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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서유기 - 중국 역사학자가 파헤친 1400여 년 전 진짜 서유기!
첸원중 지음, 임홍빈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현장 서유기>
중국 역사학자가 파헤친 1400여 년 전 진짜 서유기!
첸원중 지음 / 임홍빈 옮김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주 캐릭터들.
사오정/손오공/저팔계/삼장법사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는 우리나라에서 소설 《서유기》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여기서 삼장법사(=현장스님)는 다른 유별난 캐릭터에 묻혀서 대단히 우유부단하고 어수룩한 인물로 기억된다.
지난 1999년, 만 4년의 작업 끝에 소설 《서유기》 완역을 마친 이 책의 옮긴이(임홍빈)는 소설 속에서 몇 안 되는 실존인물 가운데 삼장법사의 '못난 이미지'가 의아하게 생각되던 차에 소설이 쓰여진 시대와 정치사회적 배경, 작가 오승은의 일생을 살펴봄으로써 궁금증이 풀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 현장스님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것은 2007년 11월에 이르러 《대당 서역기大唐 西域記》, 《대자은사 삼장법사전大慈恩寺 三藏法師傳》, 그리고 첸원중 교수의 바로 이 책을 손에 넣으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역사속 인물 현장스님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중국 푸단 대학 첸원중 교수가 중국 CCTV 학술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강의한 '현장 서유기' 36편을 책으로 낸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EBS에서 꽤 신경써서 제작한 괜찮은 교양프로그램 하나를 책으로 냈다고 보면 되겠다. 제1강 현장법사의 출신 내력에서부터 이 책의 주 내용이 되는 서역 천축(인도)으로의 험난한 구법여행 과정과 (제32강) 당나라에 돌아와서 구법여행과 맞먹는 기간 동안 번역 작업에 몰두하다가 (제36강) 예순 다섯의 나이에 원적하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가능한 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엮어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적 사실이라 함은 크게 두 가지, 《대당 서역기》와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을 말한다. 《대당 서역기》는 "현장스님이 귀국한 이후 당 태종의 명을 받들어 쓴 것입니다."(570쪽) "이 책은 현장스님이 구술하고, 변기가 받아 적은 것으로,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공동으로 완성한 걸작입니다."(617쪽)라고 적고 있다. 비교적 공적이며 객관적인 여행견문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장스님 나이 53세에 이 작업을 함께한 애제자 변기라는 사람이 황실의 공주와 사통한 죄로 고작 30세의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충격적인 일화와 얽혀 있다. 다른 하나,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은 "현장스님이 가까운 제자들에게 구술해준 것으로서"(235쪽) 제자들이 쓴 스승의 전기라고 할 수 있으며 앞의 여행기보다 좀 더 풍부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중국의 알려진 고전이라든지 일반인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여러 불교서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전까지 소설 속에서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당나라 스님의 실제 모습을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고도 너무 가볍지 않게 전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고와 준비가 필요했는지 짐작만 해볼 따름이다. 방대한 분량(총 668쪽)에서 예상해 볼 수 있듯이 현장스님의 우여곡절 구도求道여정 말고도 참으로 다양한 재미를 만나볼 수 있는 모험담 그 이상 가는 아주 멋진 책이다.
스님이 만났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 그 중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도와 둘가 천신을 숭배하는 성력파 신도와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역시 세상에 종교는 많고 광신도는 무섭다.
스님이 거처가는 곳곳의 정치, 경제, 문화, 풍습, 지리, 전설, 복식....
초기 불교의 탄생도 엿볼 수 있었다.
"붓다가 불교를 창립하던 초기에 반대파가 있었다는 사실, 그들의 수령은 데바다타였으며, 데바다타의 신도들은 1000여 년 동안 인도에 존재했고, 그 인원수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줍니다." (347쪽)
이래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이름도 괴상한 종교 지도자들이 많은가 싶다. 혹시나 주류 종교를 누르고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무엇보다도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는 굽히지 않는 소신과 학문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한 목적 하나로 그동안의 지위를 버리고 목숨을 걸고 사막을 횡단한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냐 말이다. 얼마만큼 왔다가 힘들어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이 있다면 이 책 8강 "절망의 모래바다, 막하연적"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여행 내내 숱한 가르침을 받고도 돌아왔을 때 번역작업에 몰두하면서 건강하게 지식을 추구하는 모습은 오늘날 공부에 열을 올리는 수많은 대학생과 교수가 꼭 배워야 할 점이다.
"현장스님이 보통사람을 초월한 왕성한 지식 추구자였으며, 날란다 사원과 계현법사에 대해 존중은 하되 맹종하지 않음을 충분히 설명해줍니다."(416쪽)
조금 다른 면으로, 중국이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나라이주의拿來主義(루쉰 선생이 언급한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과거의 문화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선택적으로 수용, 계승하는 방식)'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이상 현장스님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최고의 유학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