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인생을 바꾼 명저 40
최경수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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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크기였습니다. 핸드북 사이즈라 한 손에 쏙 들어오는데, 강렬한 빨간 표지 위에서 머스크가 책을 든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사진 한 장이 이렇게 많은 말을 대신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로켓을 쥔 것도, 자동차 키를 쥔 것도 아니고 책을 쥔 모습이라니. 그 한 컷만으로도 이 사람의 머릿속을 한 발짝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최경수 작가의 <일론 머스크의 인생을 바꾼 명저 40>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머스크가 직접 인용하거나 추천한 책 마흔 권을 골라, 그 책에서 무엇을 가져갔고 그것이 어떻게 사업으로 이어졌는지를 짚어 갑니다. 흔한 추천 도서 목록과 다른 점은, 각 칼럼이 머스크의 실제 발언과 결정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거예요. 막연히 "이런 책을 봤다더라"가 아니라 "이 문장이 저 결정이 됐다"는 식이라, 읽는 내내 그의 판단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이 듭니다.

저자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IT 전문지 기자와 출판 기획자를 거친 사람입니다. 그 이력 덕분인지 복잡한 경영 이론이나 인문학 개념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요. 칼럼 하나가 네댓 쪽 정도라 부담도 적고요.


책의 문을 여는 건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입니다. 열다섯 살의 머스크가 따돌림과 부모의 이혼 속에서 책으로 도망치듯 빠져들던 시절, 그의 손에 들어온 소설이라고 하죠. 소설 속 거대한 컴퓨터는 오랜 계산 끝에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답"으로 단 하나의 숫자를 내놓습니다. 42. 그런데 정작 아무도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릅니다. 머스크는 바로 그 대목에서 멈췄다고 해요. 2013년 TED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소설이 가르쳐준 것은, 답을 찾는 것보다 올바른 질문을 찾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깨달음이 그의 사고방식 전체를 바꿔 놓았다는 게 이 칼럼의 요지입니다. 로켓을 두고도 그는 "어떻게 더 강한 로켓을 만들까"를 묻지 않았어요. "어떻게 더 싸게 반복 발사할까"로 질문을 바꾸는 순간, 우주는 막연한 꿈에서 풀어야 할 공학 문제로 내려옵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였죠. "왜 전기차는 비싸고 느린가"가 아니라 "배터리 원가를 물질 단위로 계산하면 얼마인가"를 먼저 물었습니다. 저자는 이 태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질문이 바뀌면 비용과 시간과 인력의 배치가 함께 바뀌고, 그 변화가 곧 결정이 된다고요. 일하다 보면 답을 빨리 내놓으라는 압박은 많아도, 지금 옳은 질문을 붙잡고 있는지 되묻는 시간은 좀처럼 갖기 어렵잖아요. 첫 칼럼이 오래 남은 이유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편은 결이 좀 더 깊습니다. 하라리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비결을 '실재하지 않는 것을 함께 믿는 능력'에서 찾습니다. 국가, 돈, 인권, 회사. 물리적으로는 어디에도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믿을 때 현실의 힘을 갖는 것들이죠. 저자는 이 '상상의 질서'를 머스크의 사업과 나란히 놓습니다. 화성 이주, 전기차 전환, AI 민주화. 이것들은 지금의 사실이 아니라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고, 충분히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믿을 때 투자와 인재가 몰려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현실이 된다는 겁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가치도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짚는 대목이 설득력 있었어요.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하라리는 인류가 만든 허구의 구조를 분석하는 관찰자이고, 머스크는 새로운 허구를 만드는 설계자라는 거예요. 한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설명하고, 다른 사람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밀어붙입니다. 2023년 AI 개발 일시정지를 촉구하는 서한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명했지만, 위험을 경계한다는 한 지점에서만 잠시 같은 방향을 봤을 뿐 나머지는 정반대를 향한다고 하죠. 하라리가 던지는 가장 불안한 질문,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기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라면 끝내 피할 수 없는 물음일 겁니다.


