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유기 - 중국 역사학자가 파헤친 1400여 년 전 진짜 서유기!
첸원중 지음, 임홍빈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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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서유기>
중국 역사학자가 파헤친 1400여 년 전 진짜 서유기!
첸원중 지음 / 임홍빈 옮김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주 캐릭터들.
사오정/손오공/저팔계/삼장법사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는 우리나라에서 소설 《서유기》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여기서 삼장법사(=현장스님)는 다른 유별난 캐릭터에 묻혀서 대단히 우유부단하고 어수룩한 인물로 기억된다.

지난 1999년, 만 4년의 작업 끝에 소설 《서유기》 완역을 마친 이 책의 옮긴이(임홍빈)는 소설 속에서 몇 안 되는 실존인물 가운데 삼장법사의 '못난 이미지'가 의아하게 생각되던 차에 소설이 쓰여진 시대와 정치사회적 배경, 작가 오승은의 일생을 살펴봄으로써 궁금증이 풀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 현장스님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것은 2007년 11월에 이르러 《대당 서역기大唐 西域記》, 《대자은사 삼장법사전大慈恩寺 三藏法師傳》, 그리고 첸원중 교수의 바로 이 책을 손에 넣으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역사속 인물 현장스님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중국 푸단 대학 첸원중 교수가 중국 CCTV 학술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강의한 '현장 서유기' 36편을 책으로 낸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EBS에서 꽤 신경써서 제작한 괜찮은 교양프로그램 하나를 책으로 냈다고 보면 되겠다. 제1강 현장법사의 출신 내력에서부터 이 책의 주 내용이 되는 서역 천축(인도)으로의 험난한 구법여행 과정과 (제32강) 당나라에 돌아와서 구법여행과 맞먹는 기간 동안 번역 작업에 몰두하다가 (제36강) 예순 다섯의 나이에 원적하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가능한 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엮어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적 사실이라 함은 크게 두 가지, 《대당 서역기》와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을 말한다. 《대당 서역기》는 "현장스님이 귀국한 이후 당 태종의 명을 받들어 쓴 것입니다."(570쪽) "이 책은 현장스님이 구술하고, 변기가 받아 적은 것으로,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공동으로 완성한 걸작입니다."(617쪽)라고 적고 있다. 비교적 공적이며 객관적인 여행견문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장스님 나이 53세에 이 작업을 함께한 애제자 변기라는 사람이 황실의 공주와 사통한 죄로 고작 30세의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충격적인 일화와 얽혀 있다. 다른 하나,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은 "현장스님이 가까운 제자들에게 구술해준 것으로서"(235쪽) 제자들이 쓴 스승의 전기라고 할 수 있으며 앞의 여행기보다 좀 더 풍부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중국의 알려진 고전이라든지 일반인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여러 불교서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전까지 소설 속에서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당나라 스님의 실제 모습을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고도 너무 가볍지 않게 전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고와 준비가 필요했는지 짐작만 해볼 따름이다. 방대한 분량(총 668쪽)에서 예상해 볼 수 있듯이 현장스님의 우여곡절 구도求道여정 말고도 참으로 다양한 재미를 만나볼 수 있는 모험담 그 이상 가는 아주 멋진 책이다.


스님이 만났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 그 중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도와 둘가 천신을 숭배하는 성력파 신도와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역시 세상에 종교는 많고 광신도는 무섭다.

스님이 거처가는 곳곳의 정치, 경제, 문화, 풍습, 지리, 전설, 복식....

초기 불교의 탄생도 엿볼 수 있었다.

"붓다가 불교를 창립하던 초기에 반대파가 있었다는 사실, 그들의 수령은 데바다타였으며, 데바다타의 신도들은 1000여 년 동안 인도에 존재했고, 그 인원수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줍니다." (347쪽)

이래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이름도 괴상한 종교 지도자들이 많은가 싶다. 혹시나 주류 종교를 누르고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무엇보다도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는 굽히지 않는 소신과 학문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한 목적 하나로 그동안의 지위를 버리고 목숨을 걸고 사막을 횡단한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냐 말이다. 얼마만큼 왔다가 힘들어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이 있다면 이 책 8강 "절망의 모래바다, 막하연적"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여행 내내 숱한 가르침을 받고도 돌아왔을 때 번역작업에 몰두하면서 건강하게 지식을 추구하는 모습은 오늘날 공부에 열을 올리는 수많은 대학생과 교수가 꼭 배워야 할 점이다.

