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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질문 -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20년 2월
평점 :
이병철 회장이 남긴 24개의 종교적 질문은 원칙적인 질문들이다. 노령에 병석에 있으면서 이런 질문들을 제기했는데, 사실 이런 질문들은 좀 더 젊었을 때에 자기만의 답을 얻고, 그 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영성으로 경작해서 좀 더 성숙한 신앙이 되야 했다. 죽음을 앞둔 노년에어울리는 질문이 아니다. 노년에는 구원,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실천 등 좀 더 삶 속에서 신앙이 생동하고, 자기만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면서,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담대히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메멘토 모리를 보고 난 후에 좀 더 이 내용을 깊이 있게 성찰하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병철의 질문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미리 책을 사 놓았지만 아직까지 읽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이어령 교수의 글을 보고, 나 또한 이 질문들에 대해 지금의 사상과 가치관, 철학으로 답을 정리해 봤다. 그리고 다른 분들이 어떻게 이 질문들을 지혜롭게 해석했는지를 알기 위해 이 책을 보게 됐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 책은 내가 근래 읽었던 책들 중 가장 열악한 책이다. 이 글을 쓴 저자가 신부라는 사실이 나를 경악케 한다.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이 천주교 내에서는 이 질문들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책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 그것이 맞다면, 이 책은 현재 천주교가 얼마나 수준 낮은 영성과 인문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말고 천주교 내에서 더 심도 깊게 이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한 책이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런 책이 없다면 한국의 천주교 수준에 절망할 것 같다. 그 정도로 이 책은 수준 이하의 책이다.
우선 책 자체가 내용이 깊이가 없고 간결하지 못하다. 저자는 24개의 질문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변을 달지 않고, 비슷한 주제들끼리 묶어서 글을 전개했는데, 이런 방법은 이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독자들은 하나하나의 질문들에 대해 답을 듣기 원하지 두리뭉실한 답을 원하지 않는다. 저자가 명쾌히게 하나하나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은 이유는 각 질문에 대한 지기만의 답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의 대부분은 영성으로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세술로 답을 하고 있다. 책의 1/3을 읽고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어 책을 덮었는데, 책의 대부분이 인용, 예시 등으로 가득차 있고, 그 예시 또한 영성과는 관련이 없는 처세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쓴 저자가 신부가 아니라 자기개발 전문 강사 같다. 저자는 자기가 신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신을 온전히 믿고 있는 자가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경악이고 슬픔이다. 이렇게 저자가 측은해 보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인용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사상이 없고, 명확한 사상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의 글에 의존하는 것이다. 깊이 있는 책은 최대한 자기의 생각과 신념으로 글을 써 간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에 대한 글의 인용은 최대한 줄이고, 중요 사상은 자기 안에 흡수해서 자기의 호흡과 맛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의 스며듬이고, 나만의 지혜로 성숙해지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단순히 인용한 글들로 내가 읽은 1/3의 2/3을 채운다. 이 24개의 질문들이 이렇게 대우받을 질문들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이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책의 내용들 또한 자신이 지금까지 강의해 온 것들 중에서 관련있는 것들을 발췌해 적은 느낌이 강하다. 한 사람, 죽어가는 한 신자 앞에서, 그 신자가 진지하게 이런 질문들을 하는데, 그 사람 앞에서 이 책의 내용처럼 답변을 한다면, 만약 그 신자가 나라면, 나는 절망하고 두려울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믿어온 신앙이 송두리째 뽑기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나는 이 책 외에도 이 질문들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을 생각이다. 부디 다른 신부가 더 진실하고 깊은 영성으로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했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바란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갖고 있던 천주교에 대한 일말의 믿음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