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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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만큼은 아니었지만, 약간 흥분되는 책을 만났다. 책을 읽게 해 주는 책이다. 
모든 단편이 대표작 '위험한 독서'의 초반부처럼 흡인력이 있지는 않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나도 좀더 자유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위험한 독서」- 독서에 관한 조언들이 많았는데, 모두 마음에 들었다.

독서를 통해 당신이 발견해야 하는 것은 교묘하게 감추어진 저자의 개인사나 메시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니까. (16쪽)

독서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태도'다....현명한 독자가 되고 싶다면 독서를 통해 교훈 따위를 찾아낼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라. 독자로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니.(21쪽)
 
초보적인 독자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는 책의 주인공과 저자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독서법의 폐해는 정답을 찾기 위해 교사의 눈치를 보는 학생처럼 저자의 권위에 짓눌린 나머지 책 속에 자신을 내던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경험인가, 저것은 작가의 상상인가.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은 당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의식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읽어내지 못했다. (22쪽)

성격은 딜레마의 순간에 내리는 선택을 동해 드러난다....자신을 빼닮은 책 속의 인물에 대한 피상담자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처음 본 아이처럼 신기해하며 위안을 얻거나 새로 산 것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맞닥뜨린 것처럼 불쾌해하거나. 동일시는 자기 연민을 낳고 소외는 자기 부정을 불러온다. (26쪽)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가끔은 일상 전체가 맥도널드화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정확히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게 될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일주일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심한 권태에 빠질 때가 있다. 그리고 무엇을 향한 것인지도 모를 테러의 욕구가 생긴다. 맥도날드를 사수해야 하는 것은 일상을 사수하는 것일 테지만, 그것이 맥도널드여서 또, 테러를 하고 싶어진다. 나는 테러 쪽에 가담할 것인가, 사수 쪽에 가담할 것인가. 

이를테면 우리 집의 의사소통과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연애가, 심지어 남자친구의 성욕마저도 맥도날드화된 것이다. 강요된 결과가 아니었기에 그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58쪽)



 



「천년여왕」- '아내'라는 등장 인물은 참 신비하고 눈이 부신데, 하는 말마다 명문이다.

당신이 고독을 느끼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80쪽)
한때의 어리석음을 연애라 한다죠? 그 흔한 한때의 어리석음을 끝장내기 위해 결혼이라는 기나긴 어리석음을 시작하겠다는 건가요?(86쪽)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명예의 근거로 삼아야 해요(93쪽)



 



「게임의 규칙」- 영재도, 야구도, 평범함이라는 행복도 나에게는 낯선 것이라,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수진을 보고 있으니, 몸이 떨린다.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 사람의 마음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수진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도 그것을 아주 하찮게 여겼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도 얼마나 우습냔 말이다. 남편을 향한 살의든, 나를 향한 살의든, 살의를 품게 된다. 허위를 보며 사는 것보다는 변해 가는 마음을 보며 사는 것이 낫다. 변해 가는 마음을 보며 사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수진은 끝끝내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누구와고도 나눌 수 없는 환상과 더불어 늙어갈 뿐일 것이다. 너무 일찍 어른스러웠던 수진은, 그래서 누구나 겪어야 할 실패를 피해가려 했던 수진은, 이제 끝끝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종종, 공중관람차를 타고 한바탕 울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신혼여행지로 가는 비행기에서 새삼 깨달은 수진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은 빨리 늙어버리는 것이었다. 늙어버리면 열정적 사랑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141쪽)

열정적 사랑은 찰나의 것이지만 영원을 보여주기 때문에 위험하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눈을 감는 것은 영원에 눈멀까 두렵기 때문이다. 찰나의 영원을 맛보고 남은 생을 적막에 사느니 적막 속에 살며 평생 영원을 꿈꾸는 편이 낫다. (162쪽)

세계의 어디선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자신을 향해 걷고 있으며 자신을 향해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울음을 떠뜨렸다. 수진이 탄 캐빈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맨 아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울음을 그쳐야 한다는생각뿐이었다. 옛적의 빛이 어느 순간 꺼져버렸듯 남편에 대한 살의 또한 어느덧 사라져버렸다. 세월이 수진에게 남긴 건 공중관람차에서 곱씹을 추억과 추억을 떠올리며 울 수 있는 자유뿐이었다. (164쪽)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무엇이든 빌려 줄 수 있는 사이트라...매혹적인 소재이다. K는 너그러움을 대여했고, '나'는 고독을 대여했다. 나도 대여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싫어한다. 바퀴벌레 때문이다. 바퀴벌레가 없다면, 웃돈을 상당치 치르고 집을 살 용의가 있다. 그 다음 싫은 것이 달팽이이다. 그 미끈거림이 정말 끔찍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 생태도 기이하고, 또 미끈거림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더욱 끔찍해진다. 남자에게 벌이가 없어서, 아내에게 이상한 돈벌이(대리모)를 시켜야 하는 신세란 달팽이를 삼키는 것보다도 더 구역질나고 비릿한 그 무엇이리.



「황홀한 사춘기」- '나'는 이혼한 부모 중에서 바람을 피운 아버지 쪽을 선택한다. 왜였을까? 동정심?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이해했던 것일까?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당황케 했고 그럴수록 타인의 시선에 진땀을 흘렸다. 그는 하루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랐다. 그에게 늙는다는 것은 타인들이 생각보다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는 자명한 진리를 깨우칠 정도로 현명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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