씨앗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힌 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편에서였습니다. 수학자 셀던은 통계 기법으로 제국의 붕괴를 예측하고, 다가올 암흑기를 줄이기 위해 은하 끝 행성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모은 파운데이션을 세웁니다. 제국이 무너져도 지식이 살아남으면 문명은 더 빨리 재건될 수 있다는 발상이죠. 책에 따르면 이 논리는 스페이스X의 창립 논리와 정확히 겹칩니다. 지구라는 단일 행성은 결국 단일 실패 지점이라, 다행성 종이 되는 것은 셀던이 먼 행성에 씨앗을 심은 것과 같다는 거예요. 2013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아시모프에게서 "문명은 순환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순환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지금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요. 거창한 화성 이야기가 갑자기 '오늘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현실의 질문으로 바뀌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에 본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편은 분위기가 한층 다릅니다. 기술이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는 한 가지 주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책인데, 저자는 커즈와일과 머스크가 같은 미래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라본다고 정리합니다. 커즈와일은 인간과 AI가 하나로 융합하는 특이점을 축복으로 보고, 머스크는 그것을 생존의 문제로 봅니다. 눈길이 머문 건 커즈와일의 개인사였어요. 아버지를 심장병으로 일찍 잃은 그가 특이점이 오기 전에 죽지 않으려 매일 수많은 영양제를 챙긴다고 합니다. 기술 낙관론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죠. 이 칼럼을 닫는 한 문장이 책 전체를 요약하는 듯합니다. 화성 이주도, AI 설계도, 뉴럴링크도 예측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 커즈와일이 책으로 그린 지도를 머스크는 로켓과 칩과 코드로 현실에 새기고 있다는 것.

네 칼럼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질문을 바꾸고, 그 위에 미래의 이야기를 세우고, 무너질 것에 대비해 씨앗을 심고, 끝내 그 미래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사람. 머스크의 기행과 거친 발언만 보던 입장에서는 의외의 그림일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이 책이 그리는 그는 충동이 아니라 오래 읽고 계산한 끝에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슬그머니 화살이 제 쪽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일터에서 어떤 질문을 붙잡고 있나, 내 판단의 바탕에는 어떤 읽기가 쌓여 있나. 거인의 독서를 구경하다가 결국 제 빈약한 독서를 들여다보게 되는, 조금 뜨끔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거의 모든 칼럼이 '머스크가 옳았다'는 결론으로 수렴하다 보니, 그의 선택이 빚은 그늘이나 실패를 향한 균형 잡힌 시선은 다소 옅게 느껴졌어요. 다만 이 책의 목적이 평전이 아니라 '그의 사고가 어떤 책에서 자라났는가'를 추적하는 데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건 결을 다르게 읽으면 될 일이지 싶습니다.


이 책은 결국 무엇을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의 이야기입니다. 목록을 손에 쥐고 마흔 권을 정복하겠다는 마음으로 펼치면 조금 지칠 수 있어요. 그보다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SF와 물리학과 역사가 어떻게 한 가닥 사고로 엮였는지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훨씬 즐겁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책들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판단으로 모이는 과정을 보고 나면, 평소 책을 대하는 태도부터 조금 달라질 거예요. 새로운 기술의 흐름 앞에서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분이나, 일에서 늘 답만 찾다가 정작 질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분이라면 이 작은 책이 꽤 단단한 자극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본 책인데, 가벼운 부피와 달리 읽고 난 무게는 제법 단단했습니다. 여러 권을 살펴보는 서평 활동 중에도 이렇게 한 사람의 사고 경로를 따라 걷게 만드는 책은 흔치 않았어요.


장마를 앞둔 유월의 끝자락,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읽기에 이만한 책도 없겠다 싶었습니다. 짧은 호흡으로 끊어 읽기 좋고, 한 꼭지를 덮을 때마다 생각할 거리가 남으니까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손바닥만 한 이 책을 곁에 두어 보시길 권합니다.


머스크를 만든 건 천재성이 아니라 독서였고, 이 책은 그 독서가 어떻게 사고와 행동으로 자라났는지를 차분히 따라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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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튀 2026-06-2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왜 깨지는지 이유를 모르겠음
 
