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의 백합 을유세계문학전집 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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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첫째 날---  모성애의 결핍이 심한, 스무살을 갓 넘친 청년이 어떤 부인에게 푹 빠져들고 있다. 이런 이야기 계속 읽을 만한지 어쩐지...의심스러워 잠깐 책을 덮었다. 플로베르에 비하면 발자크의 문체는 상당히 빨리 써졌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기보다는 풍성하게 장식하고 남김없이 드러내는데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사람의 내면이라는 것이 명료하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런 장황스러운 문체는 자꾸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그가 묘사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그의 안목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발자크의 체험이 많이 녹아 있어 보이는 소설이다. 주인공 펠릭스는 파티에서 만난 어떤 부인의 어깨가 아름다워서 무의식 중에 키스를 하고 말았고, 그 부인에게 신성한 사랑을 느낀다. 철없게도 보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남자에게 이런 사랑이란 예정된 수순이다 싶어서 동정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계속 읽을지 말지는 결정하지 못하겠다.


독서 둘째 날---드디어 펠릭스는 모르소프 백작 부인(앙리에뜨)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부인은 우정 이상의 선을 넘지는 않았다.앙리에뜨는 희생 정신과 도덕심이 무척 강한 여자였는데, 인생은 그것을 증명해 보라는 요구라도 하듯 그녀에게 가혹했다. 어머니는 냉정했으며, 남편은 신경질적인 사람이었고, 두 아이는 병약했다. 앙리에뜨가 얼마나 지쳐있는지와, 이런 심적 고통을 나눌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펠릭스 군의 열정이 그녀에게 얼마나 매혹적인 것이었을지..... 

독서 셋째 날 - 모르소프 백작 부인의 인내와 자기 훈련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모르소프처럼 발작적인 남편의 갖가지 폭력을 감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늘 두둔하고, 치켜 올려주며 아이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도록 신경쓴다. 병약한 아이들을 늘 정성스레 간호하면서도,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집안의 재산도 현명하게 관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늘 호의적으로 대한다. 정말 지혜롭고 현숙한 여성이다. 철없는 펠릭스에게도 늘 한결같은 호의와 거리감을 가지고 대한다. 펠릭스에 대해서 그녀로서는 마음의 선이 넘어간 적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늘 정숙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본인의 경건함이나 의지로 미루어볼 때, 탈선의 위험이 없고, 순결한 우정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남자에게 이런 류의 사랑이 얼마나 치명적일지 가늠할 수 있다면, 모르소프 백작 부인은 아예 싹부터 잘라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르소프 백작 부인의 고행 같은 일상을 생각하면, 놓치기 싫은 우정이었을 것이다.


독서 넷째 날 - 펠릭스는 모르소프 백작 부인의 전적인 지원으로 파리 사교계에 진출하게 된다. 국왕의 신임을 받아 세상 사람들에게 경의를 받는 멋진 청년이 된다. 심지어는 어릴 때부터 펠릭스를 무시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던 그의 식구들까지 태도를 바꾼다. 이게 성공의 위력인가 보다. 가족들의 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펠릭스의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다만, 모르소프 백작부인과의 편지 왕래가 그의 기쁨이고 삶의 이유이다. 펠릭스가 성공하여, 모르소프 백작 부인을 방문했을 때, 그녀가 보인 불안을 보니 그녀도 얼마나 펠릭스에게 의지하고 빠져있는지 충분히 알겠다. 가여운 앙리에뜨..당신은 경건하고 훌륭한 여성이기도 하지만, 또 연약한 여성이기도 하지... 가여운 모르소프 백작, 부인이 당신보다 몇 백배나 훌륭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에게 난폭하게 굴지. 그녀에게 자상하게 굴었다면, 그녀가 저렇게 외로워서 우정을 갈구하지 않았을텐데... 당신이 제일 가여워... 여자에게는 훌륭한 남자를 남편으로 모시고 싶은 로망이 있다. 그의 훌륭함을 위해서라면, 일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어떤 숭고한 사명감이 있다. 모르소프 백작 부인이 자기 남편을 보면서 한정없이 지치는 것도, 엄정한 국정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펠릭스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얼마나 모순덩어리로 여겨졌을 상황인가. 무능하고 공격적인 남편과 경건하고 훌륭한 부인....


