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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 그림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길
장요세파 지음, 김호석 그림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처음에 이 책을 고를 때는 어느 한 수녀원의 에세이에 한 화가의 그림이 덧붙여지는 에세이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보니 아니다. 오히려 김호석 화가의 그림이 주가 되고, 그 그림에 수녀께서 성찰을 통해 그림을 보며 그 감상을 담담히 그려낸 책이다.
수녀라는 특수한 위치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자리이다. 대부분은 신에 대한 묵상이겠지만, 신에 대한 묵상은 결국 삶에 대한 묵상이고 인간관계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인 셈이다. 다만 신이라는 존재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일 뿐, 결국은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한 성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에 비해 성찰의 깊이가 더 깊을 수 밖에 없다. 처음에 이 책을 고를 때의, 성직자가 갖는 삶에 대한 성찰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될 것 같다.
머리글에 나오는 수도 생활 초기에는 모든 것이 뒤집혀 올라온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초기라는 그 첫 시련의 순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자신에게 쏟아져 내릴지는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순간을 잘 견뎌내고 이겨낸 분들이 올바른 수도의 길로 갈 수 있으리라.
수녀님의 그림에 대한 평은 담담하다. 그리고 그 담담함 속에 삶에 대한 깊이가 녹아 있다. 많은 수련을 쌓았음을 나름 알 수 있겠다.
특히 첫 번째 그림에 대한 설명이 좋았다. 수녀님은 화가가 그림을 그린 목적에 대해 제대로 요점을 파악하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가 오랫동안 일을 같이 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그림도 좋지만, 그에 대한 수녀님의 해석 또한 순수해서 좋다. 사실 그림은 그림이고 해설은 해설이다. 작품과 작품에 대한 해석은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이다. 그 누구도 화가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온전히 이해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을 대하는 나의 마음, 나의 마음의 변화나 감흥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도 좋지만 그에 대한 해석도 마음에 든다. 그러다 보니 상승작용으로 더 마음에 드는 그림이 되는 것같다.
종점없는 여행이라는 꼭지에서 보이는 설명은 그림과는 다른 것 같다. 아마 다른 그림인 것 같다. 글에서는 다문 입, 흔들리지 않는 눈매 등을 말하는데 그림에는 얼굴을 생략하고 달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