니체의 가르침, 단독자로 살아라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정영훈 엮음, 김경수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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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핸드북 사이즈라는 게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어요.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을 책이겠거니 했는데, 노란 바탕 위에 적힌 "남의 기준으로 헛되이 살지 마라"라는 한 줄이 생각보다 오래 남더라고요. 다독여 주는 책이 아니라 멱살을 잡는 책이구나,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니체의 가르침, 단독자로 살아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글에서 100가지 잠언을 뽑아 정영훈이 엮고 김경수가 옮긴 편역서예요. 요즘은 위버멘쉬, 그러니까 초인이라는 개념이 많이 회자되지만 이 책이 붙잡는 건 좀 더 손에 잡히는 쪽입니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기대지 않고 자기 판단으로 홀로 서는 사람, 책은 그를 '단독자'라 부릅니다. 초인이 닿기 어려운 이상이라면 단독자는 오늘 당장 고를 수 있는 태도라는 거예요. 그 차이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었어요.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정신의 세 단계, 낙타와 사자와 아이를 빌려와 거부에서 단련, 설계, 집행, 완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깔아놓았어요. 첫 장부터 분위기가 매섭습니다. 무리에 숨는 것이 안전이 아니라 인생의 결정권을 넘기는 패배라고 못 박는데, 군중이 뛰어난 사람을 끌어내리는 동력을 질투로 지목하고 그 질투가 하향 평준화를 선한 가치로 포장한다는 대목에서는 등이 좀 서늘해졌어요. 회사 생활을 길게 해 온 사람이라면 이 구절 앞에서 떠오르는 얼굴이나 장면이 한둘은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과 가장 가깝게 붙어 있는 건 2장이에요. 여기서 책은 고독을 외로움이나 고립이 아니라 자립의 기술로 다시 정의합니다. "자생력은 고난이라는 거친 땅에서 자라나는 근육이다"라는 문장이 특히 그랬어요. 의존을 끊으라는 말은 흔하지만, 그걸 다리가 가늘어진다거나 지지대가 치워지면 곧장 쓰러진다는 식으로 몸의 감각으로 옮겨놓으니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기대는 일이 편안함을 주는 대신 무엇을 가져가는지를, 이 책은 에두르지 않고 보여줍니다.


날이 가장 선 곳은 감정을 다루는 4장이었어요. 분노와 후회, 죄책감을 정면으로 겨냥하는데, 죄책감을 두고 "밖으로 뻗어 나가지 못한 에너지가 내면을 공격하는 신호"라고 풀어낸 해석에서는 읽던 손을 잠깐 멈췄습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자기계발서와는 분명히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책이에요. 다만 이 장은 감정을 거의 제거 대상으로만 다루는 인상도 있었어요. "감정은 사실을 왜곡하는 장막에 불과하다"는 단언은 시원하긴 한데, 니체가 본래 정념을 없애기보다 다스려 쓰는 쪽에 무게를 두었던 걸 떠올리면 조금 좁게 정리된 느낌이 듭니다. 같은 책 안에 "감정은 주인이 아니라 땔감이다"라는 꼭지가 따로 있는 걸 보면, 100개를 짧고 강하게 끊어 쓰는 형식이 치르는 대가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읽으면서 걸린 점도 적어둘게요. 잠언이 하나하나 세긴 한데, 뒤로 갈수록 무리와 의존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주제가 거듭 돌아옵니다. 7장 끝자락의 "고립을 두려워하는 것은 삶의 주도권을 무지한 타인에게 헌납하는 것이다" 같은 대목은 사실 1장에서 이미 만난 이야기예요. 다만 이걸 약점으로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은 자리를 여러 각도에서 두드리는 방식이라 하나의 태도가 또렷하게 박히는 효과는 분명 있었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보다, 손 닿는 곳에 두고 그날 눈에 들어오는 꼭지를 한둘 펼쳐 읽는 편이 이 책과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니체를 학문적으로 깊이 파고들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한 권이 다소 헐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원문의 맥락을 잘라내고 메시지만 벼린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NS와 타인의 평가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출렁이는 사람, 오래 다닌 조직 안에서 어느 순간 내 판단이 아니라 분위기로 결정을 내리고 있더라는 자각이 든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런 이에게 이 책은 친절한 안내서가 아니라 차가운 거울에 가까워요. 다정하게 굴지는 않지만, 오래 외면해 온 질문을 정확히 가리킵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아 든 책인데, 가볍게 시작했다가 메모가 늘어난 드문 경우였어요.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들 사이에 한 번씩 이렇게 정신을 곧추세우는 책이 끼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편한 말만 듣다 보면 정작 들어야 할 말을 놓치기 쉬우니까요.


장마가 멀지 않은 6월 끝자락, 눅눅하고 더운 공기 속에서 이런 책을 읽는 건 의외로 어울려요. 무더위가 사람을 자꾸 늘어지게 만드는 계절에, 등을 한 번 곧게 펴게 만든 한 권이었습니다.


