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는 모습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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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읽는 재미가 있다. 단편소설도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완전히 다르다. 시는 감상하고 느끼는 재미가 있고, 좀 더 많은 능동적인 참여를 나에게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의무처럼 보여지는 권리다. 이 권리를 사랑하게 될 때 시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리같은 의무로 이 시를 봤다. 이 책에는 작은 책이 덧붙여 왔는데, 읽지 않았다. 시를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거기에 어떤 편견을 줄 사전 지식은 뱀의 팔 같은 것이다. 그리고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다. 번역자에 따라 시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자가 쓴 시를 남자가 번역하고, 남자가 쓴 시를 여자가 번역하면, 아무래도 그 시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종족이다. 남자의 삶과 여자의 삶 속에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대화하지만, 서로 그 뜻이 뭔지 모르고 방언처럼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방언으로 대화할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시에서는 작가의 사랑, 가족, 연민, 그리고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드러난다. 이혼을 한 것 같고, 언니가 일찍 죽었고, 아이가 일찍 죽은 것 같다. 남편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아픔 등도 느껴진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시 앙네서, 시 안에서 보여지는 시의 주인공에게서 느껴지는 일관된 느낌이 그렇다. 얼핏 이 책에 대해 설명하는 글 중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는데, 사실 죽음에 대한, 관련된 시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몇 번 읽다 보면 작가의 시풍이 그려진다. 때로 보이는 멋진 표현들은 한번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반부로 가면 적나라한 성적 묘사들이 나온다. 꽤 성적인 시들이다.

시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쓰여진 문학이 어떻게 노벨문학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시에 대한 평가는 소설과 다르고, 그 평가의 폭은 사람수만큼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문학상에? 그것도 자국이 아닌 수많은 문화들이 부딪치는 세계적인 문학상에? 시는 문학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시 속에서 세상을 구원할 힘을 발견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시도가 무식하고 어이없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처럼, 시는 인간의 영역에서 평가될 문제가 아니다. 각자 하나 하나의 개인이 평가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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