독서 다섯째날 -  그렇지만, 백작 부인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는 것일까.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인내하는 경우,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백작이 미치광이처럼 굴어도 부인이 스폰지처럼 다 받아주었던 것이 정녕 지혜롭기만 한 일이었을까? 펠릭스조차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인내는 숭고합니다. 그러나 그게 당신을 우둔하게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요? 그러니 당신과 어린애들을 위해 백작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도록 하세요. 나무랄 데 없는 당신의 마음씨가 그 사람의 이기주의를 키워 준 거예요. 당신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위해 너무 위해 주기만 해서 잘못 기르는 것처럼, 백작을 잘못 다루었던 거예요(171쪽)
고리오 영감이 딸들에게 지나치게 헌신적이었던 것처럼, 백작부인도 남편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사람은 때로는 상대방에게 거울 역할을 해 줄 필요가 있다. 백작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괴로움을 주고 있는지 알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서 여섯째 날  - 혈기왕성한 청년이 정신적인 사랑으로만 어찌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아주 능숙한 유혹자가 있을 때에는 빠져들기 쉬웠을 것이다. 매혹적이고 남자를 잘 다룰 줄 아는 더들리 부인(아라벨)은 본인이 느끼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펠릭스를 확 쥐어버렸다. 그 소문이 모르소프 백작 부인에게 들어갔고, 펠릭스는 사과하러 백작부인을 방문한다. 집요한 아라벨은 거기까지 동행을 한다. 펠릭스의 배신 행위로 백작부인의 내면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라벨 부인에 대한 질투, 자신이 힘들게 지킨 정숙함에 대한 회의, 신에 대한 죄책감이 복잡하게 펼쳐진다. 자신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이상적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종종 성경을 읽을 때 끔찍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령 예를 들자면
고린도 전서 7장 -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고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라는 대목 말이다. 마치 낭만적 사랑이나 분별력과 고상함에 대한 믿음은 하나도 없는 듯한 저 명령은 어찌나 삭막하게 들리던지... '인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모르소프 백작부인보다 사도 바울이 좀더 현명하고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겠다. 사람이란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정도에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백작부인은 살아온 삶 내내,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살아왔으니,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거리감을 지키며 펠릭스를 가까이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약한 인간이라고 늘 말은 하면서도, 그 정도를 감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진정한 현실주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독서 일곱째 날 -- 앙리에뜨의 소원으로 두 여인은 만나게 된다. 앙리에뜨는 펠릭스의 누이나 어머니 같은 태도로, 아라벨을 만나려 하지만, 아라벨은 그녀의 도덕심이 펠렉스를 매료시켰다면,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는 둥 펠릭스를 휘어 잡는다. 펠릭스를 신과도 같이 대하는 아라벨의 태도를 펠릭스는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을 향해 찬송가를 부르는 불쌍한 사람이란 어찌나 강력한 유혹일는지...  파리로 돌아온 후, 펠릭스는 점점 더 아라벨이 주는 환락에 빠져들고 사회적 명망도 잃어간다. 차분하고 맑은 앙리에뜨의 사랑에 비해 그녀의 사랑은 이중적이고 자기 충족적이었으므로, 펠릭스는 점점 더 앙리에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위했는지를 깨달아간다. 국왕에게 휴가를 받아 앙리에뜨에게 달려가지만, 그녀는 이미 임종을 앞두고 있을 만큼 쇠약해진 상태였다.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병이었다. 앙리에뜨는 쇠약한 육체로 인해, 전혀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펠릭스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고 만다. 충격적이었다. 저것이 앙리에뜨의 내면이었단 말인가. 어린애처럼 자신의 욕망만을 고집하는....  그런 착란도 잠시 후에 가라앉고, 그녀는 고귀하고 아름답게 임종을 맞는다. 앙리에뜨의 내면이 복잡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야 했지만, 죽음 직전에 펠릭스에게 쓴 편지를 읽고 울 뻔했다. 앙리에뜨가 첫키스 때부터 얼마나 펠릭스에게 빠져들었는지, 빠져들어가는 마음을 제어하려고, 순수하게 그 마음을 지키려고 얼마나 내면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렀는지... 그 전투는 죽음을 불러올 정도로 치열한 것이었는지 편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사랑의 갈등과 죄책감이란 것이 죽음을 불러올만큼 사람을 흔드는 것이지...