다독임 대신 질문을 건네는 책. 타인의 기준에 지친 사람의 등을 서늘하게 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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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의 돈은 데이터센터로 흐른다 - 60분 만에 끝내는 AI 데이터센터 투자지도
김현진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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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천문학적인 숫자부터 봅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이 네 회사가 2025년 한 해에만 AI 인프라에 쏟아붓는 돈이 우리 돈으로 1,000조 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어지간한 나라의 1년 경제 규모에 맞먹는 액수죠. 그런데 정작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왜 난데없이 변압기 회사 주가가 들썩이는지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자료는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김현진 작가의 <주식시장의 돈은 데이터센터로 흐른다>는 바로 그 빈자리를 겨냥합니다.


작가는 경제주간지에서 오래 취재기자로 일하며 산업과 투자 칼럼을 써온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복잡한 공급망 이야기를 기자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볍다는 것이었어요. 핸드북 사이즈라 가방 안쪽에 쏙 들어가고 짬짬이 꺼내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60분 만에 끝내는'이라는 부제도 빈말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출발점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AI는 소프트웨어 혁명이 아니라 거대한 공장을 짓는 싸움이라는 것. 챗GPT 사용자가 늘면 오픈AI는 서버를 더 사야 하고, 서버를 더 사려면 데이터센터를 지어야 하고,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땅과 전기와 냉각 설비가 필요해집니다. 이 사슬을 따라가다 보면 AI 경쟁의 실체가 알고리즘이 아니라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는 싸움이라는 작가의 명제가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1장에 나오는 골드러시 비유가 핵심을 잘 찌릅니다. 골드러시 때 진짜 돈을 번 사람은 금을 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를 판 사람이었고, AI 시대의 곡괭이는 GPU만이 아니라 그것을 식히는 냉각 장비, 전기를 보내는 변압기와 케이블, 그 위에 얹히는 서버와 기판까지 전부라는 관점입니다.


가장 무릎을 치게 만든 대목은 2장의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하면 SK하이닉스가 팔린다'였습니다. 미국 회사의 투자 결정이 어떻게 한국 기업의 수주로 이어지는지를 단계별로 짚어 주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하면 서버가 필요하고, 서버 안 GPU 옆에 붙는 HBM은 SK하이닉스가, 둘을 잇는 기판은 삼성전기와 이수페타시스가, 전기를 공급하는 변압기는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이, 그 전기를 실어 나르는 전선은 대한전선과 가온전선이 만든다는 식입니다.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연결돼 있던 점들이 한 줄로 꿰어지더군요. 작가가 이걸 "공급사가 아니라 고객사가 먼저 찾아오는 구조"라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새삼 다르게 보였습니다.


투자서를 읽을 때 늘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들어가도 늦지 않았나, 혹시 거품 아닌가 하는 불안이죠. 이 책은 그 물음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4장에서 작가는 "버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한 뒤, 버블과 산업 초입을 가르는 기준은 결국 실제 수요라고 선을 긋습니다. 1990년대 닷컴 버블 때는 매출 기반 없이 주가만 급등했지만 지금 AI 인프라는 실제 발주와 납품, 매출이 동반된다는 비교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수주잔고라는 개념을 기업이 이미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직 납품하지 않은 물량의 합산 금액으로 풀어 주면서, 주가는 기대감으로 움직여도 수주잔고는 실제 계약이 뒷받침된 숫자라고 짚습니다. 변압기 한 대를 발주하면 납품이 이뤄져야 하고 계약을 취소하면 위약금이 발생하니, 한번 쌓인 수주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죠. 무조건 장밋빛으로 칠하지 않고 위험을 인정한 뒤 기준선을 제시하는 태도가 책 전체에 대한 신뢰를 높여 줍니다.


