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이야마 만화경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요이야마 만화경>
宵山万華鏡
 
      요이야마(교토 기온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레 행렬의 전날로, 7월 16일-옮긴이) (12쪽)
 
     거울에 짜 맞춰 넣은 원통에 색종이와 작은 유리 조각을 집어 넣는다. 한쪽 끝에서 들여다보며 원통을 회전시키면 온갖 도형이 생겼다가는 사라진다. 이것이 만화경이라는 완구인데, 메이지 시대에는 백색(百色) 안경이나 비단 안경이라고도 불렸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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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에서 나고 자란 '교토작가', 모리미 도미히코(1979)의 작품들은 대부분 교토를 배경으로 한다. 이번 작품 역시 교토 기온이라는 곳에서 열리는 축제의 하루인 요이야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만화경은 내가 아주 어릴 때 학교에서 만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색종이를 조각내서 거울이 있는 종이통 속에 집어넣고 돌려서 보면 이렇게 저렇게 달리 보이는 황홀한 색감이 마냥 좋았던 것 같은 느낌? 정말 그랬을까?...내가 그렇게 봤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데 이 책에 나오는 6편의 이야기가 그런 식이다.
 
요이야마 자매
 스자키 발레 교실에 다니는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 자매. 호기심이 왕성한 언니는 요이야마 축제를 구경하고 싶어서 한눈팔지 말고 집으로 곧장 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겁 많고 소심한 동생을 이끌고 가다가 동생의 손을 놓친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질 즈음, 저녁 하늘로 끌려갈 뻔한 그녀의 두 발을 언니가 꼬옥 붙들고... 아, 아, 언니....
 
요이야마 금붕어
고등학교 동창 오토카와의 초대로 요이야마를 세 번째 찾은 후지타 군.  앞에 두 번은 말 그대로 속았다. 두 번 속고도 또 찾아오는 후지타 군은 어떤 괴물이야? 싶은데, 하는 행동마다 기기묘묘, 이상야릇한 오토카와 못지않게 용감무쌍한 후지타 군이 요이야마 법도를 어겨서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는 피시식... 웃겨부러. 
 
요이야마 극장
오토카와 선배의 친구인 후지타 씨를 속이기 위해 가짜 기온제를 만드는 웃기는 멤버들.
- 번잡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고나가이를 돌게 만드는 얍삽한 인간 마루오와 괴력의 여장부 야마다가와 아쓰코, 이들 배후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오토카와 선배.
장난인데 장난이 아니게 커지는 세트 제작...
   "상대방을 속이려면 스케일과 기세로 압도하는 수밖에 없다." (102쪽)
 
요이야마 회랑
15년 전, 요이야마 날에 사라진 딸을 쫓아 화랑 주인 야나기 씨가 건네준 만화경 속을 헤매다 요이야마의 불빛 속으로 사라진 삼촌의 이야기.
   "진정하십시오. 쫓아가면 안 됩니다." (172쪽)
딱히 정해놓은 계획 없이 딸을 잃은 삼촌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조카 지즈루를 부축해 주는 화랑의 야나기 씨.
 
요이야마 미궁
15년 전, 요이야마의 밤에 무남독녀 외딸을 잃은 고노 화백...
   "만화경을 통해 15년 전에 모습을 감춘 딸을 본 것이 이 끝없이 반복되는 세계로 들어오게 된 계기라고 했다." (215쪽)
1년 전, 요이야마 해질녘에 의문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야나기...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를 쫓아 오는 요이야마의 환영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즉, 아버지도 나처럼 요이야마를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내기 전에 죽은 것이 아닐까." (211쪽)
아버지의 유품을 집요하게 찾는 기네즈카 상회 오토카와...
점점 알 수 없는, 알아내야만 할 것 같은 기억 · 의문의 소용돌이.
 
요이야마 만화경
다시 스자키 발레 교실이 파하고 요이야마 거리에서 손을 놓치게 된 자매 가운데 언니가 겪는 이야기.
 
처음 이야기의 끝과 마지막 이야기의 끝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그래서 마치 비디오를 보다가 누군가 자동으로 리플레이시켜준 것처럼, 6편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는 아닌데 하나의 이야기라는 듯. 한참 만화경 속에 빠져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얘, 뭐하니. 이제 그만 놀고 저녁 먹어야지."라며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지. 뱅글뱅글 같은 곳만 돌고 있을 순 없잖아.
 
오늘도 내일도 눈을 돌리면 신기하고 재미있고 새로운 것들이 즐비한 이곳, 이 세계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현실의 삶에서는 나를 붙들어줄 야나기 씨도 언니도 없잖아.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어서 만화경 속에서 빠져나오라고, 축제의 현장에서 이제 그만 빠져나오라고 손짓할 수도 있을 거야.
 
굉장히 유치하면서 재미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한테는 좀 몽롱한 이야기였네. 모리미 도미히코의 다른 작품 <유정천 가족>이 엉뚱한 4차원이라면 이 작품은 몽롱한 4차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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