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라이프 - 한 정신과 의사가 40년을 탐구한 사후세계,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
브루스 그레이슨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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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임사체험연구협회에서 공인한 연구주제인 NDE(Near Death Experience)를 근사체험이 아닌 임사체험으로 번역한 이유는 추측컨데, 죽음 가까이에서 겪은 주변체험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이며 주체적인 경험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번역일 것이다.

저자는 40여년간 1000여명의 임사체험자를 연구한 과학자이며 정신의학과 의사다. 인턴 초기에 경험했던 임사체험자의 놀라운 이야기는 평생의 연구주제로, 그를 임사체험연구의 선구적인 연구자로 만들었다.

사고, 자살, 질병으로 인해 심장이 멎고 뇌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 돌아온 환자들은 대부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체험은 밝고 길다란 터널, 완전한 평화와 안락, 시공간을 초월한 환한 빛을 본것이며 보다 개별적인 체험중에는 고인과의 만남, 안내자로 인식한 신의 존재, 혹은 자기몸에서 빠져나오는 유체이탈등의 초자연적인 경험등이었다. 정통과학자인 저자는 연구 초반에 이러한 환각 혹은 환상의 이유를 약물, 특정 뇌조직의 이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뇌의 기능이 완전히 멈춘 상태였던 환자의 임사체험은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임사체험을 뇌의 문제로 국한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신이 뇌의 작용, 혹은 뇌가 멈추면 정신도 없어진다는 의견은 이제 더 이상 과학적 정설이 아니다. 정신의학자 삼분의 이가 뇌와 정신은 별개로 생각한다는 비공식통계도 있다. 또한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임사체험을 경험할 확률은 20%에 불구하고 그들의 진술을 모두 진실이라고 믿기도 어렵다. 개인적 체험을 과학적 도구로 객관화 하기에 많은 헛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자의 대부분은 체험이후, 삶에 대한 애착과 진정성은 더욱 깊고 진해졌다. 임사체험은 더 이상 환각도 환상도 아닌 명료한 인생의 큰 경험이 되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한 체험자는 이렇게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내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더 이상 삶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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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논어에서 길을 찾다
한인수 지음 / 좋은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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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학교수나 전문연구자가 아니다. 초야로 들어가 공부하는 삶을 살고자 무진 애을 쓰다 마침내 꿈을 이룬 필부다. 지금은 논어의 호학을 실천하며 결과물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논어 원문의 해설과 곁들여 그 당시 배경지식을 풀어내어 이해의 폭을 넓혔다. 지금의 현실정치와 사회현상에 빗댄 신랄한 비판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각 챕터가 비교적 짧아서 조용한 곳에서 낭독후 휴대폰에 녹음해 봤다. 말소리로 뱉어내는 낭독의 느낌도 새롭지만 저녁에 공원을 산책하며 이어폰을 통해 듣는 논어의 해설은 적요하며 감흥이 있었다. 옛사람들은 낭독과 암기로 책을 삼켰다. 몸으로 익혀서 천천히 소화시키는 것이 그 당시의 공부였다. 낭독과 녹음은 아직도 유효한 학습방법이다. 비록 한자 원문의 맛은 잘 모르겠지만 해설의 지혜만으로도 여러번 곱씹을 수 있어서 좋다.

시골에 묻힌 삶이라고 현실을 아예 잊은 것은 아니다. 현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며 오히려 논어가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한 공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장을 할애했다. 저자는 고전의 말을 본보기 삼아 부단히 힘을 쏟고 있을 뿐이며 가끔은 군자가 되는 길에 발을 디뎌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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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떡 - 백시종 연작장편소설
백시종 지음 / 문예바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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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할머니는 옛날에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했다. 쓱쓱 비벼서 나물밥을 먹었고 곰삭은 된장에 찍어 먹던 고추가 어쩜 그리 맛났는 지 모른다고 했다. 동네 아이들과 같이 먹었고 시집와서는 부뚜막에 서서 먹었다. 그당시 거칠고 흔해 빠진 먹거리는 그 시절을 박제한 아련한 추억이 됐다. 입맛을 다시던 늙은 입술은 연신 맛있었어라고 말하지만 막상 침은 고이지 않는다.

여든을 넘긴 노작가는 음식에 기대어 옛날을 회상하기로 한다. 중편 분량 소설은 음식소재가 이어져 연작의 모양을 이뤘다. 한국전쟁 전후 이념대립으로 분열된 나라, 군사정권의 권위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국민은 힘없고 배고픈 존재일뿐이었다. 권리와 의무가 유예된 살벌한 시대에도 먹어야 살고, 살기 위해 먹었다. 어머니가 혹은 누나가, 친구 엄마가 밥을 주고 반찬을 덜어주며 위로를 주고 받았다. 사람의 미각과 후각은 오래 간다. 어릴 적 먹고 맡았던 음식은 장기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언뜻 다시금 접하게 되면 그와 연관된 장면과 추억이 줄줄이 달려 나오기 마련이다. 노작가는 주린 배를 채웠던 그 시절이 부끄럽다. 너무 가난해서 배고팠고 그 가난 때문에 먹지 못한 것과 먹은 것들이 생각나서 아쉬웠다. 지금 풍요의 시대에 되돌아본 그때의 먹거리와 사람들은 현재 그를 이룬 피와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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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어원의 일본어 단어 - 2023 개정증보판
한창화 지음 / 좋은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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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단어를 무언가와 연관시켜 머리속에 집어 넣는 방법은 적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올리는 방법중에 하나다. 그중에서 모국어와 뿌리가 닿은 외국어 단어는 더욱 그렇다. 오래전 베트남어를 공부할 일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현지에 체류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현지어를 빨리 익혀야만 했다. 교재를 공부하다 보니 한자문화권인 베트남어는 한국어와 비슷한 발음이 많았다. 회화 위주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성조와 어순이 까다로왔지만 단어를 외우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일본어는 고대에 도래인의 존재라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언어의 유사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후 문화교류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으니 가장 가까운 외국어임이 틀림없다. 이 책은 단어의 변천사를 다양한 용례를 들어 설명한 것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전 교양일본어로 잠깐 접한터라 먼저 가물가물해진 히라가나를 먼저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단어를 어원을 찾아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 장기기억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해보이지만 실제 회화나 독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일 것 같다. 역시나 귀와 입에 붙을 정도로 부단한 반복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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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지나가게 하라 -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의 지혜
박영규 지음 / 청림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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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전 해설을 빙자한 은퇴자의 에세이다. 빙자의 사전적 의미가 남의 힘을 빌려서 의지한다는 것이니, 빌려온 대상은 노자 혹은 도덕경의 내용이 될 것이다. 도덕경의 81가지 문장을 추려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에 주된 출처로 삼았다. 공교롭게도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를 읽던 중에 펼쳐든 책이라 비교하며 보는 맛이 있다. 전자는 노자 연구자의 에세이고 후자는 철학자의 비판적 해설서이기에 냉온탕을 번갈아 오가는 온도차이를 느꼈다.

행복한 은퇴자의 길을 매일 걷고 싶은 저자는 단순하고, 간소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학자로서, 교수로서, 정당인으로서 성취한 명예와 성공은 모두 지나갔다. 그저 지나가게 하라는 정언명령은 그래서 더욱 소중해진다. 젊을 때 갈고 닦았던 무위와 자족의 학문적 지식은 비로소 은퇴후 자연인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쓰임새가 확실해졌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간소한 인간관계로,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삶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노자의 활동무대였던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복잡다단한 인생의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고자 했던 철인들은 후세에도 끊임없이 소환되어 말랑한 현재의 에세이에서도 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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