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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 ㅣ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정 바탕에 형광에 가까운 파랑 하나로만 그려진 표지입니다. 머리를 감싸 쥔 사람, 쓰러진 술병, 알람시계, 유령, 위태롭게 쌓아 올린 머그잔, 알약, 3D 안경, 777이 걸린 슬롯머신. 어두운 소재를 다루는 책치고 디자인은 오히려 경쾌한 쪽으로 밀어붙였고, 그 온도차가 이 책의 태도를 먼저 알려주는 듯했어요. 아래쪽 띠지에는 "인류는 단 한 번도 완벽한 적이 없었다."라는 문장이 큼직하게 박혀 있습니다. 지식 유튜브 채널 〈다크모드〉의 두 번째 책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는 그 선언을 스무 편의 이야기로 밀고 나갑니다.
책을 펼치면 인상이 또 달라집니다. 각 장 앞에는 고전 문헌처럼 장식 선을 두른 속표지가 놓여 있고, 파트마다 색이 바뀝니다. 잠 파트는 회색, 기억 파트는 짙은 자주빛, 치료 파트는 먹빛에 가까운 청록. 겉은 팝하게, 속은 단정하게 눌러둔 설계라 읽는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첫 파트에서 오래 붙들린 대목은 다섯 번째 장이었습니다. 시작이 정보가 아니라 장면이에요. 새벽 3시,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잠이 깹니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아보지만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폰을 켜서 3시 12분을 확인하고, 알람까지 두 시간 남았다는 계산이 시작됩니다. 나 불면증인가, 이러다 내일 종일 피곤하겠지.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걱정이, 다시 잠드는 걸 막는다."

여기서부터 역사학자 로저 에키르치의 작업이 따라 나옵니다. 옛 일기와 법정 기록, 의학책, 호메로스와 초서, 디킨스의 소설에까지 '첫 잠'과 '둘째 잠'이라는 표현이 툭툭 등장하는데 누구도 그 뜻을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20년에 걸쳐 모은 기록이 500건을 넘었고, 거기서 하나의 그림이 떠올랐어요. 해가 지고 두어 시간 뒤 첫 잠을 자고, 한밤중에 한두 시간 깨어 있다가, 다시 둘째 잠을 자고 동틀 무렵 일어나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건 그 중간의 시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여겼느냐인데, 아무도 그걸 곧장 불면증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하고, 옆에 누운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집에 다녀오기도 했다고 해요. 시계가 아니라 그날 할 일이 남았는지가 잠드는 때를 정했다는 문장에서, 잠이라는 게 관리 대상이 되기 전에는 이런 얼굴이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가로등이 깔리고 밤에 문 여는 가게가 생기면서 밤은 어둠에 잠겨 보내는 시간이 아니게 됐고, 산업화가 겹치자 침대에 오래 누워 있는 일이 낭비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토막이던 잠이 하나로 압축됐다는 설명이 이어져요. 1990년대 토머스 웨어의 실험도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을 매일 밤 14시간 어둠 속에 두자 4시간 자고 한두 시간 깨어 있다가 다시 4시간 자는 형태로 잠이 갈라졌고, 한밤중에 깨어 있는 그 시간에 사람들은 불안해하기는커녕 평온했다고 합니다.
이 장이 마음에 든 건 저자가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전기 없이 사는 일부 부족은 지금 우리처럼 한 번에 쭉 자기도 하니 두 번 자는 패턴을 인류 보편으로 볼 수는 없다고 스스로 못을 박아요. 남는 결론은 딱 하나, 8시간 통잠이 생각만큼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한밤중에 자꾸 깨는 사람에게 그게 자연스러운 패턴일 수도 있다고 알려주는 것만으로 불안이 줄어든다는 연구자들의 말로 장을 닫습니다. 고쳐야 할 고장이라 여기던 것을 그냥 밤의 한 부분으로 옮겨놓는 일. 지식으로 위로한다는 게 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어요.
2부를 닫는 자리에는 클라이브 웨어링의 이야기가 놓입니다. 1985년, 르네상스 음악을 연구하던 음악가이자 지휘자였던 그는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일으킨 뇌염으로 기억 관련 부위에 큰 손상을 입습니다. 그 뒤로 기억이 7초에서 30초밖에 이어지지 않았어요. 그는 매 순간 자신이 방금 혼수상태에서 처음 깨어났다고 믿었고, 일기에 몇 분 간격으로 처음으로 깨어났다고 적고 조금 뒤에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깨어났다고 다시 적었습니다. 몇 분 전 자신이 쓴 문장을 남이 써놓은 말처럼 보았다는 서술에서 숨이 조금 막혔습니다.

