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청소년심리 - 자녀의 반란을 잠재우고 평화협정 맺기
조아미 지음 / 이너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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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런 내용을 접해본 적이 있다. 우리가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알고 있는 청소년기는 원래부터 그러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애 처음 자신을 인식하고 외부 세계를 하나씩 받아들이는 시기에 그런저런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는... 나의 경험담에 비추어 보자면, 사람이라는 동물은 항상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청소년 시기에 우리 엄마의 다소 과격한 면이나 첫 직장에서 만난 나의 직속 상사의 무지함 - 자기가 처음부터 주임으로 태어난 것처럼 행동하셨다 - 앞에서는 그저 어벙해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 시대의 부모나 상사들은 급변하는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는 98% 부족한 현실에 직면했다.


"최근 10여 년 동안의 변화를 보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어떤 세상이 올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부모 세대는 과거처럼 자신의 자녀들이 미래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모 세대는 이 점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이를 간과하고 부모 세대가 했던 대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자녀 세대에게는 재앙일 수 있다." (35-36쪽)

이 책의 저자인 조아미 님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로 모르긴 하지만 이 분야의 이론은 모르는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그렇듯 이론과 실전은 천양지차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기업 경영이라면 이론대로 꾸역꾸역 맞추고 말았을 테지만 자녀 교육은 그러지 못하는지라 저자가 쓴 '들어가는 말'에는 어떤 절절함이 묻어난다.

"이 책은 교육심리를 전공하고 청소년지도학과에서 청소년심리와 문제를 강의하지만 이론적으로만 준비되었던 엄마의 실수담이다. ... 한때는 엄마의 입장에서만 아이를 대해서 아이가 상처받고 힘든 날을 보내게 했지만 지금은 개과천선한 엄마의 이야기다." ('들어가는 말' 가운데)

대개의 엄마는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만 키우려고 하지 같이 자라고 배우려는 노력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는 것에 비한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담이자 실수담은 이론과 자세를 겸비한 엄마의 이야기라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될 듯싶다.  

내용 중에서 참 공감이 되는 가슴 아픈 사연 하나는, 엄마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아이는 어렸을 때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사춘기가 되면서 다시 엄마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었다고 한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는 엄마의 복사판이다. 그걸 아셨으면 좋겠다. 청소년기의 자녀가 아직 덜 성숙했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편협하게 말하거나 행동했을 때 부모가 그것을 참지 못하고 화살을 날렸을 때 아이의 행동은 불 보듯 뻔하다.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이기적이고 기대에 못 미치고 나이 든 부모를 봉양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부모 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 들어 부쩍 우리 엄마의 삶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나는 이 책을 굉장히 편안하게 읽었다. 거의 평범한 부모라면 그렇게 해 주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네가 청소년 자녀를 키워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라고 하겠지만 어느덧 이상한 무게감으로 성큼 다가오는 우리 세대 부모님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발 자신의 삶을 좀! 사시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엄마들이 대개 자존심이 강한 편이어서 자식이 속 끓인다고 혼자 애태우고 싸우고 난리도 아닐 텐데 이런 책의 도움을 얻어서 조금은 평온한 바다를 항해하며 사이좋은 부모와 자녀의 청소년 시기를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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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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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2·3』, 『알고 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 , 『무서운 세계사의 미궁』 등으로 우리나라에 그 이름을 알린 기류 미사오의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에서는 '인간의 잔인한 욕망에 관한 에피소드 172(부제)'가지를 소개한다. 나열한 책제목들은 보기만 해도 비가 내리고 음습함까지 더하는 날씨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서 '기류 미사오'라는 분은 기괴한 취향을 가진 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니다 다를까 본론에 들어가기 전, 저자의 말 처음 세 줄은 책을 읽기 전 독자에게 제대로 된 예고편을 선사한다.


"나는 기묘한 잔혹함을 좋아한다.

