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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평점 :
쾌락이라는 말처럼 오용될 수 있는 단어도 별로 없겠다.
왜 처음에 에피쿠로스의 주요 사상을 쾌락이라는 말로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쾌락 대신에 기쁨, 명징, 즐거움 등 좀 더 부드러운 말로 표현했다면, 에피쿠로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범하는 쾌락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상당부분 풀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것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한 것이지 변명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올바른 제목은 변명이 아닐 변론이다. 이 부분은 수정되야 맞다고 본다.
무튼,
이 책은 에피쿠로스의 여러 글들을 발췌해서 묶은 글이다.
에피쿠로스의 책 자체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서, 책 자체가 가볍기도 하지만, 이것 만으로도 에피쿠로스가 갖고 있는 행복에 대해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윤리철학적인 부분, 그러니까 윤리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당시 견유학파, 그리고 스토아학파와도 대립관계에 있었다. 서로 간에 오해와 불신이 싹트고 있어서, 서로를 헐뜯는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 후세로 오면서 다양한 구설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소문들 속에서 진실은 무엇인지를 캐치해 내는 것이 근대 이후 연구자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에피쿠로스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저작만으로도 그에 대한 많은 소문들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쾌락과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말하는 게 좋겠다.
에피쿠로스의 중요 윤리적 가르침은 이렇다.
. 축복받은 불멸의 존재는 분노나 호의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분노나 호의는 약한 존재에게마 있는 것이다. - 여기에서 니체의 사상과 비슷함을 느낀다. 니체는 분명 에피쿠로스 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쾌락이 있는 곳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고통이 없다. - 즉, 쾌락은 있음이 아닌 없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로 쾌락을 이해한다. 있는 것이 아닌 없는 것, 존재가 아닌 부존재가 결국은 진리로 가는 길이 되는 셈이다. 쾌락은 얻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이 부분은 깊이 성찰해 볼 맛이 있다. 없음의 소중함.
. 쾌락의 삶은 사려깊은 삶, 배려있는 삶,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이다. - 즉, 쾌락은 인간과 관계된다. 자기만의 삶이 아니라 사람들고 더불어 어울리며 그 속에서 쾌락을 발견하는 것이다. 배려, 사려, 정의는 개인주의에서는 나올 수 없는 단어이다. 조용한 곳에서 사는 게 좋지만 그래서 사람들간의 관계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이다.
. 육체적인 결핍에서 벗어나 고통이 제거된 상태가 아포니아, 정신적인 두려움이 제거된 상태가 아타락시아(평정심)이다. 육체의 쾌락은 육체적 고통의 부재, 마음의 쾌락은 평정한 상태, 고용한 상태가 된다. 도덕경의 도에 근거한 마음가짐과 비슷하다.
. 일생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 또는 우정을 얻어야 한다.
에피쿠로스 생전에는 스토아 학파의 여러 철학자들과 마찰을 많이 빚었던 것 같다. 각자 자신의 학파의 우수성을 내세우기 위해 반대편을 몰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200여 년 뒤의 세네카는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일련의 서신에서 시종일관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들려주고 있다. 학파를 떠나 여러 철학자들에게 존경을 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에게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여 생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고대의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면 깨닫는 게 있다. 바로 고대나 지금이나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고대에 이미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고, 그것들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적으로는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성찰적인 측면에서는 비슷한 수준을 이어 오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축복일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