그런데 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내 데버라는 알아봤어요. 그녀가 잠깐 방을 나갔다 몇 분 뒤 돌아와도 매번 크게 반가워하며 일어나 다가갔고, 오래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사람처럼 끌어안았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같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데버라가 낯선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하던 사람이 피아노 앞에서는 망설이지 않았고, 복잡한 곡을 연주하고 악보를 읽고 합창을 지휘했습니다. 연주가 끝나면 자신이 방금 피아노를 쳤다는 사실은 잊었지만요. 기억이 무너져도 사람 안에 끝까지 버티는 층이 있다는 것, 그게 이 장이 남긴 이상한 안도였습니다.
마지막 장은 결이 다릅니다. 1840년대 빈의 병원에서 의사 병동의 산욕열 사망률이 산파 병동보다 훨씬 높았고, 산모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제발 산파 병동에 넣어달라고 빌었고, 어떤 이들은 병원에서 낳느니 길에서 아이를 낳고 들어오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그나츠 제멜바이스가 알아낸 답은 의사들의 손이었어요. 부검을 마친 손으로 곧장 분만실에 들어가던 관행. 염화석회 물로 손을 씻자 10퍼센트를 넘던 사망률이 몇 달 사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의학계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그 거부를 악의로만 그리지 않는 점이 좋았어요. 제멜바이스가 발견을 제때 논문으로 정리하지 못했고 원리를 설명하지 못했으며 비판에 답하는 데 서툴렀다는 사실을 먼저 짚습니다. 그러고 나서 진짜 이유를 꺼내요. 손을 씻자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동안 씻지 않은 손으로 산모들에게 병을 옮겼을 수 있다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는 것. 살리려던 사람들이 죽음의 통로가 되었을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어떤 치료가 효과 없었다고 인정하는 것과 제가 환자를 해쳤을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게가 전혀 다르고, 후자는 자기 자신을 향한 판결처럼 느껴진다고 책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건 몇몇 사람의 못난 성격이 아니다."라고 덧붙여요. 조직에서 오래 일해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 앞에서 몇 장면쯤 떠올릴 겁니다. 제멜바이스는 마흔일곱에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2주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례 하나하나의 힘이 워낙 세다 보니, 몇몇 장에서는 마무리의 위로가 조금 급하게 붙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간은 불완전하니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는 결론이 반복되면서, 정작 그 불완전함을 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공을 넘기는 쪽에 가깝습니다. 유튜브 콘텐츠를 확장한 책이라는 태생상 어쩔 수 없는 호흡이겠지만, 서너 편쯤은 더 밀고 들어가도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그 짧은 호흡 덕에 잠들기 전 한 편씩 읽어 나가기에는 최적이기도 하고요.

이번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았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읽다 보면 좋은 문장을 모으는 일에 익숙해지는데, 이 도서는 좀 달랐어요. 밑줄보다 확인에 가까웠습니다. 잘 자지 못하는 것도,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도,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제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오래 안고 온 조건이라는 확인.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흔한 위로보다, 애초에 완벽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사례로 들이미는 방식이 훨씬 든든하게 다가왔습니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계절입니다. 새벽에 눈이 떠져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이 유난히 많아지는 때죠. 그런 밤에 이 책의 첫 파트를 읽으면, 뒤척이는 시간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읽기 좋은 책이 잠에 관한 책이라는 게 이 여름의 작은 아이러니 같습니다.
인간의 오작동을 낱낱이 꺼내 보이면서, 결국 스스로를 덜 미워하게 만드는 위험하고 다정한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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