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법정 스님의 무소유 잠언집 - 스페셜 아포리즘, 법정 스님이 옮긴 <진리의 말씀> 법구 108경 수록
김세중 편저 / 스타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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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받고 나서 가장 오래 들여다본 건 표지 아래쪽 사진이었습니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스님이 한 손을 살짝 들어 무언가를 설명하시는 중인데, 정면을 응시하는 근엄한 초상이었다면 책장을 열기 전부터 마음이 조금 굳었을 것 같아요. 말씀을 건네는 도중에 찍힌 얼굴이라 그런지 옆에 앉아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위쪽을 채운 연둣빛 세로 줄무늬는 절집 창호에 아침 빛이 스민 것처럼 보이고요. 요란한 장식 없이 제목 글자만 굵게 세워둔 구성도 책의 주제와 어긋나지 않습니다.



<성철·법정 스님의 무소유 잠언집>은 김세중 편저로 스타북스에서 나온 완전개정증보판입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성철 스님의 무심을 두 축으로 삼고, 무소유·인연·침묵·명상·마음·지혜·자유·사랑·행복·무소유의 삶이라는 열 갈래 주제 아래 짧은 글들을 묶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는 책이라기보다 아무 데나 펼쳐 한 편씩 읽으라고 만든 책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읽었고, 그 방식이 이 도서에는 잘 맞았습니다.

인연을 다룬 장에 '만남은 스침과 다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대단한 인연이라는 말을 우리가 얼마나 가볍게 쓰는지 짚으면서, 정작 출퇴근길에 어깨가 부딪히면 표정부터 굳어지고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워졌다고 적어두었더군요. 스침의 값어치를 먼지처럼 날려 보내면서도, 사적인 끈이 하나 이어지는 순간 태도가 확 달라지는 우리 모습을 꽤 정확하게 그려냅니다. 이어서 길상사 개원 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을 모셔 축사를 청했던 일과, 명동성당에 법정 스님이 특별 강사로 서셨던 일이 나란히 놓입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도 이렇게 한자리에 놓고 보니 다시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이 장에서 남는 그림은 성문입니다. 제 잣대로 섣불리 선을 그으면 마음의 성문이 닫히고, 굳게 닫힌 성채 안에는 귀한 손님이 들어올 수 없으며 고독의 먼지만 쌓인다고 써두었어요. 문을 열어두면 손해를 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맑은 바람이 오가며 탁한 공기를 씻어낸다는 대목까지 읽고 나면, 관계를 정리하는 일에 익숙해진 나이라는 게 어떤 뜻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장 앞머리에는 절대적인 선연도 절대적인 악연도 없다는 경전 구절이 놓여 있는데, 이 한 줄이 뒤따르는 글 전체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침묵을 다룬 장은 결이 다릅니다. 소중한 생각일수록 값싼 말로 꺼내지 말라면서 "침묵의 봉인 속에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합니다"라고 적어놓았어요. 진실의 힘은 구걸하듯 설명하지 않아도 언젠가 상대에게 가닿는 필연성에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설명하고 해명하고 설득하는 데 쓰는 사람에게는 방향이 반대로 놓인 문장입니다. 이 장 앞머리에 실린 경전 구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에게 충고할 때 때를 가려 말할 것, 진심으로 하되 거짓되게 하지 말 것, 부드러운 말씨를 쓸 것, 의미 있는 일에 대해서만 말할 것, 인자한 마음으로 말할 것. 말을 아예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조건을 갖춘 말만 하라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 앞부분에서 걸리는 대목이 하나 있었어요. 말썽을 부린 아이에게 부모가 아무 말 없이 서글픈 눈빛으로 침묵을 지키면 아이가 매를 맞을 때보다 훨씬 큰 불안을 느낀다며 이를 침묵의 교육 효과로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침묵이 아이를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쓰이면 그건 다른 종류의 벌이 되고, 요즘 양육 상담에서도 권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부모의 침묵이 힘을 갖는 순간은 아이가 두려울 때가 아니라 이미 신뢰가 쌓여 있을 때겠지요. 앞머리의 경전 구절이 말하는 인자한 마음과도 결이 조금 어긋나 보였습니다. 침묵의 미덕과 침묵의 위력을 같은 것으로 묶어 설명한 셈인데, 이 둘은 나누어 읽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혜를 다룬 장에서는 성철 스님 쪽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목숨 걸고 지키라 하셨다는 다섯 계율이 실려 있는데, 그중 머리 지식으로 남을 속이려 드는 조사어록이나 책을 함부로 보지 말라는 항목 앞에서는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처지가 조금 머쓱해지더군요. 백련암을 찾아온 이들에게 삼천배를 하고 오라 하셨다는 일화도, 권위를 세우려는 뜻이 아니라 남이 대신 져줄 수 없는 짐을 제 땀으로 덜어내게 하려는 방편이었다고 풀어냅니다. 장 앞머리에 놓인 법구경 구절은 "멀리 있어도 높은 산의 눈처럼 도를 가까이하면 이름이 나타나고 가까이 있어도 밤에 쏜 화살처럼 도를 멀리하면 나타나지 않나니"인데,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다만 이 장에서 억울함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제시한 두 가지 경우의 수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습니다. 겉보기에 노력이 같아 보여도 상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애썼거나, 아직 결과가 드러날 때가 오지 않았거나. 두 갈래로 정리하면서 평가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열어두지 않아요. 인사권자가 숨은 내공을 정확히 알아본 것이라는 전제도 조직에서 늘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이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부당한 결과 앞에서도 원인을 자기 안에서만 찾게 되는데, 그건 겸손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겁니다. 마음을 다스리라는 권유와 상황을 정확히 보라는 요구는 나란히 갈 수 있으니까요.

