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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김원영_
1982년에 태어났다.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으며,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이 책 '앞날개'에서)
책 제목 참 진하고 뜨겁다.
표지에 눈에 띄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하단에 잘린 휠체어를 통해 느껴지는 어떤 부자유함.
그러한 휠체어와 한몸인 사람이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자못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뜨거운 욕망(→ 야한 장애인이 되는 것. 미리 말해둔다)'은 일반 사람들도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있는 그대로' '과감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은 나와 일정 부분 닮은꼴이기에 조금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방식은 사람들이 썩 반기는 방식이 아니란 말이다. 또한, 연예계통 사람들 가운데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흘린 사람치고 이상하게도 나중에 사고 안 친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 어쨌든, 두려움·호기심·강렬한 인상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려 노력하며) 책장을 연다.
이 책은 장애를 지닌 청년 김원영이 작고 약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회과학에세이다. 에필로그에서 스스로 밝히듯, 애초에 학문적인 글로 풀어낼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약간 학문적인 분위기를 풍긴 채 개인 경험을 위주로 장애를 둘러싼 시선과 불합리함,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고 강렬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역시 젊고 뜨겁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확실히 그들의 세상은 내가 전혀 모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세상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의 평균 수명과도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느 장애인과 조금 다른 저자의 위치나 상황 때문인 것 같다. "서울대 로스쿨에 다니는 장애인이다"라는 말에서 사람들은 으레 서울대 로스쿨? 어우, 대단한데. 그러면서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 마치 장애인이 아닌 사람 취급하고 싶어한다. 좋은 것만 보고 싶어하고 사람 특성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장애인이다. 며칠 전에 읽은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에서 본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에 관한 인터뷰 기사 첫머리가 딱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당신은 이제 영화 속의 슈퍼맨이 아니라 진짜 슈퍼맨이 되었다'라고 말할 때마다 저는 무척 언짢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슈퍼맨이라면 그래요, 전 슈퍼맨이지요. 그러나 환상 속이 아니라 현실 속의 슈퍼맨이 되는 것이 너무나 힘겹습니다. 왜 저의 상처에도 역할이 주어져야 하는지요."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44쪽)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졌을 때 부딪히게 되는 정체성 문제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약자(=장애·질병·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특수교육기관이 아닌 곳에서 장애인이 일반인과 교육받는 것에 대해, 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해, 개인의 존엄성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어느 것 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들이다. 또한, 개인의 생각(의견)만으로 개진되거나 변화되는 것들이 아니다. 저자가 지닌 장애가 누군가를 대가 없이 도와주려는 수많은 사람의 손길에 의해 조금이나마 극복 가능했듯이 위에 나열했던 문제들은 '서로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과 작은 행동들이 속속 모여줘야 그나마 나은 대안이 도출될 것 같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세대밖에 모르고, 자기가족밖에 모르고,...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하는데, 나부터 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무력한 이십대
그리고 88만 원짜리 장애인(물론 장애인 전체의 평균 임금은 44만 원에 더 가깝다)
가족, 장애, 세대. 그것들이 주는 무게가 내 삶에 찾아온 기회들의 대가라고 생각해야 할까? 실제로 나는 대학 생활 내내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은 나를 부자유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내 억압된 욕망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오롯이 집중하지도 못했으며, 그렇다고 장애인으로서의 정치적 실천에 몰입하지도 못했다. 이십대로서, 갇힌 세대로서 우리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고리를 끊어내는 일을 실천하지도 못했다. 그저 여기저기 어설프게 마음을 쓰며 끊임없이 진동할 따름이다. (254쪽)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내린 결론-더욱더 야해지는 것. 더욱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핫한' 존재가 되는 것...."병신 육갑한다"라는 오래된 명제에 온몸으로 저항해가는 것(221쪽)-이 썩 마음에 들지만 상처나 피해의식은 십분 덜어내고 '서로 잘 살고 싶은' 사람으로 거듭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