"현장스님이 보통사람을 초월한 왕성한 지식 추구자였으며, 날란다 사원과 계현법사에 대해 존중은 하되 맹종하지 않음을 충분히 설명해줍니다."(416쪽)


조금 다른 면으로, 중국이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나라이주의拿來主義(루쉰 선생이 언급한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과거의 문화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선택적으로 수용, 계승하는 방식)'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이상 현장스님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최고의 유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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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림의 과학 - 아름다움은 44 사이즈에만 존재하는가
바이런 스와미 & 애드리언 펀햄 지음, 김재홍 옮김 / 알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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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OF PHYSICAL ATTRACTION

<이끌림의 과학>

아름다움은 44사이즈에만 존재하는가?

바이런 스와미(진화심리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 애드리언 펀햄(조직심리학자이자 응용심리학자) 지음 / 김재홍 옮김 


'내가 이 책을 무슨 생각으로 보겠다고 한 거지?'

무슨 대단한 계획이 있어서 보게 된 건 아니고, 나는 아름다움을 상대적인 거라고 보는데 이 책에서는 뭐라고 말해줄까... 뭔가 믿을만한 과학적인 기준을 알려주지 않을까... (부제를 보아하니) 아름다움은 44사이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줄 것만 같고... 그래서 보게 되었다. 누구나 예뻐지고 싶고 멋있어지고 싶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이자 호기심이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내가 이전에 지니고 있던 기본 사고 가운데 하나는 내적인 아름다움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생각인데 여기서 살펴보게 될 아름다움은 보여지는 것, 그러니까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이것 외에도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편견(?) 따위를 물리치고 최근의 연구결과를 다방면으로 알려주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에 대해서 몇 가지 정리를 해보고 싶다.

 
1. 과학자가 육체적 매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인간의 육체적 아름다움은 화가와 시인, 철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2. 스스로를 외모를 초월한 복잡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가? 육체적 매력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심리학 연구는 - 한마디로 -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 '머리말' 가운데)

3. 아름다움은 입술이나 눈과 같은 특정 부위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합쳐진 전체나 그 이상으로 말해질 수 있다고 보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가능성을 검토하는 연구는 거의 없으며, 진행 중인 연구 작업은 육체적 매력에서 얼굴과 몸이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100쪽)

"궁극적으로는 조각난 유리를 다시 붙여야 한다. 개별 구성요소의 관점에서 인간의 몸을 분해하는 것은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전체론적 접근 방식의 부재는 분명 육체적 매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가로막을 것이다." (101-102쪽)

요즘 학문의 추세이기도 한 것 같은데 학제간 연구결과의 결합 및 통합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진화심리학이 그 노력의 출발점을 제공해왔다고 말한다.

4.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진화심리학이 육체적 매력의 과학에 제공하는 것은 어떤 얼굴이 왜 다른 얼굴보다 더 매력적인가에 대한 간결하고 강력한 이론적 설명이다."(20쪽)

5. '육체적 매력'이라는 주제는 진정한 학문의 주제가 아니라고? 육체적 매력에 관한 연구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적어도 오늘날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화에서 개인의 육체적 매력이 자신의 심리적 안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 우선 현대사회가 왜 그렇게 육체적 매력을 강조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24쪽)

6. 아름다움을 측정할 수 있는가? "열렬한 애호가의 눈에 비치는 아름다움은 합리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부정확한 무정형의 개념이다. (...) 인간의 아름다움은 과학적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을 이해하면 아름다움의 영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과도한 추구가 해로움과 손해를 가져오고 심지어 병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 특히 그러할 것이다." (249쪽)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진화심리학의 관점을 지지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여타 학문들(사회심리학, 비교문화심리학, 인지심리학, 인류학과 미학 등)을 배제하지 않고 두루 포용하며 결국 이끌림에 관한 과학의 학제간 통합·발전·확장을 바란다. 
 

