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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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기획 의도]
이 책은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더 많은 독자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973년에 설립된 영국의 '비라고' 출판사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작품으로, ’비라고=기센여자‘ 그들은 '비라고'와 같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규정해온 멸칭을 하나씩 선정해 각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복수의 여신은 짧은 단편 1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편은 카밀라 샴지의 보리수나무의 처녀귀신이었다.
사실 15편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보리수 나무라든가, 처녀귀신의 개념이 한국인에게는 가장 익숙해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p.70 유산을 남기는 다른 방식도 존재한다는 걸 예전의 나는 이해를 못했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사방에 자기 이름 새기길 좋아하는 남자였다. 대학 장학금, 극장 홀 개조, 박물관 별관.
그럼 나는 뭐죠?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틀고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시선을 돌렸다.

p.71 추라일은 가부장제의 희생자로 남자들에 대한 복수를 시 행하는 여자야, 내가 말했다. 일종의 페미니스트 아닌가?
하지만 사악한 정령이잖아, 제이나브가 말했다. 성적 자제력을 모르고 매혹적이니까 사악하지.
가부장제의 죄책감이 구현된 존재야, 내가 말했다.
죄지은 남자들이 자신들을 피해자로 투사할 수 있게 해주지, 제이나브가 말했다.
게다가 추라일의 포로가 되면, 50년 동안 저세상 미인이 질려하지도 않는 발기 왕에 등극하잖아. (ㅋㅋㅋㅋ)
제이나브는 웃고 또 웃었다 너 이런 모습 더 많이 보여줘라, 제이나브가 말했다.
농담 아닌데, 퀴어 추라일은 없어?
그래, 그렇게 말이야, 그렇게.

더 이상 임신을 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의 핏줄은 꼭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성의 몸을 쥐어 짜내 딸을 낳게 하고(그마저도 원하던 성별이 아니었다) 파키스탄을 떠나 (떠난 이유도 우습다)
영국에서도 딸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자신의 옆에 적당히 잘 세워둘 수 있는 장식대용으로 여긴다.

추라일이 산다는 보리수나무는 물을 찾아 넓게 퍼지고 건물의 깊숙까지 파고든다. 제이나브가 파키스탄에서 잘라온 보리수나무는 영국에서 자라기엔 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뻗고 퍼졌다. 추라일을 피해 파키스탄에서 영국까지 떠난 아빠에게 과연 피할 곳이 있을까?

신랄하게 여성을 지칭하는 멸칭에 부딪혀 그 멸칭에 분노하기보다 소재 삼아 이야기를 써낸 작가들의 위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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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처방해 드립니다 1
이시다 쇼 지음, 박정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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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처방해 드립니다.

p.18 "진짜 고양이?"
"물론입니다. 효과가 아주 좋아요. 예부터 고양이는 백약의 으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설픈 약보다 고양이가더 잘듣는다는 의미죠."

p.220 고양이는 제멋대로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만, 인간이 훨씬 제멋대로죠.

p.250 도모카는 탱크의 하얀 손을 쥐었다. 앞쪽은 뭉실뭉실한 주먹 같다. 뒤집으면 핑크빛 볼록살. 볼록살에 살짝 손가락을 문질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감촉. 부드럽고, 탄력적인 실리콘. 아니, 젤리 과자 같다. 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p.352 지토세를 입양한 날 스다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때, 각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각오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외롭고, 슬퍼서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괴로운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지토세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라진 뒤에도 붙잡고 있었다.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제 보내 줘야 한다. 반려인은 항상 떠나보내는 처지다.

방문하는 모두가 한 번에 찾는 법이 없는 교토의 바둑판 같은 길에서 헤매고 헤매다 만나게 되는 고코로 병원에는 어딘가 쌀쌀하면서도 아닌 것 같은 간호사와, 고민을 말하면 말할수록 묘한 의사가 있다.
고코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직장, 성격 등 다양한 이유로 방문하지만 기존의 다른 병원을 가보았지만 해결을 못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은 사람도, 알음알음 건네들어 찾아오게 된 사람도 모든 처방은 딱 하나다.

