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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벌레
①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버러지·충(蟲). 예-벌레만도 못하다
②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일 벌레, 책 벌레
'벌레'라고 하면 대개 작고 하찮은 것을 떠올린다. 비유적으로 쓰이는 공부 벌레니 일 벌레니 하는 말들도 어쩐지 비꼬는 말로 들리는 건 비단 나뿐일까. 이렇게 작고 하찮으며 남들에게 비아냥거리는 말까지 들을 수 있는 책벌레를 자처한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 책은 책벌레를 자처한 혹은 후대 사람들이 책벌레라고 칭한 사람들의 짤막짤막한 이야기 모음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연, 글쓰기와 독서 예찬글이 소개되는지 이 책을 '책벌레들의 잔치'나 '책벌레들의 전당'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책제목에서 보자면, 책벌레들의 '동서고금'인데 동東과 서西 중에 동東에 치우쳐 소개한 것 같고, 고古와 금今 중에 옛것에 치우쳐 소개한 것 같다. 그리하여 좀 전 문장에서처럼 한글 오른쪽에 그에 해당하는 한자를 써 붙인 게 수두룩하며 우리 옛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책벌레라는 말도 그냥 두지 않는다. 초반에 "책벌레를 두어자蠹魚子라 했다(18쪽)"라고 한 이후, 책벌레 대신 종종 두어자라 이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살펴본 책 앞날개에 저자 소개를 보고 그 예스러움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 김삼웅 님은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하셨단다.
개인적으로 짤막짤막 끊어지는 글보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이야기 줄기로 이어지는 글을 좋아하고 한자가 섞인 우리 옛 문헌과 그리 친숙한 편이 아니라 정민 선생의 저서 중에도 한시와 고전 인용글에 더해 저자의 글이 섞인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묵혀둔 전적이 있다. 그나마 이 책은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부제)'라 끝까지 읽긴 했지만 한 자리에서 빨리 읽고 접어두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어떤 한 문장만 특별히 와 닿았다고 하기에도 여러 두어자들의 처절함과 절절함이 못내 아쉽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어느 대목 하나쯤에선 히죽거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이며 과거의 난다 긴다하는 두어자들과 마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는 그런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이 책 서문에서도 이야기하듯이 현 시대는 지식인과 학자의 구별이 모호하고 이들 대부분이 이윤추구를 절대적인 가치로 일삼고 있기 때문에 책벌레들의 종횡무진은 진정 이 책 안에서만 그쳐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이 책에서 만난 두어자들의 정신과 가르침이 선명하게 다가옴을 인정해야겠다.
"위나라와 진나라 이래 문사文史에 있어 허위와 왜곡이 횡행한 것을 두고 이른바 '오실五失'이라 규정했다. 즉, 다섯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잘못은 ① 허설虛說 ② 후안厚顔 ③ 가수假手 ④ 자루自淚 ⑤ 일개一槪다.
①은 빈 말, 즉 허설을 함부로 쓰는 사람, ②는 얼굴이 두꺼워서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사람, ③은 가짜와 거짓의 글을 쓰는 사람, ④는 남을 속이고자 거짓 눈물을 흘리는 사람, ⑤는 수많은 개념보다 독선과 독단을 내세우는 사람을 일컫는다." (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