책을 덮고 나서
-- 

1. 앙리에뜨는 연약하고 훌륭한 여성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갖은 감정들을 모두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차가워져야겠다 . 앙리에뜨의 순진함을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순수는 쉽게 위험에 빠진다. 순진하고 착한 28살의 앙리에뜨가 젊은 청년의 감각적 충동과 그 표현인 키스를 그 나이의 철없는 청년이 저지를 수 있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영혼이 흔들리지는 않았을 텐데....  인간의 본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사고했더라면, 펠릭스를 그렇게 가까이 두지 않았을텐데..... 순진함이나 순수함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인간의 악덕을 간파하는 눈을 가진 사람을 더 만나고 싶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서로를 해치지않는, 진정한 배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2. 이 책은 '나탈리'라는 펠릭스의 새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나탈리가 펠릭스에게 보내는 결별의 편지가 가장 마지막에 첨부되어 있는데, 내 눈에는 나탈리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여성이 아닌가 싶다. 펠릭스의 두 여자 이야기(앙리에뜨와 아라벨)를 듣고 나서, 이 남자를 파악해 버렸다. 사랑할 만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한 없이 어린 몽상가라는 것을.... 

3. 발자크가 훌륭한 작가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의 문체는 지나치게 장식적이서 깔끔하지 않았지만, 앙리에뜨가 겪었던 고뇌의 일반성을 생각할 때, 이런 인간형을 그려낸 것은, 그 작가로서의 소명을 다한 것이다. 세월의 신산을 견디고 어떤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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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ch (Paperback + CD 1장 + 테이프 1개) - 문진영어동화 Best Combo 2-7 (paperback set) My Little Library Set 1단계 45
팻 허친스 지음 / Scholastic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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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아이도 무조건
큰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읽어도, 골리앗이 더 좋다고 한다.
이유는 키도 크고 힘세 보이기 때문이란다.
남자아이들에게 힘이란 어쩔 수 없는 로망인가 보다.^^

그런 애가 이런 책을 좋아할 줄 몰랐다.
5살인 큰애가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한 자리에서 대여섯 번은 읽어줘야 하는데,
나도 이 책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고역스럽지 않다.

티치는 너무나 작은 아이이다. 그의 누이 메리와 형 피터와 비교해 볼 때,
자기와 자신의 물건은 왜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티치가 가진 작은 씨앗이
누나나 형보다 더 크게 자란 일 때문에, 티치는 깨닫게 된다.
큰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Bigger doesn't mean Better~!!


내 아들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크기에 대한 로망을 조금 버렸다.
무조건 큰 것이 좋다고 우기면,
내가 바로 '티치는 어땠어?'라고 말하면^^
바로...크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고 꼬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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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ch : Tape for Paperback (Tape 1개, 교재 별매)
팻 허친스 지음 / 문진미디어(외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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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아이도 무조건
큰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읽어도, 골리앗이 더 좋다고 한다.
이유는 키도 크고 힘세 보이기 때문이란다.
남자아이들에게 힘이란 어쩔 수 없는 로망인가 보다.^^

그런 애가 이런 책을 좋아할 줄 몰랐다.
5살인 큰애가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한 자리에서 대여섯 번은 읽어줘야 하는데,
나도 이 책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고역스럽지 않다.