살점을 도려낸다든지 피부를 벗긴다든지, 그런 생생한 잔혹함이 사람을 매료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저자의 말' 가운데


또한 조금 놀라운 사실은 '기류 미사오'라는 분은 실제 없고, 두 여성 작가의 공동 필명이라고 하는데 한 분은 이미 2003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며 나머지 한 분이 지금도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모아서 책을 낸다는 것 같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중의 하나는 실제의 잔인한 사건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제 사건을 부풀리거나 왜곡하거나 덧붙여서 '어떻다더라' 하는 식의 말을 퍼뜨려서 소문의 당사자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최근 악플 때문에 연예인들이 당하는 고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야 당연히 어떤 사실 자료에 근거해서 구성한 것이겠고 이미 저세상으로 간 분들의 이야기만 담았기 때문에 절대 안심하고 볼 수 있지만 약간 '어떻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도 있는 것 같고 유명인의 후일담까지 섞어서 일부(?) 기괴한 취향을 지닌 독자를 적절히 자극하는 방식으로 구성하여 장장 340쪽에 이르는 내용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한두 쪽, 길어봐야 세 쪽에 걸쳐 소개되고 사진이나 그림까지 글을 십분 살려주니 어지간한 독자라면 놀람, 놀람, 놀람....의 연속일 것이다. 긴 설명이 없는 짧고 연속적인 172가지 잔인한 이야기는 사람을 무디게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서 이런 류의 책은 아주 가끔 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영화 '향수'에서 주인공 그루누이가 여인의 향기를 얻기 위해서 여인의 몸 어딘가를 석고 뜨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책에서는 현대 미국에서 자칭 '석고주조가'라고 하며 남성의 아래쪽을 석고 뜨는 용감한 여성들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나 책이나 인간의 성적 욕망과 잔혹함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래도 인간이 인간에게 취하는 잔인한 욕망을 다루므로 밥 먹으면서 보는 것만은 절대 비추천하는 바이다. 에피소드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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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중년에게 말을 걸다
서정희 지음 / 마음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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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中年]
1 마흔 살 안팎의 나이.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2 사람의 일생에서 중기, 곧 장년·중년의 시절을 이르는 말.


 
중년. 아직은 나에게 낯설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 한창 젊은 시절 밖으로 나돌아다닐 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사회에서 만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을 떠올려보면 내가 지금까지 중년을 얼마나 무시하고 살았는지 알게 된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도 잠깐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년은 왠지 베일에 싸인 것 같고 얼마간 우울증을 겪는 처진 사람들의 집합 같다는 느낌이다. 이것은 물론 언제나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경제난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중년의 이미지가 더하여져서 더욱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리라. 이 책에서 저자가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건 '한국의 중년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라는 말이다. 왜 그럴까?

지금 미처 준비하지도 못한 채 중년에 닥친 사람, 주변에서 힘들어하는 중년을 바라보며 더 고달파하는 사람, 곧 중년을 맞이할 사람... 여러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쩌든 누구나 중년을 거쳐 갈 것이고 중년과 함께 행복한 삶을 나누고 싶을 것이다. 그러자면 중년의 이야기(속마음)를 들어보아야 한다. 이 책이 꼭 그런 책이다. 책 제목만 보자면 일반 중년의 삶을 두루 엿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저자 서정희(심리학과 및 심리학 박사과정 졸업) 님이 자신의 경험담을 두런두런 들려주는 식이다.  첫 장 처음 이야기가 옛 친구인 강 교수의 강의 청탁 전화를 받고 우연히 어린 시절을 보낸 안양이란 곳으로 가게 되어 감회에 젖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떤 사전 설명도 없이 두 작가-김영실과 선우휘의 이야기를 하고 작품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문학 쪽에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공감이 잘 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지는 중년의 삶 이야기는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의 글이어서 중년의 삶 전반을 다룬다는 느낌이 들었고 표지에 그려진 어느 한적한 곳, 흔들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우리의 중년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게 했다. 아마도 이런 시간 자체가 쉼표이자 독서가 가져다준 여유로움일 것이다. 


