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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평점 :
예견하는 신화 성찰하는 철학 질주하는 과학
<메두사의 시선>
"신화는 즐겨 진리의 가면 놀이를 하고, 과학은 아직 천진난만하게 자연의 거울이기를 바라며, 철학은 현실의 베일을 끊임없이 벗겼다 덮었다 한다." (이 책 서문 '사족과 몽상' 가운데)

뜨앗!
표지에 눈만 보이는 메두사의 시선이 섬뜩하다. 그 자리에서 얼어버릴 것만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이 여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괴물이고, 이를 직접 보는 사람은 무조건 돌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단다.
"어잇! 뭐지? 나랑 누...눈싸움 하자는 거야?"
평소 잘 접하지 않는 분야 - 신화 + 철학 + 과학 - 를 골고루 접목해 놓은 철학 에세이집이라 표지 핑계라도 대면서 미적거려본다. 책 읽기도 그만큼 더뎠다. 하긴 지지난 해까지 약 2년 반에 걸쳐서 철학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연재한 '철학 노트'를 바탕으로 한 토막글들의 묶음 12편이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뚝딱 읽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읽어서 좋은 책도 아니라고 본다. 물론 재미있어서 한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겠다는 데야 누가 말리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가 바로 '메두사의 시선'이다. 사람을 돌로 변하게 한다는 메두사의 시선은 불변의 법칙을 붙잡아두는(두고 싶어하는) 과학의 시선으로도 해석된다. 그러고 보면 과학은 참 편리하고 단순하고 깔끔한 것 같은데(←이런 점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것 순으로 나열해 보라고 하면, '과학 - 철학 - 신화'인데 지금은 조금 바뀌었다) 학자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고, 통섭이니 통합이니 해서 과학을 과학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현실에 봉착했다. 나무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가지만, 결국 든든한 기둥인 줄기에 모여드는 모습인 것처럼 자유로운 사고와 석고화된 법칙의 변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갑자기 법칙도 뭣도 없이 사람 정신 사납게 만들었던 인문학자 한 분이 떠오르네. 그분께는 메두사의 시선 한 방 쏘아주고파.
유난히 아폴론적인 것에 경도된 점에서 그리스인들은 특별났는데, 이 기괴할 정도로 거친 디오니소스적인 힘 앞에서 "아폴론은 메두사의 머리를 방패로 삼아 그에 대항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거인적이고 야만적인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속에서만 그렇게 반항적이고 냉담하며 보루에 둘러싸인 예술 또한 가능했던 것이다. (169쪽)
엄청난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문화 콘텐츠를 구상하는 데에도 아폴론적인 힘과 디오니소스적인 힘이 둘 다 필요하다.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고 알고 있는 철학!
온갖 복잡한 신들과 인간이 얽힌 사랑과 전쟁의 서사, 신화!
교과서 업그레이드가 가장 힘들다는 과학!
이들을 똘똘 뭉쳐서 말 되는 이야기를 꾸며주신 철학자 김용석 님의 시선과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는 세 가지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철학이라는 모자와 신화라는 안경, 그리고 과학이라는 지팡이. |
마지막으로, 세 가지 선물을 받은 사람으로서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그곳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셨다는 글쓴이님 머리도 메두사의 머리카락(배암~)처럼 마구 엉키고 꼬여 있지 않을까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해본다. 철학이란 게, 신화란 게 보통 머리 복잡해야 말이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