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리는 강하다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평점 :
⠀
달리는 강하다
⠀
p.108 그렇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화내고 위안받고 힘내겠다고 말하는 사랑이 엄마를 보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마음을 나누는 일이고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고, 앞에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힘을 낼 수도 있는 거니까.
⠀
p.117 이젠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웠다.
⠀
p.119 인간이 위험에 처하거나 최악의 상황에 닥쳤을 때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쁘게 변할 수 있는지 몇 번이고 본 탓에 두려웠다.
⠀
p.179 "가족을 다른 표현으로 식구라고 하잖아. 식구라는 단어가 같이 지내면서 밥 먹는 사람이래. 우리 할머니 옛날에 시장에서 작은 식당을 했었거든. 그때 돈 없다고 하면 그냥 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더 주고 그러면서 사람들 많이 챙겼어. 다들 식구 같은 손님이라고. 가족이라고. 그래서 식당을 그만둔 지금도 이 근처에서 왕언니로 통해.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면 우리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언니, 누님하며 인사한다고. 네가 대학 가면 밤톨이 잘 지내려나? 반찬 좀 보내 줘라, 하실걸. 너, 할머니가 해준 밥 많이 먹었지? 네가 만든 빵이랑 쿠키도 우리 다 같이 먹었고, 그러니까 너도 우리 식구야. 알겠어?“
⠀
p.204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도, 나이를 먹었어도 사랑은 사랑이다.
⠀
엄마와 아빠의 이혼 속에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그냥 보통 평범한 고등학생인 강하다는 65세 이상만 좀비가 된다는 기이한 상황 속에서 이미 65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의 곁에 같이 있겠노라 자발적으로 남은 상황에서 할머니만 생각하던 강하다는 어느새 같은 학교를 다니는 남학생에 평소 오다가다 인사도 잘 안 하던 아파트 이웃사람들과 함께 생사를 하게 된다.
그동안 엄마와 아빠의 부재 속 할머니의 사랑이면 괜찮노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 삼아 지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감정들을 아파트 이웃 주민들과 함께 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이 아닌, 함께 밥을 먹고 위기를 헤쳐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
65세 이상의 노인들만 좀비가 된다는 설정, 최악의 상황 속에서 가족을 지키고자, 찾고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 가족이 아니어도 위기의 상황에서 나보다 더 약자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인류애를 무겁지 않게, 때로는 너무 가볍지 않게 풀어낸 김청귤 작가님의 소설은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드는 몰입력과, 나라면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상해 보게 되었다.
가방을 메고 달리는 하다를 상상하면 그렇게나 든든하고 멋질 수가 없다.
달리는 강하다 진짜 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