티치는 너무나 작은 아이이다. 그의 누이 메리와 형 피터와 비교해 볼 때,
자기와 자신의 물건은 왜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티치가 가진 작은 씨앗이
누나나 형보다 더 크게 자란 일 때문에, 티치는 깨닫게 된다.
큰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Bigger doesn't mean Better~!!


내 아들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크기에 대한 로망을 조금 버렸다.
무조건 큰 것이 좋다고 우기면,
내가 바로 '티치는 어땠어?'라고 말하면^^
바로...크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고 꼬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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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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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8년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벌인다. 모든 대학이 휴교하고 '젊은 지식인들'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서 농촌으로 추방되었다. 이 역사적 사건의 희생양이었던 다이 시지에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지식인 계급 취급을 받아 농촌으로 재교육 받으러 온 두 청년과 산골 소녀가 나눈 사랑 이야기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거기 나오는 프랑스 소설들의 역할이 지대하게 크다. 오죽하면 제목에도 '발자크'가 등장하겠는가....

2. 중국 사람들을 대하면 대할수록 놀랍기 그지 없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화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부터 마오쩌둥 같은 실제 인물에 이르기까지 참...평범하지 않다. 사람들이 참 극단적인 데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무식해 보이는 행동을 그렇게 용감하게 감행할 수 있을까. 마오쩌둥의 이 전대미문의 기행을 읽으며, 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는데, 정말이지 끔찍할 것 같다. 누구는 천국이란 대형 도서관일 거라고까지 하지 않았는가. 책이 없으면, 인생의 권태와 불안과 고독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란 말인가. 책은 단지 지식인들의 전유물인가? 마오쩌둥은 왜 그렇게 지식인을 미워했던 걸까. 이 소설의 말미에는 바느질 소녀가 발자크 소설의 영향 때문에 도시로 가려고 가출하는 대목이 나온다. 소설을 통해 소녀를 개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청년은 정작 소녀가 개화(?)되어 자신을 떠나버리니, 책을 불태운다. (분서는 중국의 뿌리 깊은 전통인가?^^) 마오쩌둥이 이 광경을 봤더라면, "봐라, 이런 지식이란, 인민들을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야'라며 잘난체를 했겠지?

3. 소녀가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다" 하하하...그 보물이 산골에서 썩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마담 보바리가 수도원에서 읽었던 수많은 책들은 아마도 하이틴로맨스 류의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 책들은 그녀에게 욕망을 일깨우고, 욕망을 틀지운다.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욕망으로 그녀는 결국 파멸하게 된다.  그런 독서라면,  마오쩌둥처럼 원천봉쇄를 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하이틴 로맨스 류의 독서가 주는 해악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 비현실적인 낭만은 소녀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느질 소녀에게 발자크 소설은 어떠했을까. 발자크의 소설도 욕망에 대해 다룬다. 바느질 소녀가 발견한 것처럼, 남자들은 여자의 미모 앞에서 순식간에 평생의 사랑을 다짐하고, 그 미모는 갖가지 욕망과, 결투와, 분쟁과, 정념을 낳는다. 바느질 소녀는 그런 풍속도를 보고, 자신이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물론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 앞에서 약하다. 단지 독서가 인간이 어떤 약점을 가졌는가를 알게 해주는데 그친다면....?  중국인 소녀는 도시에 가서 어떤 삶을 살까.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떻게 발휘하며 살게 될까.. 가진 것 하나 없는 미모의 소녀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도시에서 살아나가는 것은 어떤 삶일지....예쁜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나서, 소녀가 하이틴로맨스류의 책을 읽은 것처럼 멍청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발자크가 충실하게 보여준 인간과 사회의 속살들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더란 말인가. 어제 한 지인이 독서만으로는 위험하다.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아집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백번 지당한 말이다. 
  