“고양이를 처방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의사 내 고민을 듣기는 듣는 거야? 보통 병원의 의사들과는 다른 전혀 공감해 주는 태도가 아닌 시니컬하고 무감각한 태도, 간호사의 무뚝뚝한 태도에 얼떨결에 처방받은 고양이와, 관련된 물품을 받고 쫓겨나듯 나오게 된 환자들은 황당함과 곤란함으로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어느새 각자가 처방받은 고양으로부터 약보다 더 빨리 약효가 나타난다.

책에 나오는 고민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해봤을, 겪어봤었을 고민들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고민들은 책의 주인공들에게는 너무나 괴로워 더 나아가 마음의 병이 신체의 병까지 될 정도로 갉아먹는 경우도 있다.
사실 고양이는 직접적으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다만 고양이를 데려오고 동봉된 설명서를 읽고 이름을 불러주고, 환경을 조성하고 의식주를 챙기면서 책임감이 생기고,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만 봤을 뿐인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새 스며든다.
때때로 가장 쉬운 길인데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들도 고양이를 통해 배우며 이해하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너무나 놀랍다.

책에서 고양이를 묘사하는 부분은 고양이를 키우는, 키우지 않는 사람들 모두 상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해서 실제로 집사인 나 역시도 놀랐다.

[고양이를 처방해 드립니다]를 번역해 주시는 번역가 박정임 님께서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도 번역하셨는데 그 책도 정말 재밌게 읽었기에 섬세하게 번역한 책을 또 접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영광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금방 읽고 책이 줄여드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는데 <2권에서 계속>!!!이라는 마지막 멘트가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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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다
클로에 윤 지음 / 한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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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다

p.44 “넌 가끔 우주가 널 어떻게 하려고 한다고 착각하지만 너 하나 때문에 온 우주가 움직일 일은 절대로 없어. 널 움직이는 건 너야."

p.49 '나를 위해, 나보다 더 필사적일 수 있는 건가?'

p.70 “넌 아직 오래 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살다 보면 '마법의 순간'이라는 게 있어.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순풍이 돛을 미는 것처럼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끌려가게 되는 순간. 결과를 예측 할 수 없기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겠지. 하지만 먼 훗날에 알게 될 거야. 살아오면서 나빴던 순간은 한순간도 없었다는 걸. 그러니까 우울한 표정은 집어치우고 바닥이나 쓸어."
(요즘 소위 말하는 T같지만 가장 현실성있고, 힘이되는 태양의 말)

p.92 “넌 아직 알지 못해. 네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새벽들’, 과감하고 용기 있고 매력적인 너의 자아들을, 너 자신을 믿어야만 해. 그래야만 죽어 가는 너를 살릴 수 있어."

p.106“잘했어, 지금부터 의심하지 말고 곧장 그 빛을 따라가. 금방 도착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 그렇게 될 거야. 모든 건 네가 생각하는 데 달려 있어."

p.120 “사랑이 두렵다면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 거절당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

p.249“기억해. 삶은 주어지는 게 아니야, 직접 만드는 거야."

고등학교 졸업식 날 모두가 교복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과 새롭게 열리게 되는 미래에 설레고 있을 때 죽음을 결심한 새벽의 앞에 어딘가 현실적이지 않은 별과 태양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이름처럼 별은 섬세하며 다정하고, 태양은 직설적이고 이성적이다.
죽어버린 새벽의 자아를 깨우기 위해 새벽의 앞에 나타난 별과 태양은 주어진 시간 안에 새벽의 자아를 깨우고 나아가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돈이 될 수도, 꿈이 될 수도, 사랑이 될 수도 있다. (과연 결국 무엇이 새벽을 깨우게 했는지는 책으로 확인)
다소 다른 방식으로 별과 태양은 새벽과 함께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의 다른 방식 모두 새벽에게는 위안이 되고, 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새벽에게는 돈 때문에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 일상이었고, 꿈이 있지만 그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인 것 같은 버거운 상황과, 누구보다 사람의 온기와 사랑이 그리웠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떠나며 엄마의 부재로 인한 상처가 있었다.
그런 새벽에게는 더 이상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기에 새벽의 슬픔과 처절함이 보이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며 안타깝고 속상했다.

