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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Philippe Claudel 소설
피에르 코프 그림 | 정혜승 옮김

필립 클로델(1962, 프랑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 쓴 어른을 위한 우화 소설이다.
이 책 제목이자 첫 작품인 「아이들 없는 세상」을 포함하여 19편의 굵고 짧은 단편들이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왜 그래...무슨 일 있었어?..."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유럽 특히 프랑스 영화를 썩 재미나게 즐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소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은 그렇다 치고 그림까지... 성난 아이들이 마구 갈기고 문질러 놓은 것처럼 거칠고 산만한 그림들은 다소 충격적인 글의 분위기를 희석시키기는커녕 고조시키는 듯하다.

목차 다음 장, 그러니까 첫 작품에 들어가기 전, 넉 줄 글이 쓰여 있는데
하루하루 나를 새롭게 감동시키는
우리 꼬마 공주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리고 언젠가 어른이 될 아이들과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걸 보면 아이와 어른 모두 봤으면 좋겠다는 것 같고 그래도 될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만 보면 좋겠다. 이것은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형제의 동화를 적나라한 원래 작품 그대로 아이들에게 들려줘도 되는지 마는지의 논란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자신도 한때 아이였다는 것을 까맣게 잃어버린 어른들을 혼내주려고 사라진 아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거부하는 아이, 요정을 믿지 않는 아이, 어른 손에 난도질당하는 아이(←개인적으로 가장
), 책 속으로 숨어버리는 아이,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아이,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아이, 착한 사람 되는 백신을 만드는 아이,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 엄마아빠를 모르는 곳에 갇힌 아이, 악몽 사냥꾼을 그리워하는 아이, 어른들의 세계를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 아이, 쓰레기를 뒤지고 또 뒤져야 하는 아이, 자기 색깔을 바꾸고 싶어하는 아이, 버려질지 몰라 불안에 떠는 아이, 입을 봉해버린 아이, 허구한 날 텔레비전만 봐서 모자라진 아이, 아름다운 세상을 믿고 싶은 아이, 점점 작아지는 아이......
우화 형식을 띠고 있어서 어떤 이야기는 사물이, 어떤 이야기는 동물이 어린이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입말로 소리내어 읽어보면 좋은 작품들이다.
감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자극이 지나쳐서 오히려 반감성적이고 무뎌진 감정의 소유자들이 늘어났다. 한때 아이가 정말 아이일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유치원에만 가도 아이 인생은 끝이다. 말 그대로 어른아이가 되기를 강요당한다. 이런 현실에서 아프고 따갑게 느껴지는 이 작품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동심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아이들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이들의 외침'이 아닐까. 어른들이 정말 못됐구나,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