이 책의 제목이나 표지, 책 소개 어디에도 '진화심리학'(저자 소개에 나와있긴 하다)에 대한 얘기가 없기에 조금 당황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책 중간쯤 이르렀을 때, '이거 뭐야~' 투덜이 스머프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연구결과를  내가 왜..."


만약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만 다뤘다면 책이 이렇게까지 두껍고 장황하지 않았을 것이다[총 335쪽 - 260쪽부터 부록으로 참고문헌(전부 영문 자료임)과 찾아보기] 나름대로 완벽한 연구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 여러 연구와 학(學), 사고를 두루 포괄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좀 답답하게 느껴져서 그렇지 현재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거나 앞으로 (특히) 진화심리학 연구에 몰두하고 싶은 과학적 사고의 소유자 혹은 몸매(외모)관련 분야에 몸담고 계신 분들-성형외과 의사, 다이어트 관리사, 건강관리사, 트레이너 등-이 본다면 대단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확실히 나는 동양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것 같다.

     "동양인들은 사물들을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매우 복잡한 곳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관련 요인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문제 해결에서 형식논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미숙한 인간으로까지 간주된다." - 리처드 니스벳(심리학과 교수), 『생각의 지도』, 16쪽

     "미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만 4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일본은 겨우 1명만을 배출했다. (...) 일본 내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논쟁과 지적 토론의 부재를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동료들끼리 서로 비판하고 심사하는 것을 무례하게 생각하며, 논쟁과 지적 토론이 과학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 리처드 니스벳(심리학과 교수), 『생각의 지도』, 207쪽



요즘 신세대들은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한데,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다수는 거의 그렇다고 본다. 예전에 내가 알던 분도 논문을 이 책처럼 왠지 횡설수설하다시피 쓴 것 같았다. 어쨌든, 학문이라는 게 논리적이어야 하고, 그분도 될 수 있으면 통합 학문을 추구하다 보니까 그리된 것 같은데 문제는 동료 학자로부터 지적질을 당하니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괴로워하시는 거다. 그러면서, 친한 동료학자들에게는 자신의 논문을 자주 인용해달라는 아부성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글쎄... 이런 환경에서 이 책 저자가 바라는 - "이미 수십 년이 지난 문헌들인 탓에 동시대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시급하다."(201쪽) - 연구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게 될까.  


바이런 스와미Viren Swami와 애드리언 펀햄Adrian Furnham이라는 두 학자의 이러한 과학적 연구물을 통해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미신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고 권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하는 다국적기업의 이데올로기와 관행에 반대"(258쪽)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닐 수 있다면 진화심리학이고 뭐고 간에 언제든 반길 준비가 되어 있다. 중반까지 지루한 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사진, 도표, 그래프 등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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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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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Philippe Claudel 소설

피에르 코프 그림 | 정혜승 옮김

 


필립 클로델(1962, 프랑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 쓴 어른을 위한 우화 소설이다.  

이 책 제목이자 첫 작품인 「아이들 없는 세상」을 포함하여 19편의 굵고 짧은 단편들이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왜 그래...무슨 일 있었어?..."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유럽 특히 프랑스 영화를 썩 재미나게 즐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소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은 그렇다 치고 그림까지... 성난 아이들이 마구 갈기고 문질러 놓은 것처럼 거칠고 산만한 그림들은 다소 충격적인 글의 분위기를 희석시키기는커녕 고조시키는 듯하다. 



 

목차 다음 장, 그러니까 첫 작품에 들어가기 전, 넉 줄 글이 쓰여 있는데 
 

하루하루 나를 새롭게 감동시키는

우리 꼬마 공주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리고 언젠가 어른이 될 아이들과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걸 보면 아이와 어른 모두 봤으면 좋겠다는 것 같고 그래도 될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만 보면 좋겠다. 이것은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형제의 동화를 적나라한 원래 작품 그대로 아이들에게 들려줘도 되는지 마는지의 논란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자신도 한때 아이였다는 것을 까맣게 잃어버린 어른들을 혼내주려고 사라진 아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거부하는 아이, 요정을 믿지 않는 아이, 어른 손에 난도질당하는 아이(←개인적으로 가장 ), 책 속으로 숨어버리는 아이,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아이,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아이, 착한 사람 되는 백신을 만드는 아이,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 엄마아빠를 모르는 곳에 갇힌 아이, 악몽 사냥꾼을 그리워하는 아이, 어른들의 세계를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 아이, 쓰레기를 뒤지고 또 뒤져야 하는 아이, 자기 색깔을 바꾸고 싶어하는 아이, 버려질지 몰라 불안에 떠는 아이, 입을 봉해버린 아이, 허구한 날 텔레비전만 봐서 모자라진 아이, 아름다운 세상을 믿고 싶은 아이, 점점 작아지는 아이......