늘 포기하고, 체념하며 살아왔던 죽은 자아의 새벽이 별과 태양을 만나고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나면서 스스로가 달라지는, 본인조차도 모를 변화와 성장을 새벽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읽는 재미와 책의 후반부 별, 태양과 새벽의 관계성과 그리고 상황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반전 아닌 반전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서 마지막에 흥미로웠다.

별과 태양,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새벽에게 건네는 위로와 조언들은 비단 새벽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작가님의 섬세함이 보이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며 나 역시도 한 명의 독자로서 따뜻한 위로와 조언을 받았다.

책을 읽으며 느꼈지만 작가님께서 제목도 중의적 표현을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1. 주인공인 ’새벽‘을 깨우다.
2.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새벽[먼 동이 트려 할 무렵] 아침이 오기 전 ‘새벽’을 깨우다.
표지 일러 역시 빛나는 배경 속 힘차게 앞으로 걸어나가는 새벽의 뒷모습을 담고 있기에 그렇게 유추해 보았다.
(책 일러 너무 영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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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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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p.70 하지 말라는 말이 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다. 엄마에게는 절대 안 되는 일이나, 딸에게는 기필코 해야 하는 그런 일이 있다. 딸은 언제든 엄마를 배반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 엄마를 이긴다.

p.82 "숨기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야. 알려 주실 때까지 기다려. 네가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어느 정도 비밀이 필요해. 우리 엄마는 나에 대해 너무 알려고 해서 부담 스러워. 제발 좀 넘어갔으면 좋겠다니까. 독서실에서 조금만 늦게 가도 바로 전화하고. PC방 간다고 하면 무슨 게임 하냐, 나쁜 형들 없냐, 뭐 먹냐, 이런 것까지 물어. 가만 보면 너희 집은 우리 집이랑 반대야. 뭔가 바뀌었어. 네가 엄마고 너희 엄마가 딸 같아. 제발 엄마 걱정 그만해. 너희 엄마도 자신만의 삶과 생각이 있다고."
(상우의 말에 순간 띵했다.)

p.133 "여기서도 노력했어.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야. 하지 번번이 실패하고 거절당했어. 한번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이 뭔가 를 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 특히 우리 세계는 그런 사람 에게 너무 가혹해. 그 세계는 그렇지 않아. 엄마처럼 아무것도 아 닌 사람도 환영해 줘. 온 세계가 나를 안아 주는 느낌이야. 거기선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걷기만 해도 자유로워 눈물이 날 때가 있어."
(엄마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자기의 힘으로 되지않는 것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p.143 “- 많은 경우 우린 스스로 구원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에 빚지며 살아가야 하죠."

p.170 "지금까지 엄마가 찾아낸 세계가 수십 개가 넘거든. 그런데 어디에도 너는 없더라. 너는 오직 여기에만 있어. 이 세계에만 존재해. 내가 여기에 돌아오는 이유야. 이 세계는 나에게 가혹하고 매정했지만, 그래서 너무 무섭지만 떠날 수가 없어.네가 여기에 있 으니까. 희진아, 너는 엄마에게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세계야.”

p.176 “다르지 않아. 우리는 모두 여러 세계를 살아. 그리고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도 모든 세계를 공유할 순 없어.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해."