3장의 전력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AI의 진짜 병목은 반도체가 아니라 전기라는 관점인데, 엔비디아 GPU 26만 장 규모의 클러스터를 돌리려면 원자력 발전소 1기 발전 용량의 절반에 가까운 전력이 필요하다는 수치 앞에서는 규모가 실감 났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원자력 발전에 관심을 보이고 아마존이 차세대 원자로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는 설명까지 읽으면, 그동안 따로 떠다니던 뉴스의 의미가 비로소 또렷해집니다. 한국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가 몰리며 전력망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대목은, 이 이야기가 먼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 앞마당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이 책이 끝까지 지키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종목은 사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정답을 찍어 주기보다 어떤 뉴스가 나와도 스스로 수혜 기업을 연결해 낼 수 있는 판단의 틀을 손에 쥐여 줍니다. 같은 뉴스를 보고 SK하이닉스만 떠올리는 사람과 삼성전기, HD현대일렉트릭까지 연결하는 사람의 시야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차이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공급망 구조를 아느냐 모르느냐에서 비롯된다는 작가의 말은 곱씹어 볼 만합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60분 안에 전체 구조를 조망하도록 설계된 입문서다 보니, 개별 기업의 재무 상태나 밸류에이션, 진입 시점 같은 실전 디테일까지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공급망 지도를 손에 넣은 다음 실제 종목을 고르는 일은 결국 독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또 워낙 빠르게 움직이는 산업이라 책에 담긴 수치나 ETF 정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 점은 작가도 부록에서 투자 전 운용사 공식 자료를 반드시 확인하라고 분명히 짚어 둡니다. 개별 종목의 변동성이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해 국내 상장 ETF 다섯 개를 반도체 생태계와 전력 인프라, 공급망 전체로 나눠 정리한 부록은 그래서 더 유용하게 읽힙니다. 전선과 변압기주가 하루에 10~20%씩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솔직하게 알려주고 ETF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흐름이 균형 잡혀 있습니다.


AI 투자에 관심은 있지만 IT나 경제 용어 앞에서 번번이 막혔던 사람이라면 이 책이 좋은 입구가 될 겁니다. 반도체 종목 몇 개는 이미 들고 있지만 왜 오르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람에게도 흩어진 지식을 정리해 주는 안내서로 손색이 없고요.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산업 전체의 구조를 조망하고 싶은 직장인에게 이만한 분량과 밀도의 책은 흔치 않습니다.


장마가 가까워지는 6월 하순, 며칠에 걸쳐 가방 속 이 책을 천천히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같은 경제 뉴스를 봐도 그 안에서 돈이 움직이는 길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AI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돈이 실제로 어디로 흐르는가를 지도처럼 펼쳐 보여주는, 입문자에게 가장 빠르고 친절한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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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사춘기는 없다 - 우리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솔루션
허지원 지음 / 세이코리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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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표지였어요. 개구쟁이 같은 아이가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바라보는 일러스트가 흰 바탕 위에 놓여 있는데, 사춘기 자녀를 둔 집이라면 한 번쯤 느꼈을 그 막막함이 그림 한 장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도대체 어떤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하는 궁금함이요. 회사 일에 치이다 보면 정작 아이 마음은 제대로 들여다볼 겨를이 없는데, 이 책은 그 미안함과 궁금함을 동시에 건드렸어요.


저자 허지원 선생님은 청소년 행동 개입 현장에서 16년간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고, 직접 센터큐를 세워 운영해 온 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막연한 위로보다 단단한 근거가 먼저 다가옵니다. 그러면서도 차갑지 않아요. 지친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면서도, 그 마음을 어떻게 방향으로 바꿔낼지를 차분히 일러주는 책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1장이었어요. 사춘기 아이의 무례함과 짜증을 두고 흔히 쟤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아이가 보내는 SOS 신호로 읽어냅니다. 변연계는 이미 어른처럼 발달했는데 그것을 제어할 전전두엽은 아직 한참 공사 중이라는 설명, 그러니까 액셀은 완성됐는데 브레이크는 설치 중인 상태라는 비유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어요. 아이가 일부러 못되게 구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멈추지 못하는 거라는 말을 읽으니, 그동안 제가 아이를 향해 품었던 서운함이 조금은 누그러졌습니다.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공감이 아니라 더 단단한 울타리라는 대목에서는 생각이 한참 머물렀어요.


책의 한가운데를 이루는 건 4장의 황금률, 세 가지 기둥이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예의와 규칙, 생활 관리, 자기계발의 누적. 이 순서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해요. 예의가 무너지면 부모의 말은 그저 소음이 되어버리고, 소음이 된 말로는 어떤 훈육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특히 그랬습니다. 생활 관리도, 자기계발의 누적도, 결국 예의라는 채널이 살아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거죠. 처음엔 너무 엄격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면 이게 권위주의가 아니라 권위의 문제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따뜻하게 대하되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 하나는 분명히 세워두는 것, 그게 오히려 아이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는 논리였어요.