우화 형식을 띠고 있어서 어떤 이야기는 사물이, 어떤 이야기는 동물이 어린이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입말로 소리내어 읽어보면 좋은 작품들이다.

감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자극이 지나쳐서 오히려 반감성적이고 무뎌진 감정의 소유자들이 늘어났다. 한때 아이가 정말 아이일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유치원에만 가도 아이 인생은 끝이다. 말 그대로 어른아이가 되기를 강요당한다. 이런 현실에서 아프고 따갑게 느껴지는 이 작품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동심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아이들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이들의 외침'이 아닐까. 어른들이 정말 못됐구나,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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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의 부부항해 내비게이터
엄정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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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의 부부항해 내비게이터>

가정상담학 교수, 부부상담 임상실험,

36년차 주부의 모든 경험과 지혜가

녹아 있는 17가지 부부항해 나침반!

(이 책 뒷날개에)

 


우리 부모 세대들은 한 번쯤 "황혼이혼"을 생각한다. 여자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 가운데 하나인 "나중에 늙어서 보자"는 말이 '자식 때문에 임시로 봐준다'는 얘기 같기도 해서 씁쓸할 따름이다. 그만큼 이전 세대 분들은 무조건 참고 사는 것을 미덕 아닌 미덕으로 알고 사셨다. 또한, 어떤 계획이나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좋게 말해서 "흐르는 강물처럼" 사셨다. 대신 마음속에 한(恨)과 울분이 한가득. 그러니 마음껏 항해해야 할 배가 제대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나마 구성원들이 겉보기에 무사하고 배가 부서지지 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  


이 책은 결혼 생활이라는 항해를 위한 17가지 항해수칙이 담긴 도움서다. 기본적으로는 집을 사기 위한 대출금을 계획적으로 갚아나가는 그런 것 말고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비전(계획)을 세우겠다는 자세와 자신의 변화 가능성을 긍정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겠다.  

 
17가지 이슈..............................................
  1. 친밀감        2. 성격 차이        3. 의사 소통    4. 사랑의 언어      5. 원가족의 상처  
  6. 긍정적 자아상   7. 성 생활           8. 부부 갈등    9. 외도       10. 중독  
  

 11. 가정 폭력        12. 가정 경제     13. 자녀 교육   14. 부부역할   15. 고부갈등  
  16. 건강                 17. 영성

 ...........................................................................

대략 짐작은 했지만 결혼 생활이라는 항해는 정말 변화무쌍하며 변수도 무척 많고 다양해서 하나 둘 신경 써서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살 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지옥을 맛볼 수도 있는 암울한 상황.(후드드)


이 책을 보고 느끼는 한 가지는 단점을 장점으로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뭐냐면...

에밀 브루너라는 분의 말씀이 현대의 가장 무서운 질병이 '가족해제 현상'이라는 거고,

저자가 그 이유로 꼽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황금만능주의, 자녀 중심 시대,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남성이 여성 권익 신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성 지체 현상' 등 많고도 많은데 그 대신 이 책에서 알려주는 항해수칙 외에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과 노하우가 참 많이 축적된 복 받은 시대를 만났다. 그러니 우리 부모 세대가 못했던 성격 유형 검사를 받아본다든지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 탐험을 시도해 본다든지 여러 눈에 보이는 항해 보조도구를 구해서 부부와 자녀를 더 잘 알고 항해를 한다면 그나마 불안을 조금 덜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꽉 막힌 사람이나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과는 진행이 힘들 것이다.  


사실 항해 수칙 한 가지만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어도 책 한 권씩은 나올 만한 것들이다. 문제가 크게 터지기 전에 결혼 생활이라는 항해에 필요한 혹은 부딪힐지 모를 암초를 한 번쯤은 만나서 점검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예방차원이라고 해야겠다. 몸소 겪은 36년 부부로서의 삶과 부부상담 임상경험이 충분히 녹아 있어서 그런지 무척 쉽고 간결한 언어로 쓰여졌다. 작고 사소해보이는 일들로 고민하는 결혼생활 10년 이하 부부에게 권하고 싶다. 