4. P가 그 나이 남자들의 아주 미묘한 심리를 아주 잘 잡아낸 소설이라고 극찬했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대해 어떤 여학생은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거기 나오는 소녀의 외모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희고 가냘프고 병약한 소녀는 튼실하고 우람한 체격을 가진 자신과는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더 화가 났을 것이다. ^^  "이런 소설을 교과서에 실어 놓으니, 여자애들이 내숭을 더 떨고, 외모 지상주의가 더 판치는 거라구요."라며 씩씩거렸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어떤 여학생들이 '피부를 더 희게 가꾸어야겠군'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우스운 일이겠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그런다는 것이다.^^ 중국인 소녀의 독서도 그러했을까...  단지 그러하기만 했을까.....? 독서를 통해 우리는 뭘 발견해야 하는 걸까. 인간의 약점을 알았다고 하자. 그 다음은? 그것을 이용해 비익을 얻는 것? 그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5. 책을 통해, 세상을 알고 타자를 알았으면, 나 자신도 알아야 할 것이다. 어제도 바느질을 하며 살았고, 오늘도 바느질을 하며 살고, 내일도 바느질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어제의 바느질과 오늘의 바느질이, 오늘의 바느질과 내일의 바느질이 다른 의미를 갖도록 하며 살 수 있는 힘.... 그것이 독서를 통해 가져야 할 힘은 아닐까... 책에 나오는 이 대목은 독서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안경잡이'의 가방에는 네 권으로 된 '장크리스토프'전집의 제1권만 들어 있었다. 그 작품은 한 음악가의 생애에 관한 것이었는데....나는 장난 삼아 연애한다는 기분으로 그 책을 대강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그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대개 재치가 넘치고, 때로는 재미있는 사상으로 구성되거나 깜짝 놀랄 정도로 기발해서 평생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단편집들이었다. 나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장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비속함도 없이 철저한 개인주의를 그린 '장크리스토프'는 내게 새롭고 유익한 사실들을 듬뿍 가르쳐 주었다. 그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개인주의라는 것이 그토록 탁월하고 폭넓은 것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나의 빈약한 머리로는 한 개인이 전세계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장난 삼아 시작한 연애가 위대한 사랑으로 바뀌었다. 작가가 사용한 돠장된 허풍조차 작품의 아름다움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수백 페이지의 거친 강물이 나를 집어삼켰다. 내게 있어서 그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책이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침범할 수 없는 개인적인 삶도, 세상도 더 이상 이전의 세상과 같지 않았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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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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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만큼은 아니었지만, 약간 흥분되는 책을 만났다. 책을 읽게 해 주는 책이다. 
모든 단편이 대표작 '위험한 독서'의 초반부처럼 흡인력이 있지는 않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나도 좀더 자유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위험한 독서」- 독서에 관한 조언들이 많았는데, 모두 마음에 들었다.

독서를 통해 당신이 발견해야 하는 것은 교묘하게 감추어진 저자의 개인사나 메시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니까. (16쪽)

독서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태도'다....현명한 독자가 되고 싶다면 독서를 통해 교훈 따위를 찾아낼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라. 독자로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니.(21쪽)
 
초보적인 독자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는 책의 주인공과 저자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독서법의 폐해는 정답을 찾기 위해 교사의 눈치를 보는 학생처럼 저자의 권위에 짓눌린 나머지 책 속에 자신을 내던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경험인가, 저것은 작가의 상상인가.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은 당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의식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읽어내지 못했다. (22쪽)

성격은 딜레마의 순간에 내리는 선택을 동해 드러난다....자신을 빼닮은 책 속의 인물에 대한 피상담자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처음 본 아이처럼 신기해하며 위안을 얻거나 새로 산 것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맞닥뜨린 것처럼 불쾌해하거나. 동일시는 자기 연민을 낳고 소외는 자기 부정을 불러온다. (26쪽)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가끔은 일상 전체가 맥도널드화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정확히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게 될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일주일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심한 권태에 빠질 때가 있다. 그리고 무엇을 향한 것인지도 모를 테러의 욕구가 생긴다. 맥도날드를 사수해야 하는 것은 일상을 사수하는 것일 테지만, 그것이 맥도널드여서 또, 테러를 하고 싶어진다. 나는 테러 쪽에 가담할 것인가, 사수 쪽에 가담할 것인가. 

