬운 일입니다'라는 글이 이해가 된다. 책을 다 봤다고 해서 내 정체성이 갑자기 확립됐다든가 남녀관계에 대해서 박사급이 된 것은 아니다. 타고난 자신의 고유 인성이 쉽게 변화되지 않듯이 그 사람만의 타고난 개성이라고 해야 할까,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그런 것들은 자신이 바꾸고자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강한 이미지를 바꾸어보기 위해서 성형을 시도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 심심한 이미지를 바꾸어보기 위해서 한때 약간의 노력을 해보긴 했다. 안 되더라... 또한, 사랑 없는 섹스를 즐길 여자는 '거의 없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과 이기적인 동물 남자. 지나간 버스는 후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책을 남자가 읽어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여자들이 읽고 자신만의 확고한 인생 패턴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난 놀이가 될 것 같다.
"성인이 된 남성은 후천적 인성마저도 변화가 어렵지만, 여성은 후천적 인성은 물론 출산 등을 통해서 선천적 인성마저도 어느 정도 바뀔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 하지만 여성은 45%의 긍정적인 남성만을 통해서 진보적인 인생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관성의 본능이 있는 남성이 부정적이면, 변화의 속성을 가진 여성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변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216-217쪽)
관성의 본능이 있는 남성이라... 말이 좋지, 쉽게 말해서 똥고집이나 자뻑하고 비슷한데 혼자 똥고집을 부리든 자뻑을 하든 상관을 안 하는데 똥 눌 데 안 눌 데를 가리지 않고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꼴은 지켜봐주기가 곤란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어떤 여자가 이런 얘기를 했냐에 따라 백인백색이니 단순한(?) 남자로서는 참 난해하기도 하겠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원하는 게 한 가지면 그 한 가지를 원하는 상대를 찾아가면 정확하다. 저자가 나이트클럽에서 왜 여자들이 웨이터의 손에 손목이 잡혀서 끌려다니는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누구나 꿈꾸는 만인의 연인에 대한 동경쯤 될 것 같다. 사랑받고 싶고, 이끌림당하고 싶고, 예쁨 받고 싶고... 그런 것들. 아니면 가정에서부터 수동성에 길들여진 모습이랄지. 사실 비교적 확고하게 자신을 알지 못하면 그냥그냥 끌리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래가지고는 대등한 위치에서 진정으로 판타스틱한 행복감과 깊고 뜨거운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나 싶은데... (이것도 저것도 잘 모르겠다) 남녀관계란 알다시피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도 뭉뚱그려서 말할 수 있는 사람 대 사람이 아닌 개성이 있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라면 말이다.
자칫 외설로 흐를 수도 있고 그 수위 조절이라는 게 쉽지 않은 책인데 끝마무리가 좋아서였는지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결혼을 코앞에 둔 남녀 말고(결혼을 바로 코앞에 두고 이런 책을 읽으면 뭐하나. 응?) 적어도 결혼을 1~2년쯤 앞둔 25세 이상? 또는 결혼을 했지만 정체성 확립이 덜된 45세 미만의 남녀가 보면 좋겠다 싶다. 그렇다고 저자의 얘기들이 다 옳고 정답은 아니라는 점만 유의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