세 장을 이어 읽다 보면 재미있는 배치가 보입니다. 인연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성문을 열라 하고, 침묵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입을 닫으라 하고, 지혜를 말하는 자리에서는 다시 귀를 열라 합니다. 열고 닫는 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비움의 실제 모양에 가깝지 싶어요. 무조건 놓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놓고 어디를 붙들지 가려내는 일이겠지요.

책 끝자락에는 법정 스님이 옮긴 진리의 말씀 가운데 백여덟 편을 골라 실은 스페셜 아포리즘이 붙어 있습니다. 앞쪽 본문이 설명을 넉넉하게 붙인 문장들이라면 이쪽은 군더더기가 거의 없어서, 호흡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번 개정증보판에서 가장 값진 자리라고 느꼈어요. 문장이 짧아지니 읽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지더군요.



이 책은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았습니다. 서평단으로 받는 책들은 대개 마감이 있고 그래서 읽는 속도에 어느 정도 압박이 붙기 마련인데, 이 도서는 그렇게 읽으면 손해라는 걸 며칠 만에 알았습니다. 밑줄을 긋고 정리하려 들수록 문장이 미끄러졌고, 아침에 한 편 저녁에 한 편 정도로 속도를 줄이니 비로소 자리를 잡았어요. 서평단 활동을 이어오면서 읽는 방식 자체를 바꾸게 한 책은 흔치 않았습니다.

문장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편저자의 서술이 전반적으로 수식이 강합니다. 위대한, 거룩한, 찬란한 같은 형용사가 자주 등장해서 담백한 잠언집을 기대하고 펼치면 톤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반대로 말하면 두 스님의 말씀만 덩그러니 놓고 읽기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안내자 역할을 해주는 셈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걸리는 지점이 거의 없고, 요즘 흔한 비움이나 미니멀리즘 이야기가 정리 정돈의 기술로만 소비되는 게 아쉬웠다면 이 한 권이 그 말의 뿌리를 짚어줄 겁니다. 종교의 벽을 넘어선 만남들이 여러 대목에 실려 있는 것도 이 책을 넉넉하게 만들어주고요.

장마가 물러가고 매미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계절입니다. 더울수록 짐은 줄여야 하는데 마음에 얹힌 것들은 계절과 상관없이 그대로 남아 있지요.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언가를 크게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지 정도는 알아차렸어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그중 하나쯤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우라고 다그치지 않고,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지부터 알아차리게 해주는 잠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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