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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채널명은 비밀입니다
p.70 하지 말라는 말이 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다. 엄마에게는 절대 안 되는 일이나, 딸에게는 기필코 해야 하는 그런 일이 있다. 딸은 언제든 엄마를 배반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 엄마를 이긴다.
p.82 "숨기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야. 알려 주실 때까지 기다려. 네가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어느 정도 비밀이 필요해. 우리 엄마는 나에 대해 너무 알려고 해서 부담 스러워. 제발 좀 넘어갔으면 좋겠다니까. 독서실에서 조금만 늦게 가도 바로 전화하고. PC방 간다고 하면 무슨 게임 하냐, 나쁜 형들 없냐, 뭐 먹냐, 이런 것까지 물어. 가만 보면 너희 집은 우리 집이랑 반대야. 뭔가 바뀌었어. 네가 엄마고 너희 엄마가 딸 같아. 제발 엄마 걱정 그만해. 너희 엄마도 자신만의 삶과 생각이 있다고."
(상우의 말에 순간 띵했다.)
p.133 "여기서도 노력했어.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야. 하지 번번이 실패하고 거절당했어. 한번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이 뭔가 를 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 특히 우리 세계는 그런 사람 에게 너무 가혹해. 그 세계는 그렇지 않아. 엄마처럼 아무것도 아 닌 사람도 환영해 줘. 온 세계가 나를 안아 주는 느낌이야. 거기선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걷기만 해도 자유로워 눈물이 날 때가 있어."
(엄마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자기의 힘으로 되지않는 것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p.143 “- 많은 경우 우린 스스로 구원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에 빚지며 살아가야 하죠."
p.170 "지금까지 엄마가 찾아낸 세계가 수십 개가 넘거든. 그런데 어디에도 너는 없더라. 너는 오직 여기에만 있어. 이 세계에만 존재해. 내가 여기에 돌아오는 이유야. 이 세계는 나에게 가혹하고 매정했지만, 그래서 너무 무섭지만 떠날 수가 없어.네가 여기에 있 으니까. 희진아, 너는 엄마에게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세계야.”
p.176 “다르지 않아. 우리는 모두 여러 세계를 살아. 그리고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도 모든 세계를 공유할 순 없어.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해."
뭐든지 알아서 척척 잘하는 모범생 희진이는 세상과 단절하고 텔레비전만 붙잡고 사는 엄마와 둘이 지낸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지만 집안에서는 엄마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역할을 하니 어딘가 완벽한 듯 완벽하지 않은 공허한 느낌을 주는 관계성이 있었다.
이러한 희진이와 엄마의 나름의 규칙적 관계성과,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균열은 엄마가 텔레비전을 통해 다른 세계로 왔다 갔다 하면서 그것을 희진이에게 들키고 나서부터 깨지기 시작하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다른 세계를 왔다 갔다 한다는 멀티버스 세계관, 평행이론을 통해 SF 소설 같으면서도, 우리의 현실 속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어 더욱더 희진이와 엄마, 그리고 그 안의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해 몰입이 잘 되었다.
책의 초반부와 중반부에는 희진이의 엄마가 엄마로서 역할을 잘 못하고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엄마도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자기의 삶보다는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면서도 더 큰 삶을 개척해나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러 세계를 살아. 그리고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도 모든 세계를 공유할 순 없어.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해.’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모두가 각자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한 곳 일 수도 있고 여러 곳일 수도 있다.
그 세계라는 것이 진짜 희진이 엄마처럼 멀티버스 세계관이 있어 물리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개념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포괄적으로 서로의 인간관계,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