"꼬부림은 나를 움츠리는 비겁함이 아니라 조금 쉬면서 세상과 통하는 문을 여는 쉼표와 같다.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숨고르기다. 그래서 꼬부림은 더 큰 도전을 위한 예비 동작이 된다.

쉼표를 보통 콤마라고 표현한다. 콤마는 아이가 엄마의 치마폭으로 숨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다가 이 모양이 나오면 한 호흡을 쉰다. 액수가 많은 돈을 계산할 때도 천 단위로 찍힌 콤마를 보면서 한숨 돌린다. 콤마는 '작은 나'가 '큰 나'로 변신하는 정거장이다.

젊게 산다는 것이 마냥 앞만 보고 달린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 배 속에서 자라는 태아처럼 새로운 탄생을 위해 첫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의 씨앗을 찾는 꼬부림이다." (48-49쪽)



현실에서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께 쉼표를 권해 드리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실 것만 같지만 경험담으로는 그분들이 부디 더 큰 도약을 위한 제대로 된 쉼표를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도 저도 아닌, 비생산적인·소모적인 걱정은 마치 몸에 해로운 매연처럼 젊은이들을 가슴 답답하게 한다. 책읽기를 마치며 "중년의 도약을 위하여~!" 소리 없이 응원을 보내본다.


"40대는 서른에서 10년이 지난 나이다. 그러니 제 눈으로 세상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나이로 치면 열 살에 불과하다. 열 살의 나이는 앞으로 달리려는 욕망이 넘쳐 주변을 바라보기 어려운 나이다. 어느 정도 실력과 자신감이 붙었으니 유혹도 많다. 그래서 공자는 불혹이라는 말로 감정 통제를 권했다. 그 뜻은 '쉼표'를 즐기며 새로운 '느낌표'를 열라는 것이다." -이 책 '에필로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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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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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벌레
   ①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버러지·충(蟲).  예-벌레만도 못하다
   ②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일 벌레, 책 벌레

'벌레'라고 하면 대개 작고 하찮은 것을 떠올린다. 비유적으로 쓰이는 공부 벌레니 일 벌레니 하는 말들도 어쩐지 비꼬는 말로 들리는 건 비단 나뿐일까. 이렇게 작고 하찮으며 남들에게 비아냥거리는 말까지 들을 수 있는 책벌레를 자처한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 책은 책벌레를 자처한 혹은 후대 사람들이 책벌레라고 칭한 사람들의 짤막짤막한 이야기 모음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연, 글쓰기와 독서 예찬글이 소개되는지 이 책을 '책벌레들의 잔치'나 '책벌레들의 전당'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책제목에서 보자면, 책벌레들의 '동서고금'인데 동東과 서西 중에 동東에 치우쳐 소개한 것 같고, 고古와 금今 중에 옛것에 치우쳐 소개한 것 같다. 그리하여 좀 전 문장에서처럼 한글 오른쪽에 그에 해당하는 한자를 써 붙인 게 수두룩하며 우리 옛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책벌레라는 말도 그냥 두지 않는다. 초반에 "책벌레를 두어자蠹魚子라 했다(18쪽)"라고 한 이후, 책벌레 대신 종종 두어자라 이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살펴본 책 앞날개에 저자 소개를 보고 그 예스러움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 김삼웅 님은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하셨단다. 

 
개인적으로 짤막짤막 끊어지는 글보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이야기 줄기로 이어지는 글을 좋아하고 한자가 섞인 우리 옛 문헌과 그리 친숙한 편이 아니라 정민 선생의 저서 중에도 한시와 고전 인용글에 더해 저자의 글이 섞인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묵혀둔 전적이 있다. 그나마 이 책은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부제)'라 끝까지 읽긴 했지만 한 자리에서 빨리 읽고 접어두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어떤 한 문장만 특별히 와 닿았다고 하기에도 여러 두어자들의 처절함과 절절함이 못내 아쉽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어느 대목 하나쯤에선 히죽거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이며 과거의 난다 긴다하는 두어자들과 마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는 그런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이 책 서문에서도 이야기하듯이 현 시대는 지식인과 학자의 구별이 모호하고 이들 대부분이 이윤추구를 절대적인 가치로 일삼고 있기 때문에 책벌레들의 종횡무진은 진정 이 책 안에서만 그쳐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이 책에서 만난 두어자들의 정신과 가르침이 선명하게 다가옴을 인정해야겠다.