이를테면 우리 집의 의사소통과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연애가, 심지어 남자친구의 성욕마저도 맥도날드화된 것이다. 강요된 결과가 아니었기에 그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58쪽)



 



「천년여왕」- '아내'라는 등장 인물은 참 신비하고 눈이 부신데, 하는 말마다 명문이다.

당신이 고독을 느끼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80쪽)
한때의 어리석음을 연애라 한다죠? 그 흔한 한때의 어리석음을 끝장내기 위해 결혼이라는 기나긴 어리석음을 시작하겠다는 건가요?(86쪽)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명예의 근거로 삼아야 해요(93쪽)



 



「게임의 규칙」- 영재도, 야구도, 평범함이라는 행복도 나에게는 낯선 것이라,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수진을 보고 있으니, 몸이 떨린다.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 사람의 마음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수진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도 그것을 아주 하찮게 여겼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도 얼마나 우습냔 말이다. 남편을 향한 살의든, 나를 향한 살의든, 살의를 품게 된다. 허위를 보며 사는 것보다는 변해 가는 마음을 보며 사는 것이 낫다. 변해 가는 마음을 보며 사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수진은 끝끝내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누구와고도 나눌 수 없는 환상과 더불어 늙어갈 뿐일 것이다. 너무 일찍 어른스러웠던 수진은, 그래서 누구나 겪어야 할 실패를 피해가려 했던 수진은, 이제 끝끝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종종, 공중관람차를 타고 한바탕 울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신혼여행지로 가는 비행기에서 새삼 깨달은 수진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은 빨리 늙어버리는 것이었다. 늙어버리면 열정적 사랑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141쪽)

열정적 사랑은 찰나의 것이지만 영원을 보여주기 때문에 위험하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눈을 감는 것은 영원에 눈멀까 두렵기 때문이다. 찰나의 영원을 맛보고 남은 생을 적막에 사느니 적막 속에 살며 평생 영원을 꿈꾸는 편이 낫다. (162쪽)

세계의 어디선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자신을 향해 걷고 있으며 자신을 향해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울음을 떠뜨렸다. 수진이 탄 캐빈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맨 아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울음을 그쳐야 한다는생각뿐이었다. 옛적의 빛이 어느 순간 꺼져버렸듯 남편에 대한 살의 또한 어느덧 사라져버렸다. 세월이 수진에게 남긴 건 공중관람차에서 곱씹을 추억과 추억을 떠올리며 울 수 있는 자유뿐이었다. (164쪽)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무엇이든 빌려 줄 수 있는 사이트라...매혹적인 소재이다. K는 너그러움을 대여했고, '나'는 고독을 대여했다. 나도 대여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싫어한다. 바퀴벌레 때문이다. 바퀴벌레가 없다면, 웃돈을 상당치 치르고 집을 살 용의가 있다. 그 다음 싫은 것이 달팽이이다. 그 미끈거림이 정말 끔찍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 생태도 기이하고, 또 미끈거림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더욱 끔찍해진다. 남자에게 벌이가 없어서, 아내에게 이상한 돈벌이(대리모)를 시켜야 하는 신세란 달팽이를 삼키는 것보다도 더 구역질나고 비릿한 그 무엇이리.



「황홀한 사춘기」- '나'는 이혼한 부모 중에서 바람을 피운 아버지 쪽을 선택한다. 왜였을까? 동정심?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이해했던 것일까?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당황케 했고 그럴수록 타인의 시선에 진땀을 흘렸다. 그는 하루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랐다. 그에게 늙는다는 것은 타인들이 생각보다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는 자명한 진리를 깨우칠 정도로 현명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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