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 영화로 읽는 ‘무진기행’,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 ‘안개’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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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고 막연한 희망과 환상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삼켜 버려 존재하지 않는 듯한, 소리도 묻히고 빛도 잠겨 모든 것을 막고 질식시켜 버리는 듯한, 안개는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한 소외로 우리를 모든 것에서 격리시켜 버린다.

그래도 항상 안개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안개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시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안개를 대할 때 막연함과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조금은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안개와 눈. 이 둘은 비슷한 감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안개라는 영화는 김승옥이 65년도에 발표한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현대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소설이다. 읽다 보면 머리속으로 안개가 가득한 곳, 무진이 그려진다. 소설을 쓴 김승옥이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화한 것이 바로 이 영화 안개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에, 그러니까 40년 정도 즈음에 이 영화를 얼핏 티비에서 본 기억이 있다. 다른 장면은 기억이 안 나는데, 영화의 첫 장면, 그러니까 주인공이 회사에서 업무를 보던 그 장면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왜 그 장면이 기억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중요한 장면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무진기행을 다시 읽으면서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다시 찾아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영화를 간직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초반부, 버스 안의 풍경에서, 김승옥 자신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있는 점이다. 책에서 김승옥 사진을 본 후에, 영화에서 똑같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당시 최고의 배우인 신성일, 윤정희가 나온다. 윤정희는 지금 봐도 미인이다.

그런데, 각본집이라 하지만, 사실 영화와 비교하면 상당 부분이 다르다. 처음에는 다른 영화의 대본이 아닌가 해서 헷갈려 인터넷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김수용의 안개는 이 작품 하나 밖에 없으니, 이 영화의 각본이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처음에 시작하는 롱테이크의 안개 장면이나 서울의 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은 각본 자체에 들어있지 않다. 그리고 영화는 과거와 회상하는 부분들도 나오지만, 각본에는 그런 장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본집이라 해도, 영화와 너무 상이하니 이걸 각본집이라 할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각본과 너무 다르다. 각본은 플롯이 단순한 감이 있는데, 아마 감독이 영화에 역동성을 주기 위해 새롭게 편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각본대로 만들었다면 영화는 더 단순해졌을 것이다. 아뭏튼 영화를 보지 않고, 이 각본만 읽는다면 여러가지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히 있겠다.

과거의 모든 영화들이 이랬을까? 쪽 대본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그 자리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장면이 있었을까? 여러가지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대본집이다. 훌룡한 재산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겠지만, 영화와 너무 달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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