'장애인' 빵공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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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문
길상 지음 / 푸른향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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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문> 

숲속에서 문을 찾아 헤매는 외로운 수행자의 구도소설

 


     '우리 모두는 숲 속에서 문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였노라.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몸으로 감각을 느끼는 지각작용의 숲속에서 문을 찾아 헤맸던 여행자였노라...'

     나는 그 환영(幻影) 속에서 문을 찾아 숲 속에서 느껴지는 많은 풍경들을 모순이라고 느끼며 해결책을 찾아 헤매었다.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한 번도 일어나 본 적이 없는 허깨비였는데 마치 악몽을 꾸듯 몽환(夢幻)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렸던 나그네였노라!' (359쪽)

 

어느 수행자인 '나'의 목소리로 구도求道, 즉 깨달음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 체험소설이다.

한참 뭣 모르고 살 때는 소설을, 역시 뭣 모르고 재미나게 보다가 소설보다 더 롤러코스틱해진 내 삶과 맞닥뜨리자 딱히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못 느끼고, 그렇다고 읽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손이 가지 않던 차에 독특한 구도소설 한 권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책소개에 의하면 길 상 스님 본인의 파란만장한 불교 입문과정을 바탕으로 한 거의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한다. 길고 긴 방황기를 거쳐서 숲속의 문 앞에 다다르기까지 무려 360쪽에 달하는 장편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한 인간의 장황한 삶의 모습을 2.5배속으로 빠르게 압축해서 본 것 같은 느낌... 어느 봄날, 스님이 주시는 차 한 잔 마시면서 엉덩이 눌림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말씀 잘 들었습니다"하고 툴툴 털고 일어나 속세의 못난 인간들과 마주하러 가야 할 것만 같은, 그런 허함과 후련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책 앞날개에 보니까 현재 길 상 스님은 '삶이 곧 진리'라는 생활 불교를 실천하고 계시다고 한다.

사실 한 인간의 절망과 방황, 혼돈을 만나는 일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예전에 어느 30대 라디오 DJ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가 자긴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거부하겠단다. 이유는 20대의 방황을 다시 거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알 거 알고, 뭔가 조금이나마 보이는 지금 이 시기가 좋다는 거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살아갈수록 관계망이 복잡해져서 혼돈과 방황은 가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 1부에서  '나'는 갓 스무 살된 청년으로 어떤 에너지에 이끌려 절로 향한다. 출가하기 전, 영화 한 편 때려주시는 것을 보면 이 책이 그렇게 무겁고 어렵기만 한 책이 아님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것만이 아니라 초반 이야기 중에 '나'의 수행을 더디고 헷갈리게 하는 두 상반된 스님의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중노릇은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마지막 오입이라며 시종일관 거친 입담을 쏟아내는 태봉스님과 무식하면 중노릇 제대로 못 한다며 대학교육을 권하는 석정 스님의 모습은 지금 우리 현실 아주 가까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중생의 두 모습이다. 어느 정도 경험해 보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을 굳이 두 종류로 나누어보면 뒤늦게 공부에 열정(욕심)을 부리거나 반대로 "인생 뭐 있어?" "별다른 사람 있나?" 하면서 말장난을 즐기고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경향이 있다. 뭔지는 알겠는데 사람이 좀 깊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거나.

 

이후에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절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수행자의 모습은 오늘날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종교를 떠나서 삶(사랑)과 수행 사이에서 번민하는 동민 스님의 모습이 짠하다. 우리는 숲속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동민 스님의 노트 한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오직 전체가 존재할 뿐이라는... 


친구여!

우리는 오랫동안 꿈속에 취해 있었지.

거울에 비쳐진 영상을 나라고 착각하며 참된 나를 망각한 채

거울에 비쳐진 그림자에 취해 있었지.

 

우주에는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모순이라는 생각이 존재할 뿐.

모순이야말로 진리의 왕 중의 왕이라네.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오직 전체가 존재할 뿐. - 동민 스님 유품 노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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