세 기둥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약속과 보상과 페널티가 일관되게 맞물려야 시스템이 비로소 돌아간다고 해요. 약속은 추상적인 다짐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구체적 계약이어야 하고, 페널티는 감정이 아니라 미리 정해둔 조건에 따라 발동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매일 1퍼센트씩 나아지면 1년 뒤 서른일곱 배가 된다는 작은 습관 이야기, 게임으로 보낸 세 시간 뒤의 공허함과 수학 문제를 푼 세 시간 뒤의 해냈다는 감각을 나란히 놓은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7장에 담긴 실제 사례들은 이 이야기가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욕설과 협박이 정점에 달했던 아이가 몇 주, 몇 달에 걸쳐 조금씩 존댓말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변화라는 게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에서 온다는 걸 알게 돼요. 다만 극단적인 표현을 통제 수단으로 쓰는 아이의 사례에서는 저자도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분명히 당부합니다. 부모의 단독 판단은 금물이라는 그 신중함이 오히려 책에 대한 신뢰를 더해주었어요.


제 마음을 가장 다독여준 건 뜻밖에도 에필로그였습니다. 부모의 인생도 인생이다, 라는 절이었어요. 사춘기 자녀의 모든 행동과 후퇴를 부모 혼자 끌어안아야 한다는 무게가 때로 숨을 막히게 한다는 문장, 그렇지만 부모도 사람이라는 그 한마디가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늘 무언가에 쫓기던 제게 가만히 와닿았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부모라는 환상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말, 부모가 먼저 건강해야 아이를 끝까지 이끌 수 있다는 말이 위로처럼 들렸어요. 시스템은 혼자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는 문장도요.


책을 덮으며 가장 오래 남은 건 표지 제목과 곧장 이어지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부모가 흔들리지 않는 아이를 만든다는 말. 결국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건네는 메시지는 아이를 바꾸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먼저 자기 자리를 단단히 지키라는 것이었어요. 사춘기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아이의 확장을 미처 담아내지 못한 낡은 설계가 충돌을 일으킬 뿐이라는 관점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여러 학자들의 추천사가 더해진 것도 이런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더라고요.


여름이 깊어가는 요즘, 한 학기를 보내고 부쩍 자란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한 부모라면 이 책이 좋은 길동무가 되어줄 것 같아요. 당장 아이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막한 분이나, 매번 감정으로 부딪치다 지쳐버린 분, 무엇보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분이라면 더 그럴 거예요.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태도 하나가 결국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는 사실을, 이 책은 데이터와 사례로, 그러나 끝내 따뜻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아이를 바꾸려 애쓰기 전에, 흔들리지 않는 부모의 자리부터 다시 세우게 해주는 단단하고 따뜻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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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식단의 속세맛 다이어트 치트키 - 입은 즐겁게, 몸은 가볍게! 다이어트 강박을 깨부수는 150가지 웰니스 식탁
김민서(내일식단) 지음 / 책밥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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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마흔을 한참 넘기고 나니 식탁 앞에서 자꾸 머뭇거리게 됩니다. 짜고 달고 매운 것을 줄여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막상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손이 먼저 움직이거든요. 그렇게 밤마다 작은 죄책감을 쌓아가던 차에,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내일식단의 속세맛 다이어트 치트키>를 받아 들게 됐습니다.


표지부터 솔직히 끌렸어요. '속세맛'이라는 세 글자 때문이었습니다. 다이어트 책이라면 으레 풀때기와 닭가슴살, 무미건조한 식판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 도서는 대놓고 속세의 맛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있더군요. 가운데 놓인 카레덮밥과 김 올린 밥 사진을 보면서, 적어도 나를 굶기려 드는 책은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17만 구독자를 둔 유튜브·인스타 채널 <내일식단>의 운영자 김민서 님이 펴낸 레시피북인데, 저자가 10년 가까이 온갖 식단을 직접 거치며 추린 원칙이 단 두 가지라고 합니다. 무조건 맛있을 것, 그리고 차려 먹기 쉬울 것. 책을 펼치고 나서야 이 두 문장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레시피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앞쪽 가이드를 천천히 읽었는데, 여기서 벌써 어깨에 힘이 빠지더라고요. 모든 요리를 계량 스푼이 아니라 그냥 집에 있는 밥숟가락으로 잰다는 겁니다. 가루는 한 술에 5g, 고추장이나 땅콩버터처럼 되직한 건 15g, 이런 식으로요. 저울 사놓고 며칠 쓰다 서랍에 넣어둔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작게 웃게 될 거예요. 가스 불도 필요 없습니다. 전자레인지 하나로 끝낸다는 게 책의 뼈대인데, 달걀을 돌릴 땐 노른자를 꼭 찔러두라거나 껍데기째로는 절대 넣지 말라는 안전 당부까지 살뜰하게 적어두었더군요.