뭐든지 알아서 척척 잘하는 모범생 희진이는 세상과 단절하고 텔레비전만 붙잡고 사는 엄마와 둘이 지낸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지만 집안에서는 엄마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역할을 하니 어딘가 완벽한 듯 완벽하지 않은 공허한 느낌을 주는 관계성이 있었다.
이러한 희진이와 엄마의 나름의 규칙적 관계성과,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균열은 엄마가 텔레비전을 통해 다른 세계로 왔다 갔다 하면서 그것을 희진이에게 들키고 나서부터 깨지기 시작하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다른 세계를 왔다 갔다 한다는 멀티버스 세계관, 평행이론을 통해 SF 소설 같으면서도, 우리의 현실 속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어 더욱더 희진이와 엄마, 그리고 그 안의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해 몰입이 잘 되었다.

책의 초반부와 중반부에는 희진이의 엄마가 엄마로서 역할을 잘 못하고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엄마도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자기의 삶보다는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면서도 더 큰 삶을 개척해나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러 세계를 살아. 그리고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도 모든 세계를 공유할 순 없어.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해.’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모두가 각자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한 곳 일 수도 있고 여러 곳일 수도 있다.
그 세계라는 것이 진짜 희진이 엄마처럼 멀티버스 세계관이 있어 물리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개념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포괄적으로 서로의 인간관계,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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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누아르 달달북다 3
한정현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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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 저 애가 알아서 떠벌리고 다녀줄 소문은 반가웠지만 그래도 과거는 항상 사람 발목을 잡고 한숨을 내쉬게 한다. 특히 선처럼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일수록.

p.29 안 웃어서 다행이에요. 여기서 웃으면 딱 두 꼴 이거든요. 임신 아니면 낙태.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멘트아닌가)

p.37 미쓰 리.
대체 언제부터 멋졌던가?

p.40 사실 가끔은 선도 자신의 이름을 까먹는다. 선은 이곳에서 미쓰 박으로 불린다. 여긴 많은 미쓰들이 있다. 언제나 대체 가능한 미쓰들.

p.48 그 이상한 낙서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게 무슨 빨갱이 서신이란 말인가?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 빨갱이 차라리 만나보고나 싶었다.
미쓰 리 언니, 그리고 서울 누아르. 여성들은 다 죽어 나간다는 그 서울의 이야기들.

p.54 이것만 좀 맡아주세요. 미쓰 박. 이렇게 불러서 죄송하네요. 마지막까지요.

p.57 이 세상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데 그 강한 자들은 모두 남성 권력자들이라는 거였다.

🫧 소설의 배경지는 1980년대, 그 숫자만으로도 설명이 되는 빠른 경제성장과 동시에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와 상반되게 여성들에게는 차갑고 잔인한 시기이다.
주인공인 박 선은 한 공장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무시가 당연시했던 그 속에서 미쓰 박으로 불리는 박 선 역시도 그런 상황에 순응하며 지내지만 그곳에서 만난 미쓰 리 언니는 잔인하리 만큼 세상을 직선적으로 바라보고, 당당하지만 스스로 단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로맨스X칙릿을 키워드로 했지만 한정현 작가님의 러브 누아르는 사실 로맨스도, 칙릿도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인 박 선이 미쓰 리 언니에게 가지는 감정은 1980년대 시대가 이해할 수 없는 여성이 여성에게 가지는 동경일 수도, 그리고 사랑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브 누아르에서는 1980년대의 시대는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여성들에게 얼마나 차갑고, 냉정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쓰 리는 "여자가 성공하는 이야기는 애시당초 글러먹은 것"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말하며, 여성이 성공하는 이야기는 세상에 없는 환상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여성이 성공하는 이야기가 환상이라고 생각되는 암흑기의 시대 속에서의 여성들의 용기와, 서로 말할 순 없지만 암묵적으로 가지는 연대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박선의 미쓰리 언니에 대한 감정이 동경인지 사랑인지 알 순 없지만 동경이면 어떻고 사랑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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