"위나라와 진나라 이래 문사文史에 있어 허위와 왜곡이 횡행한 것을 두고 이른바 '오실五失'이라 규정했다. 즉, 다섯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잘못은 ① 허설虛說 ② 후안厚顔 ③ 가수假手 ④ 자루自淚 ⑤ 일개一槪다.

①은 빈 말, 즉 허설을 함부로 쓰는 사람, ②는 얼굴이 두꺼워서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사람, ③은 가짜와 거짓의 글을 쓰는 사람, ④는 남을 속이고자 거짓 눈물을 흘리는 사람, ⑤는 수많은 개념보다 독선과 독단을 내세우는 사람을 일컫는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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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아름다운 밥상
이경애 지음, 하지권 사진 / 아름다운인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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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웰빙(well-being)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여기서 굳이 '무섭게' 불었다고 한 이유는, 마치 IMF를 기점으로 세대 간의 격차가 몰라보게 벌어진 것처럼 웰빙 바람 전과 후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전까지는 남들이 다 햄버거나 피자를 먹으면 나도 먹어주고 대략 주어지는 대로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웰빙[->참살이] 바람이 한두 차례 매스컴을 타자 몇몇 패스트푸드점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고 아주 어린 아이들도 청국장을 곧잘 먹는다는 얘기까지 듣게 된다. 이만하면 국민 다수가 먹을거리에 대한 의식전환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즈음 월간 《불교와 문화》에 절집 공양간[供養間 : 절에서 음식을 만드는 곳]을 소개하는 기획물을 실었던 모양이고 이 책은 그때 실었던 내용에 더하여 '산사의 아름다운 밥상'을 다시 차려낸 것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절집 공양간은 출입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비교가 적당하지는 않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제 집, 제 방 - 속 깊은 곳을 선뜻 소개해도 좋다고 허락할 사람이 많지 않듯이. 그래서 저자 이경애 님의 취재기겸 여행기 곳곳에는 수고로움이 묻어난다. 특히 이 책 전반에 흐르는 공양간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다. 또 짐작했어야 했듯이 절집 공양간 음식, 그러니까 우리 음식은 정확하게 분량을 재서 만들 수 있는 서양음식과 달라서 비법을 한 번에 전수받을 수 있을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각 장 마무리는 절에서 들려준 밑반찬 만들기 비법을 공개한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고 한다면, (안 봐서 모르겠지만) 월간지에 실었던 글 하나하나의 묶음 방식보다 레시피[recipe : 요리책에 쓰이기에 적합한 상세한 요리 비법]는 부록처럼 뒤에 따로 묶었다면 주부도 아니고 요리전문가도 아닌 일반 독자가 공양간 분위기를 엿보는 데 좀더 편안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해지고 싶고 오래 살고 싶어한다. 특히 노년을 앞둔 어떤 어르신들은 들리는 얘기로 값비싼 한식 음식점에 가면 몸에 좋다는 나물이고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심정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라 조금 웃고 말았는데 이제 보니 참 우스운 이야기다. 도봉산 원통사의 한 별좌 보살은 겸손의 말로 "좋은 요리란 좋은 재료를 선택해서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게 요리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141쪽)"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가 느낀 점은 산사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참살이에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위와 같은 어르신들뿐만이 아니라 무조건 몸에 좋다는 음식만 많이 먹고 보자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소박한 음식 사진 한 장에 산사의 깊디 깊은 적요와 산사 사람들의 단정한 몸가짐, 손수 재료를 가꾸고 만들어 먹는 정성, 곡식 한 톨에 담긴 노고도 잊지 않고 기도하는 경건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제는 우리 음식 문화에도 식탐을 넘어서 품위를 더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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