오래 곱씹게 된 건 칼로리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저자는 칼로리 체크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즉석밥은 315kcal로 딱 떨어지지만 집에서 지은 밥은 물 양과 된밥·진밥에 따라 달라지니 "이건 정확히 300kcal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칼로리란 "'제가 오늘 대략 이 정도 먹었구나'를 체크하는 울타리 정도로만 생각하면 좋다"는 거예요. 숫자에 시달리지 말라는 이 한마디가, 그동안 식단 앱만 들여다보던 제 어깨를 한결 가볍게 했습니다.


야식과 군것질이 늘 제 약점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은 단호하면서도 현실적이었어요. 간식을 식사와 식사 사이에 따로 먹지 말고 아예 끼니 안에 넣으라는 겁니다. 점심상에 초콜릿 하나를 처음부터 포함시켜 두는 식으로요. 그리고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양치를 하라고 권하는데, 뇌가 '끼니 끝'을 인식하면서 입이 심심한 느낌도 가라앉는다는 설명이 제법 그럴듯하더군요. 거창한 의지력이 아니라 자잘한 습관으로 무너지는 시간을 막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실제 레시피들이 더 미더웠어요. 이 책의 대표 치트키는 칼로리 높은 마요네즈를 무가당 요거트로 바꾸는 발상인데, 이 한 수가 치킨마요 덮밥, 떠먹는 밥버거, 스팸마요 덮밥으로 계속 변주됩니다. 그중 치킨마요 덮밥은 단백질이 20g을 훌쩍 넘으면서 지방은 6g대로 눌러놓아 숫자만 봐도 든든했어요. 크림 유부리소토는 조리 시간이 단 3분인데, 크림소스의 느끼함을 유부가 잡아준다는 조합이 영 의외라 더 해보고 싶어졌고요.


무엇보다 야식파인 제게 솔깃했던 건 디저트 파트입니다. 떠먹는 마늘빵, 길거리 달걀빵, 프렌치토스트까지 빵집과 분식집의 그 단짠을 200kcal 안팎으로 옮겨놓았더군요. 식빵에 알룰로스로 단맛을 내고 치즈 한 장 올려 마무리하는 방식인데, 참으라고 다그치는 게 아니라 적당히 채워서 폭주를 막는다는 태도가 한결같습니다. 밤마다 냉장고 문을 열던 손이, 이 정도면 굳이 참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지더라고요.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가공 소스나 시판 제품에 기대는 레시피가 적지 않아서, 첨가물까지 깐깐하게 따지는 분이라면 재료를 다시 고르고 싶어질 수도 있겠어요. 다만 이 책이 노리는 게 완벽한 클린식이 아니라 '오늘 당장 지치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한 끼'라는 걸 떠올리면, 단점이라기보다 방향의 차이에 가깝다고 봅니다.


읽고 나서 달라진 건 식단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동안은 먹는 일마다 잘잘못을 따지듯 굴었는데, 이 책은 그 팽팽하던 줄을 슬쩍 풀어주더군요. 다이어트를 자꾸 내일로 미뤄온 사람이나, 굶는 게 무서워 시작조차 못 하던 사람, 또 저처럼 나이 들수록 입은 못 줄이겠는데 몸은 정직하게 반응해서 난감한 사람이라면 분명 반가울 거예요. 요리에 영 자신 없는 자취생이나 사회 초년생도 숟가락과 전자레인지만 있으면 첫 끼는 너끈히 차려낼 수 있고요.


서평단으로 받아 며칠 곁에 두고 펼쳐봤는데, 그 며칠 사이 저녁 풍경이 조금 달라진 게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잘 먹는 일과 가볍게 사는 일을 굳이 싸움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 한 권이 차분히 보여줬어요.


초여름으로 접어들며 입맛도 무거워지고 찬 음식에 자꾸 손이 가는 계절입니다. 이런 때 부담 없이 한 그릇 차려 먹기 좋은 책을 만나, 저녁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맛을 포기하지 않고도 가벼워질 수 있다고 다정하게 일러주는, 죄책감 없는 다이어트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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